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경3569조… 세계 각국 “눈덩이 나라빚 어찌하오리까”
각국 정부 '곳간'에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지난 2일 미 경제매체 CNN비즈니스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 정부부채는 97조 달러(약 13경3569조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정부부채 이자 규모만 2021년보다 26% 증가한 8470억 달러(약 1166조원)에 이른다.
정부부채 규모가 커질수록 부채 상환 비용도 상승한다. 국가 부채 우려로 정부 채권 금리가 높아지고, 가계와 기업이 갚아야 할 대출 이자 비용도 오른다. 이는 민간 투자, 소비를 약화로 이어진다. 정부도 경기 침체 대응을 위한 차입 능력(주식과 부채를 통해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능력)이 약해진다.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하듯 스위스계 투자은행 UBS는 글로벌 중앙은행 준비금 관리자 40명을 대상으로 올해 세계 경제 주요 우려 사항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37%가 '폭증하고 있는 국가 부채'를 꼽았다고 지난 11일 발표했다. 지난해 같은 조사에선 14%에 불과했던 대답이 1년 만에 2배 넘게 늘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4월 미국의 막대한 재정적자가 인플레이션을 촉발했고, 이는 현재도 세계경제에 상당한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IMF는 미국 재정적자가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6.67%에서 내년 7.06%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다른 선진국 평균(2%)의 세 배가 넘는 수준이다.
IMF는 미국 외에도 중국 정부의 부채에 대한 우려도 함께 나타냈다. IMF는 중국이 2025년에 GDP 대비 7.6%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는 다른 신흥 시장 평균 3.7%의 두 배 이상이다.
IMF는 지출과 수입 사이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정책 조치를 취해야 하는 4개 국에 미국과 중국을 포함했다. 나머지는 영국과 이탈리아다. IMF는 미국과 중국의 과도한 지출이 세계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다른 국가의 기본 재정 전망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 의회예산국(CBO)이 지난달 18일 발표한 ‘2024~2034 예산·경제 전망 업데이트’에 따르면 올해 미국의 재정적자 규모는 1조9000억 달러(약 2626조)로 추산된다. 지난 2월 전망한 1조5000억 달러(약 2072조원)보다 27% 늘었다. CBO는 이대로 가면 미국 재정적자가 2034년에 2조8000억 달러(약 3867조원)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의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이달 초에 낸 보고서에서 미국을 비롯해 이탈리아, 프랑스가 이미 높은 부채 수준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은 바뀔 수 있다고 밝혔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유로존 국가들에 부채 감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CB는 유로존 국가들이 인구 고령화, 추가 국방비 지출 및 기후 변화 등 중요한 재정 부담에 직면하고 있다며 재정적자를 GDP 대비 평균 5% 포인트 줄여야 한다고 추산했다. 이는 7200억 유로(약 1070조원) 규모로 지출을 절감하거나 혹은 추가 세입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빚에 허덕이는 각국의 해법은 세금을 올리거나 지출을 줄이거나, 아니면 둘을 동시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각국은 이 문제를 드러내는 데 주저하고 있다. CNN비즈니스는 “전 세계에서 선거가 실시되는 해에 정치인들은 대체로 이 문제를 무시하고 있다”며 “세금 인상과 지출 삭감에 대해 유권자들에게 솔직하게 말하기를 꺼려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영국 독립 싱크탱크 재정연구소(IFS)도 열악한 공공 재정 상태에도 실질적인 문제를 직면하지 않은 채 ‘침묵’에 동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8일(현지시간) 레이철 리브스 영국 신임 재무장관은 첫 공식 연설 자리에서 증세 가능성을 시사했다. 레이철 장관은 영국 첫 여성 재무장관으로 14년 만에 집권에 성공한 영국 노동당 정부가 임명한 인물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재정상태다. 보수당 집권 동안 재정 적자가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며 “재무부 관리들에게 문제가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정부 지출에 대한 평가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조사가 가을에 발표될 예산에서 ‘어려운 선택’을 위한 길을 열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동당은 선거 기간 중 영국 세수입의 4분의 3 가량을 차지하는 주요 세율을 인상하지 않겠다고 공약했었다. 그러나 이번 조사 결과에 따라 증세 기조로 전환할 수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리브스 장관은 이와 함께 주택개발 기준 완화, 해상 풍력발전소 건설 등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재정 위기 앞에 성장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학자들은 각국이 영국처럼 곧 힘든 결정을 해야 할 순간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최근 CNN에 “지금은 2010년대와 같은 저금리가 아니며 금리 상승으로 이자 부담이 커졌다. 부채는 더 이상 공짜가 아니다”며 “각 국가들이 고통스런 조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타 고피나트 IMF 수석 부총재도 지난달 FT와 인터뷰에서 미국의 성장세를 언급하며, 지금이야말로 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올려 재정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선진국들이 재정 건전성에 투자하고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부채 부담을 줄일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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