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 주방서 일한 우등생, 왜 트럼프에 총구 겨눴나

강창욱 2024. 7. 16. 16:2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외톨이·괴짜·우등생·보수주의자·사격클럽회원
“남 험담도 안 하던 착한 아이가 어떻게”
추적할수록 미궁… 휴대폰서 실마리 나올까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저격한 20세 청년 토마스 매튜 크룩스가 요양원 주방에서 일한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광고에 등장한 사실부터 외톨이, 우등생 혹은 모범생, 사격클럽회원 등 학창시절을 중심으로 다양한 행적이 확인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범행 동기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수사 당국은 크룩스라는 인물을 꿰뚫지 못한 채 주위만 빙빙 돌고 있는 모양새다.

사고 한 번 일으킨 적 없는 ‘우등생’
크룩스는 펜실베이니아주 베델 파크 자택에서 차로 조금 떨어진 지역 요양원 주방에서 일했다고 영국 BBC방송이 15일(현지시간) 전했다. 요양원 직원들은 크룩스가 신원 조사를 통과했고 근무 중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고 증언했다고 한다.

크룩스는 2021년 9월부터 올해 5월까지 같은 주 앨러게이니 커뮤니티 칼리지(CCAC)를 다닌 것으로 확인됐다. 이 대학에서 공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CCAC는 BBC에 보낸 서한에서 크룩스가 ‘우등으로(with high honours)’ 졸업했다고 밝혔다. 학적 조회 결과 징계는 물론 규율 위반이나 보안 관련 사건도 없었다.

크룩스는 2022년 베델 파크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도 수학·과학 부문에서 장학금 500달러(약 69만원)를 받았다.

고교 시절 같은 반이었던 서머 바클리는 크룩스에 대해 “시험에서 항상 좋은 성적을 받았다”며 교사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크룩스는 고3 때 교사를 주인공으로 한 미국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광고에 배경 인물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 광고는 사건 직후 삭제됐다.

말수 적고 얌전한 ‘외톨이’가 암살범으로
크룩스의 성격에 대해서는 주변인들의 전언이 다소 엇갈린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평소 말수가 적고 얌전한 탓에 외톨이로 보는 사람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역 뉴스매체와 인터뷰한 고교 동창들은 크룩스를 외톨이로 묘사하며 자주 괴롭힘을 당했다고 전했다. 때로는 사냥복을 입고 등교하기도 했다고 한다. 괴짜 같은 면모가 있었다는 얘기다.


베델 파크에 있는 레스토랑 ‘앤젤로 피자’의 직원들과 사장 사라 페트코도 크룩스를 외톨이로 기억했다. 이들은 조용한 사람이 어떻게 총기 암살을 시도할 만큼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어 했다고 BBC는 설명했다.

페트코는 “인생의 시작점에 있는 사람이 이런 일(암살 시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냥 미칠 노릇”이라며 “마음을 편히 먹기에는 너무 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어떤 이들은 크룩스를 그저 조용한 학생으로 기억했다. 한 동창은 BBC에 “그(크룩스)를 잘 아는 사람이 생각나지 않는다”면서도 “그는 괜찮은 사람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반 친구는 “똑똑하지만 조금 이상했다”고 평가했다. 항상 친절했다는 같은 반 동창도 있었다.

2022년 크룩스와 함께 베델 파크 고등학교를 졸업한 제임스 마이어스는 크룩스에 대해 특별히 인기가 많지는 않았지만 놀림을 받은 적은 없는 평범한 소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누구에 대해서도 나쁘게 말한 적이 없는 착한 아이였다”며 “그가 그런 일(암살 시도)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차에서 폭발물? 그는 ‘외로운 늑대’였을까

크룩스가 ‘외로운 늑대’로 불리는 자생적 테러리스트였는지 단정할 수 없지만 화기류에 관심이 많았다는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범행 당시 크룩스는 총기와 폭발물 콘텐츠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 ‘데몰리션 랜치’의 티셔츠를 입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 당국은 사건 다음날 크룩스의 차량에서 폭발물로 의심되는 장치가 발견했다. 크룩스는 이 장치를 작동시킬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 장비를 소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시중에서 살 수 있는 제품이었다. 폭탄 기술자들이 현장에서 장치를 확보해 조사 중이다.

크룩스는 피츠버그 남쪽에 있는 ‘스포츠맨 클럽’이라는 지역 사격 클럽 회원이기도 했다. 사격 실력은 우수하지 않았다는 게 주변인 진술이다. 베델 파크 고등학교에는 소총부가 있었지만 크룩스는 실력 미달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런 크룩스가 120m 밖에서 트럼프를 저격해 오른쪽 귀를 관통시켰다는 사실은 의아한 대목이다.


베델 파크 고등학교 소총부원이었던 동창생 제임슨 마이어스는 CBS에 “그(크룩스)는 선발전에서 주니어 대표팀에 뽑히지도 못했다”며 “고등학교 시절 선발전에 다시 나가지 않았습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동창생은 ABC뉴스에 “크룩스는 총을 잘 쏘지 못했고 소총부에 적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스포츠맨 클럽은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웨스트버지니아를 통틀어 3개 주에서 최고로 꼽히는 사격 시설 중 하나로 2000명 넘는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클럽이 운영하는 여러 사격장 중에는 최대 171m 떨어진 표적을 사격할 수 있는 고화력 소총 시설도 있다고 한다. 시설에는 회원만 들어갈 수 있다.

경찰은 트럼프 전 대통령 저격에 쓰인 AR-15 소총을 크룩스의 아버지가 최소 6개월 전 구입한 것으로 파악했다. 총기가 어떻게 크룩스 손에 들어갔는지는 불확실하다. 다만 그의 아버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몰랐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크룩스는 범행 당일 50발이 든 탄약 상자를 구입했다고 CBS가 전했다.

“그는 보수였다” 진보에 기부한 공화당원

크룩스는 정치적으로도 일관된 행적을 남기지 않았다. 등록된 공화당원이면서도 2021년 1월 20일 진보 성향 단체 ‘액트블루 정치행동위원회’에 15달러를 기부한 것으로 조회됐다. 그날은 민주당 후보로 당선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날이다.

그가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만은 알 수 있다. 같은 반 친구였던 서머 바클리는 크룩스에 대해 “역사에 대한 열정이 강했다”며 “정부와 역사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했지만 평범하지 않은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크룩스와 함께 미국사 수업을 수강했던 맥스 스미스는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와의 인터뷰에서 크룩스가 ‘분명한 보수주의자’였다고 말했다. 그는 크룩스와 함께 참여했던 모의 토론을 떠올리며 “학생 대부분은 진보 진영에 있었지만 톰(크룩스)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항상 보수 진영에서 자신의 입장을 고수했다”고 말했다. 스미스는 “그가 보수 후보자를 암살하려고 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FBI 피츠버그 특별요원 케빈 로젝은 “사건 진상에 대한 조사가 수개월 동안 이어질 수 있다”며 “수사관들은 크룩스의 동기를 파악하기 위해 쉬지 않고 노력할 것”이라고 언론에 말했다.

비번 풀린 휴대폰… 범행 동기 나올까
크룩스는 집에서 70㎞ 정도 떨어진 유세 현장에서 연설 중이던 트럼프 전 대통령을 연사로 두 차례 저격한 뒤 사살됐다. 그는 신분증을 휴대하지 않은 상태였다. 연방수사국(FBI)는 DNA 조회와 얼굴 인식 기술을 사용해 크룩스의 신원을 확인했다.

그 후 수사 당국은 크룩스의 생전 행적을 추적했지만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아무 실마리도 잡지 못했다. 당국은 범행 동기와 관련한 단서를 찾기 위해 휴대전화와 다른 디지털 증거를 조사 중이다. FBI는 15일 크룩스의 휴대전화에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크룩스의 아버지 매튜 크룩스는 CNN 인터뷰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려고 노력 중”이라며 “수사 기관과 상의하기 전까진 아들에 대해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크룩스의 가족은 수사에 협조적이라고 FBI는 설명했다.

경찰은 크룩스가 부모와 함께 산 집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전면 봉쇄하고 거주지 수색을 이날 완료했다. 한 이웃 주민은 “경찰이 아무 경고도 없이 한밤중에 나를 대피시켰다”고 CBS에 말했다. 베델 파크 경찰은 크룩스 집 주변에서 폭발물 관련 조사를 진행 중이다.

치안 당국은 크룩스가 범행 전 어느 정도 계획을 세웠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계획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는지는 여전히 조사 중이다. 단독 범행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지만 제삼자 동행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