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반환점을 돌고 있는 이들이 지켜야 할 것
해마다 8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회적 정년을 맞아 은퇴한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먹고 살기 위해 다시 노동시장으로 회귀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평균 은퇴 나이는 72.3세다. 정년은 비자발적 실업이며 경력 단절일 따름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늦은 나이까지 일하는 나라다. 우리 시대의 은퇴란 무엇인가. 생애 후반부는 어떤 모양으로 조각해야 하나. 인생 곡선은 어떻게 그려야 할까. 이글은 퇴직과 정년, 은퇴와 수명이라는 변곡점을 통과하는 중년/장년/노년의 고령자들이 좋은 삶(good life)을 살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를 성찰하기 위해 기획된 것으로,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할 계획이다. <기자말>
[문진수 기자]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
미국 작가 마크 맨슨(Mark Manson)이 우리나라를 가리켜 한 말이다. 유교적 가치 중 하나인 수치심을 내면화해 자신에게 끊임없이 채찍질을 가하고, 자본주의의 가장 안 좋은 측면인 물질만능과 배금주의가 더해지면서 최악의 조합을 만들어냈고, 그 결과 많은 한국인이 우울증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국민 10명 중 7명이 심각한 스트레스와 지속적인 우울감 등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2024, 국립정신건강센터). 스트레스 지수가 높을수록 커피 소비량이 늘어난다는 보고서가 여럿 제출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커피 소비량은 세계 2위다. 한국인은 감당하기 힘들 만큼 많은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해 매일 다량의 카페인을 투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기대 수명과 건강 수명의 차이 (남녀평균) 기대 수명 및 유병기간 제외 기대 수명 (2022, 통계청) |
ⓒ 문진수 |
2020년 기준, 기대수명은 83.5세이고 건강수명은 66.3세다.
66세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해 17년간 병마와 싸우다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뜻이다. 아프면서 오래 사는 건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다. 이 땅의 중장년층은 노후 빈곤을 피하기 재산 축적뿐만 아니라 두 '수명' 사이의 간격을 좁히기 위한 돌봄 작업에도 만전을 기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나이 들수록 기본적인 신진대사가 중요하다.
신진대사란 몸 밖에서 섭취한 물질을 생명 활동에 쓰고 남은 것을 밖으로 배출하는 작용을 말한다. 쉽게 말해, 잘 먹고 잘 내보내야 한다는 뜻이다. 쌓인 노폐물을 배출하지 못하면 병이 찾아온다. 서둘러 세상을 하직하고 싶으면 몸에 나쁜 가공식품을 습관적으로 먹고 되도록 움직이지 않으면 된다.
노폐물을 배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땀을 흘리는 것이다. 한국인의 운동량은 얼마나 될까.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절반 이상이 '적정' 수준에 미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적정 수준이란 세계 보건기구(WHO)가 제시한 기준, 즉 일주일에 150분 이상의 중강도 혹은 75분 이상의 고강도 유산소 신체활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중강도는 말은 할 수 있지만 노래할 수 없는 정도, 고강도는 숨이 차서 대화가 어려운 상태를 뜻함)
2014년에 58.3%였던 실천율은 2020년에 45.6%로, 12.7%p나 하락했다. 100명 중 55명이 '운동하지 않는 어른'이라는 뜻이다. 세계보건기구 기준에 부합하는 유산소 및 근력운동을 실천하는 성인은 17.6%에 불과하다. 65세 이상 고령층도 마찬가지다. 유산소는 33.2%, 근력운동은 22.5% 수준에 머물고 있다.
▲ 우리나라 노인 유산소운동 실천율 한국인을 위한 신체활동 지침서 (2023, 보건복지부) |
ⓒ 보건복지부/한국건강증진개발원 |
▲ 우리나라 노인 근력운동 실천율 한국인을 위한 신체활동 지침서 (2023, 보건복지부) |
ⓒ 보건복지부/한국건강증진개발원 |
우리는 모두 조금씩 아프다.
몸도 마음도 병들었다. 아프지 않은 척, 괜찮은 척 가면을 쓰고 살 뿐이다. 아픈 몸을 치료하는 건 약이 아니라 몸이다. 약은 몸이 몸을 치료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촉진제일 따름이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항우울제가 우울증 환자의 자살 충동을 억제할 순 있지만, 병든 마음을 치료할 수는 없다. 새살이 돋아나게 하려면 마음의 건강이 회복되어야 한다. 마음 돌봄이 필요한 이유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는 말이 있다.
생의 반환점을 돌고 있는 이들에게 이보다 중요한 교훈은 없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치러야 하는 대가가 너무 크다. 몸을 소중히 여기고 마음을 잘 보살펴야 한다. 성게처럼 가시가 돋은 마음을 둥글게 하고 몸이 보내는 신호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살아야 한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문진수 시민기자는 최근 단행본 '은퇴의 정석'(2024.6.28/한겨레출판)을 출간했습니다. 이 기사는 책의 내용을 일부 인용, 재편집해 새로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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