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학생' 아닌 '장애를 겪는 학생'이라고 써주세요

김국현 2024. 7. 16.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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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겪고 있음을 스스로 설명해야만 하는 상황이 있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5장에 "장애학생[장애와 학생을 붙여 하나의 단어로 명시하고 있음]"이라는 용어가 있다.

그러나 학교에는 '장애학생'이라는 사회적 지위는 없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사람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구분하고, 학생을 비장애 학생과 장애 학생으로 나누고, 장애를 겪는 학생을 시각장애 학생, 청각장애 학생, 지체장애 학생, 자폐성장애 학생 등으로 구별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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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에 대한 단상... 구별을 먹고 자라는 차별사회 맨얼굴 드러내지 않으려면

[김국현 기자]

▲ 장애라는 단어가 포함된 현수막 장애,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덧붙여 사용된 현수막이 특수학교 강당에 걸려있다.
ⓒ 김국현
장애를 겪고 있음을 스스로 설명해야만 하는 상황이 있다. 휠체어를 타는 나는 비행기를 탈 때, 식당을 예약할 때, 강의 갈 때, 숙소를 구할 때가 그렇다. 장애 겪음을 구체적으로 말해야 휠체어를 타고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고, 밥을 먹을 수 있으며, 강의하고, 숙소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이 나의 장애 겪음을 상황과 관계 없이 밝히는 경우도 있다. 내가 처음 특수학교 교단에 섰을 때, 교장 선생님은 외부에서 온 손님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우리 학교 장애인 교사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내 처지에서 유쾌한 말도 아니다. 나는 교사로서 근무하는 것이지 장애인으로서 근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는, 장애 겪음을 밝히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도 장애인 예술가, 장애인 교사, 장애 학생처럼 장애라는 단어를 덧붙여 구별하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5장에 "장애학생[장애와 학생을 붙여 하나의 단어로 명시하고 있음]"이라는 용어가 있다. 국립특수교육원의 누리집 첫 화면에도 '장애학생 인권보호 지원센터'라는 배너가 있다. 도 교육청, 지역 교육청, 학교, 언론사도 장애학생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장애학생 진로·직업교육 컨설팅, 장애학생 교육활동 실천 우수사례, 장애학생 교수·학습 지원 사이트, 장애학생지원센터처럼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러나 학교에는 '장애학생'이라는 사회적 지위는 없다. 해서, 장애를 겪는 학생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장애와 학생 사이에 공간을 확보하여 띄어 쓰는 것이 옳다. 사회적 지위를 가리키는 단어에 다른 개념이 붙으면 그 신분은 오염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띄어 쓴다고 해서 문제가 온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장애 학생'이라는 용어는 법과 행정업무 차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교육 현장에 구어로 스며든다. 일상에 파고든 그것은 때로 실존의 구체적 이름을 지워버린다.

"무조건 아기가 가진 문제로 몰고 가는 거예요. 애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정은이 얘기를 직접 들어보셨냐고 물었어요. … 그때 황당했던 게 뭐냐면 선생님이 가해 학생들 이름은 다 아는데 우리 애는 그냥 '장애 학생'이라고만 하는 거예요. 우리 애들 이름을 모르는구나. 우리 애들은 이름이 장애 학생이구나. 이름도 우리 애는 차별받는구나."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

포털 사이트에 누군가가 이런 질문을 올렸다 "장애인의 종류 좀 알려주세요" 국립국어원에도 이와 비슷한 질문이 있다. "장애인의 종류를 표기할 때, 청각 장애인처럼 띄어 쓰기를 해야 하나요? 아님, 지체장애인처럼 띄어쓰기가 없어도 되나요?"

장애의 유형이 아니라 사람의 종류를 묻다니, 말문이 막힌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사람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구분하고, 학생을 비장애 학생과 장애 학생으로 나누고, 장애를 겪는 학생을 시각장애 학생, 청각장애 학생, 지체장애 학생, 자폐성장애 학생 등으로 구별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구별을 먹고 자라는 차별 사회의 맨얼굴을 무의식중에 드러낸 것이다.

'장애를 겪는 학생'으로 풀어쓰자. 장애를 개인의 손상이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현상으로 보는 관점에서, 장애와 학생 사이의 서술어로 '지닌(또는 있는, 가진)'이 아니라 '겪는'을 쓰자. 현상은 겪음의 대상이지, 소유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애를 겪는 학생'으로 풀어 쓰면 언어의 경제성과 효율성이 낮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은 효율성과 경제성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또한 법률적, 행정적 용어는 우리 삶의 다양한 현장에 스며드는 공공언어이기도 하다.

'장애 학생'이라는 용어는 공공언어가 되었다. 행정편의주의와 효율지상주의에 기대어 낙인의 그 단어는 생명줄이 늘어나는 모양새다. 그 개념이 장애를 겪는 학생의 몸짓과 말의 주체성을 빼앗아도 문제가 없는 것일까?

특수교육 현장에 장애 중심의 언어가 필요 이상으로 넘친다. 장애 중심 언어에서 주체(사람) 중심의 언어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그 노력의 중심에 국립특수교육원의 역할이 크다. 장애 관련 언어의 존재 방식이 바뀔 때 장애를 겪는 학생들의 삶의 공간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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