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얽힌 고래 이야기

이정순 2024. 7. 16.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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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하 신작 <고래의 안부 바다의 마음> 을 읽고

[이정순 기자]

'저 하늘과 바다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작은가. 장대함과 장엄함, 경이에 비한다면 나는 내 발밑으로 밀려와 바위에 부딪다 다시 거대한 바다로 스러져가는 파도의 끄트머리에서 흩날리는 물 한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 본문 중에서
 
장마철이다. 장마철에 하늘과 바다는 하나가 된다. 오늘도 묵직한 하늘이 발 밑까지 깊게 드리워져 있다. 쏟아지는 빗방울로 주위가 소란해질 때는 서점으로 숨고 싶어 진다. 우중 독서는 여러모로 신산한 것들을 잊게 한다.
서점에 나가 신작 코너를 힐끗 거리다 큼지막한 고래가 유난히도 인상적인 책표지를 발견하고 멈춰 섰다. <고래의 안부 바다의 마음>라는 김운하 작가의 신작이었다. 표지는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을 모티브로 인류세 시대 고래를 찾아 겪은 사유와 여정을 기록한 일종의 기행문이라고 책을 소개한다. 장마는 이렇게 갑자기 예기치 못한 책을 선물했다.
 
 2024년 7월 출간 김운하 신작
ⓒ 이정순
 
저자 김운하는 인문학자이자 소설가다. 포스트모던, 인류세, 신유물론에 대한 주제로 꾸준히 독자를 만나 온 김운하는 이번에는 문학과 과학 그리고 철학을 통찰한 고래책으로 독자 곁에 왔다.

저자는 허먼 멜빌의 <모비 딕>에 홀려 이 책을  쓰기로 마음 먹었고 3년 동안 고래자취를 찾아 고래 유적지를 돌아 다닌 끝에 완성한 책이라고 한다. 책은 총 22장으로 이뤄져 있다. 각 장은 하나하나 따로 읽어도 좋고 첫 장부터 차례대로 읽어도 좋다.

나는 1장부터 읽었다. 고래 탄생과 진화의 신화에서 우리나라에서 서식하는 고래, 인간과 얽힌 고래 이야기까지 한 장 한 장 읽다보면 어느덧 새로운 '모비 딕'을 만나게 된다.

우리나라도 고래 사냥을 했다는 기록이 울진 암각화에 새겨져 있음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것도 선사시대부터! 울산 장생포, 간절곶, 서귀포는 저자가 답사했던 고래 유적지로서 포경 산업이 성행했던 곳이다.

지금은 일제시대 일본군들의 마구잡이 포획으로 사라졌지만, 우리나라 근해에 우영우의 남방돌고래 외에도 집채만한 귀신고래와 범고래도 있었다 한다. 한편 우리나라 절에는 고래를 상징하는 보물들이 있다는데, 절에 가거든 책을 펼쳐보며 찾아볼 일이다.

22개 모든 장이 다 좋지만, 그중 12장 '혹등고래의 노래'가 나는 가장 좋았다. 제 12장 '혹등고래의 노래'를 잠깐 소개한다. 고래도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글쎄,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고래의 노래는 이미 음반으로 나왔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가수는 혹등고래. 이 음반은 빌보드 차트에 오를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한다. 지금도 유튜브에 키워드를 치면 혹등고래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고래 노래를 녹음한 사람은 고래보호단체를 설립한 로저페인이다. 이를 계기로 고래가 소통하며, 문화를 가진 생명체임을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해양포유류 보호법과 상업포경 금지 조약에 서명한 것도 이때였다. 

인간이 고래를 무차별 살상해온 지 300년이나 지나서였다. 아직도 조약을 무시하고 살상과 남획을 즐기는 이들이 있어서 안타깝지만, 당시 조약은 인간이 고래에게 가해온 폭력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지구촌 생명체라고 생각한 긍정적인 약속이었다.
'우리에겐 멀찍이 떨어져 고래의 장엄함과 아름다움, 경이에 감탄하고 그 생태를 존중할 권리만 있는 것이다. 고래에 대한 온갖 인간 중심적인 지식을 쌓아 올리고는 그 지식을 수단삼아 고래를 포획하고, 작살로 죽음에 이르게 하고, 상품으로 팔아 이윤을 취하는 식의 관계맺기, 즉 소유와 지배의 관계 맺기는 결코 윤리적인 관계맺기는 아닐 것이다.' - 본문중에서

지구 역사 46억년은 생물과 무생물의 변천사다. 지구 환경이 바뀔 때마다 지구촌 주민은 수시로 교체되었다. 간혹 수십 억 년을 살아내는 생명도 있었지만, 변화된 환경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았다.
고래도 그렇게 수천만년을 거주해 왔는데, 인간이 등장하고, 바닷속 환경이 오염되면서 지구촌에서 사라질 운명에 놓였다. 기후위기, 핵전쟁, 핵폐기물 투척 같이 인간이 저지른 환경오염은 지구촌을 비가역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러다 여름이면 오는 장마도 사라질 수 있다.  
 
'움벨트 세계에서 인간은 인간대로, 모비딕 고래는 그들대로, 그들 각자의 고유하고 독특한 움밸트에서 살고 있다. 모든 생물들이 저마다의 세계 만들기에 참여하고 있다. 생명체는 그런 무한히 다양한 세계들이 공동으로 연결되고 중첩되며, 때론 경쟁하면서 끊임없이 형성되고 재형성되는 세계다.' - 본문중에서

책 후기에서 저자는 이대로 가다간 인간도 지구상에서 사라질 수 있다고 염려한다. 수많은 생명체와 서식지를 파괴하는 인간. 저자는 인간 종을 호모사피엔스에서 새로이 호모디스터비언스라 명명하자고 제안한다. 
 
'만일 지구 생태 시스템 전체로 확대하여 이 생태 시스템을 파괴하고 교란하고 있는 가장 위험한 생물을 지구의 모든 생물 종들에게 비밀 투표로 뽑게 한다면, 누가 뽑힐까? 바로 사피엔스라고 스스로 굳게 믿고 있는 종, 인간종이 아닐까?' - 본문 중에서

인간도 알고보면 지구촌을 거쳐갈 하나의 생명체일 뿐이다.
 
'인간 이전에도, 언젠가 도래할 인간 멸종 이후에도, 우주는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 본문 중에서

책 속에서 저자는 모비 딕-고래-바다-인류세-지구-인간과 상호 관계를 이야기하며 생물과 무생물 간 얽힌 관계를 되돌아 본다. 모비 딕을 새롭게 읽게 하고, 고래가 무엇인지, 고래가 사는 바다 환경과 고래를 비롯한 비인간들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 생각하게 한다.

사실은 이 책은 기행문이자, 깊은 사유를 담고 있는 철학책이며 인류를 위한 지침서였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을 새롭게 읽게 하는 해설서였다. 읽으면 읽을수록 심오한 깨달음을 주는 신기한 책이니 장마가 지루해질 때쯤 다시 읽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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