'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 온다…월 최대 238만원 주고 쓸까
필리핀 가사관리사(가사도우미) 100명이 다음 달 한국에 들어온다. 국내 돌봄 인력이 감소하고 고령화가 심화되는 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외국인 돌봄 서비스의 시범사업 차원에서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적용받아 최대 월 200만원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만큼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도 나오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서울시는 필리핀 외국인 가사관리사(E-9) 시범사업 신청을 오는 17일부터 다음 달 6일까지 3주간 서울 시민을 대상으로 신청받는다고 16일 밝혔다. 정부가 인증한 가사근로자법상 서비스제공기관에서 직접 고용한 외국인 가사관리사가 가정에 출퇴근하면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9월부터 서비스…한부모·다자녀·맞벌이 우대
필리핀 현지에서 선발된 가사관리사 100명은 다음 달 중 입국할 예정이다. 필리핀 정부가 공인한 관련 케어기버(caregiver) 자격증(780시간 이상 교육 이수) 소지자 중 영어·한국어 등 어학능력 평가, 건강검진, 범죄이력 확인 등 신원검증을 거쳐 선발됐다. 입국 후에도 4주간 한국문화, 산업안전, 직무 교육 등을 거쳐 오는 9월 초부터 본격적인 서비스에 들어갈 예정이다.
서비스 신청 대상자는 ‘만 12세 이하의 아동’ 또는 ‘출산 예정인 임산부’가 있는 서울시민이다. 특히 한부모, 다자녀, 맞벌이 등을 우선적으로 선정할 계획이다. 대리주부·돌봄플러스 등 2개 기관의 모바일앱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이용 시간은 평일(월~금)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파트타임(1일 4시간·6시간)이나 풀타임(1일 8시간) 중에 선택할 수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월·수·금 등 원하는 요일만 골라서 신청할 수도 있다”며 “다만 이용 시간은 1일 기준 4시간·6시간·8시간 등 3가지 타입에서만 선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시간당 1만3000원대…“차라리 한국인 구할 것”
문제는 서비스 비용이다. 한국인과 똑같이 최저임금(올해 기준 시간당 9860원)을 적용받기 때문에 가정에서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 적지 않다. 여기에 4대 사회보험(고용보험·국민연금·건강보험·산재보험) 등 간접비용도 서비스 비용에 포함된다.
서울시에 따르면 월~금 1일 8시간 기준 월 이용 금액은 약 238만원이다. 시급으로 따지면 1만3000원대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상 올 1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512만2000원)의 절반에 가까운 액수다. 특히 시범사업 기간이 내년 2월까진데, 내년 1월 1일부턴 시간당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7% 오른 1만30원이 되기 때문에 부담 금액도 커진다.
당국은 현재 가사관리사 이용 금액에 비하면 여전히 저렴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1일 4시간 이용 기준으로 월 119만원 정도인데, 이는 공공(131만원)보다 9.2%, 민간(152만원)보다 21.7% 저렴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고용부 관계자도 “업체 입장에선 제로마진 수준의 요금”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육아휴직 중인 직장인 권모(32)씨는“한국어 소통이 잘 안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저렴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며 “상대적으로 젊다는 장점은 있겠지만, 금액이 10~20% 정도 차이라면 차라리 한국인 가사관리사를 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생후 16개월 아이를 둔 직장인 정모(32)씨도“아동과 집안 상황에 맞춰 구체적으로 업무를 설명해줘야 하는데, 사전 교육을 받는다 해도 한국어가 원활하지 않다면 어려움이 클 것 같다”고 말했다.
모호한 업무범위…“체크리스트 만들 것”
가정에서 어디까지 업무 지시가 가능한지에 대한 논란도 불거질 수 있다. 한국 정부와 산업인력공단이 필리핀 현지에 배포한 공고문에 따르면 가사관리사 업무 범위는 아동을 위한 옷 입히기, 목욕, 청소, 화장실 이용, 기저귀 갈기, 음식 준비 및 식사, 청소, 이동(등하교) 지원, 세탁 등이다. 아울러 공고문은 “명시된 업무를 넘어서지 않는 한, 동거가족을 위해 부수적이며 가벼운(incidental and light) 가사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덧붙이고 있다.
하지만 ‘부수적이고 가벼운’이라는 표현이 모호한 탓에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이 자칫 아동 돌봄을 넘어서서 동거가족을 위한 과도한 업무까지 떠맡게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아이 돌봄과 관련된 가사 업무여야 한다. 예를 들어 요리의 경우 아이를 위한 쿠키를 구우면서 동거가족에도 나눠줄 수 있겠지만, 본격적으로 가족 전체를 위한 상차림은 안된다”며 “시켜선 안 되는 업무 범위에 대해선 별도 체크리스트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 상반기엔 1200명 입국
정부는 내년 상반기 본사업에선 외국인 가사관리사 1200명을 추가로 들여온다는 계획이다. 이번 시범사업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진행된다. 기본적으로 필리핀에서 들여오고, 모자란다면 다른 나라와도 협의를 진행한다. 여기에 더해 외국인 유학생(D-2), 외국인 근로자 배우자(F-3) 등 5000명도 추가로 들여올 계획이다. 이들은 가구주와 직접 1대1로 계약을 맺는 ‘가사사용인’ 방식이 가능해, 상황에 따라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않을 수 있다.
세종=나상현 기자 na.sang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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