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온열 시트까지 달았다…제네시스, 英서 獨 럭셔리와 맞짱
"미국처럼 포기할 수 없는 시장"
“혼다에서 왔어요?”
지난 10일(현지시간) 영국 사우스햄튼의 한 호텔에 묵었던 기자에게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현지인들이 물었다. 그 호텔에는 등에 ‘HONDA’(혼다)라고 적힌 점퍼를 입고 다니는 10명 넘는 동양인들이 있었다. 근처 치체스터에서 열리는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의 홍보 부스를 운영하러 온 혼다 직원들이었다. 기자가 “혼다 아니고 한국의 현대차(제네시스) 취재하러 왔다”고 답하자, 현지인 중 한 명이 반색하며 “지난해 현대차 아이오닉5를 샀다. 빠르고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그가 전기차라는 점을 강조하며 감전된 것 같은 시늉을 하자 일행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 에피소드가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라면 흥미로울 것 없을 수 있다. 현대차그룹(현대차·기아·제네시스)이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한 차량이 165만대에 달할 정도로 이미 미국엔 한국 차가 흔하다. 하지만 영국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아직 영국 시장에서 한국 자동차 브랜드의 성장세와 그 시장의 중요성이 국내에 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영국, 누구라도 공략해볼 수 있는 시장
영국에서 한국 자동차의 인기는 작지 않다. 영국 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이 지난해 영국에서 판매한 승용차는 19만6239대다. 시장 점유율로 따지면 10.3%다. 인상적인 건 브랜드와 차종별 판매 순위다. 올 상반기 영국 시장에서 기아는 4위, 현대차는 9위를 기록했다. 특히 기아 스포티지는 2만4139대가 팔리며 전체 차종 중 2위에 올랐다.
이는 영국 시장 진출 30~40여년 만(현대차 1982년, 기아 1991년)에 달성한 성과다. 현대차 관계자는 “영국 시장은 미국·독일과 함께 포기할 수 없는 3대 시장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자동차를 처음으로 대량 생산한 미국, 그리고 기술력에서 가장 앞선 평가를 받는 독일과 함께 영국 자동차 시장은 그 자체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런 이유로 현대차는 2014년부터 영국 미술관 테이트 모던을 후원하고 있다. 제네시스는 2022년부터 스코티시 오픈을 후원하며 영국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영국 시장의 특수성도 공을 들이는 배경으로 꼽힌다. 영국은 자국 브랜드를 포함해 특정 자동차 브랜드가 시장을 과점하고 있지 않다. 올 상반기 영국 시장 점유율 1위는 폭스바겐이 기록했는데 점유율 8.3%로 10%를 넘지 못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독일이나 미국처럼 자국 브랜드가 특별히 인기가 있는 게 아니라서 외국 브랜드라도 충분히 점유율 확대를 노려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영국”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자동차 제조사는 불황이 드리운 1980년대 후반부터 해외에 매각됐다. 그와 동시에 자국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흐려졌다는 평가다. 영국을 대표하는 재규어는 1989년 미국 포드에 인수됐고 이후 2008년 인도 타타그룹으로 넘어갔다.
신흥 부촌 공략하는 제네시스
영국에서 성장세를 이어가는 한국차가 공략하지 못한 분야가 있다. 바로 럭셔리 자동차다. 제네시스는 지난해 영국에서 1362대 팔리는 데 그쳤다. 미국에서 7만대 가깝게 팔린 것과 비교되는 숫자다. 영국 내에선 독일차에 대한 선호도가 높지만 제네시스는 2021년 영국 시장에 진출해 공략 시간이 짧았다. 현대차는 제네시스를 앞세워 럭셔리 브랜드 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높이고 있다. 지난 11~14일 열린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에서 제네시스 고성능 모델 ‘마그마’의 첫 주행을 선보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제네시스는 럭셔리 수요 공략을 위해 2022년엔 런던 배터시 발전소 내에 ‘제네시스 스튜디오’를 열었다. 런던 웨스트필드에 이어 영국에선 두 번째 스튜디오다. 배터시 발전소는 한 때 런던시 전력의 20%를 담당하던 세 번째로 큰 화력발전소였지만, 도시 재생 프로젝트로 복합 쇼핑·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배터시 발전소 주변은 부촌인 첼시 근처에 위치해 신흥 부촌으로 떠오르고 있다.
「 용어사전 >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
굿우드 페스티벌은 1993년 시작한 자동차 행사로 클래식카부터 고성능 스포츠카, 럭셔리카를 볼 수 있어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다. 특히 차량이 실제 주행한다는 점은 다른 모터쇼와 차별화되는 점이다. 글로벌 자동차 기업의 신차 공개 장소로도 유명하다. 올해도 BMW, 에스턴마틴, 마세라티, 혼다 등이 페스티벌 기간 중에 신차를 선보인다.
」
지난 12일 찾은 제네시스 스튜디오 런던 배터시에선 이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스튜디오 안에선 제네시스 철학과 디자인을 소개하기 위한 GV60, GV70 전동화, G80 전동화 등 제네시스 모델과 차량 색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동차 문짝 등이 전시돼 있었다. 특히 눈에 띈 건 GV70 전동화 모델에 설치된 ‘제네시스X도그’ 액세서리였다. 제네시스에 장착된 V2L(외부 전원) 기능을 활용해 반려견을 위한 온열 시트가 작동했다. 반려견 친화적인 영국 문화를 타깃으로 한 것이다. 엔지 아이스코프 제네시스 스토어 매니저는 “반려견을 데려오는 고객들이 많아 이 액세서리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제네시스는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가는 중이다. 아이스코프 매니저는 “제네시스가 현대차의 고급 차 브랜드인지 모르는 고객도 많아 잘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인지도는 계속 높아지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런던=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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