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脱鞋进去吧” 외국어 가득 공사 현장…‘아파트 하자’ 원인은 [새집의 배신②]
전국적으로 아파트 하자 관련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건설사를 믿고 빚까지 끌어다 집을 마련한 이들은 처음 본 아파트 모습에 말을 잃어버리곤 한다. 마감 불량부터 석재 파손, 누수·결로, 악취·곰팡이까지. 하자 보수 역시 쉽지 않은 문제다. 반품도 불가능한 아파트. 아파트 하자가 계속되는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봤다. <편집자주> |
“脱鞋进去吧”
세대 내 신발 벗고 들어가십시오.
지난달 15일 사전 점검을 위해 방문한 서울 구로구 신축 아파트 현장에는 한국어 아래 중국어가 적혀있었다. 기본적인 안내에 적힌 외국어는 아파트 공사 현장 외국인 비율을 나타내는 듯했다. 내국인 숙련공은 공사 현장을 떠나고 부족한 일손은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로 가득 차고 있다.
부동산 시장에 흔히 ‘코로나19 이후 지은 아파트는 피해라’라는 말이 돌고 있다. 이는 코로나 이후 지은 아파트들이 하자 논란이 많다는 주장에서 나온 말이다. 건설 업계 관계자들은 코로나 전후 아파트 하자 건수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다만, 아파트 청약자, 수분양자 등의 소비자들의 하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단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그러나 1군 대형 건설사의 잦은 하자 논란은 분명히 발생하고 있다. 하자 원인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브랜드 아파트 짓는 ‘외국인 노동자’
90%. 건설 현장 관계자가 말한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이다. 전재희 민주노총 건설노조 노동안전실장은 “대다수 건설 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거의 90% 이상”이라고 밝혔다. 이어 “일부 건설사에서 이주 노동자의 신분상 불이익을 악용해 장시간 중노동을 시키며 부실 공사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도 “건설 현장에 시공 자체를 할 수 없는 능력의 사람들도 투입되고 있다”며 “공사 현장은 주로 말이 안 통하는 외국인들이 늘고 있어 대화나 관리에 어려움이 있다. 내국인을 쓰고 싶어도 없어 외국인을 써야 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한 건축사 대표 A씨는 “건설 현장에 외국인 노동자는 늘고 있는데 정확하게 도면이나 규정을 숙지하고 현장에 나가는 경우는 드물다”며 “경험치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고 내국인 노동자처럼 품질을 꼼꼼히 보는 게 아닌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으로 일하는 경우도 많다”고 주장했다.
외국인 노동자 증가는 현장 소통 어려움과 전문성 감소로 이어진다. 국내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기 위해선 4시간가량 ‘건설업 기초안전보건교육’을 들어야 한다. 안전교육을 들었다는 ‘건설업 기초안전보건 교육 이수증’을 받아야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장 교육이 한국어로만 진행되고 별도의 시험이 없는 등 부실한 상황이다. 현장에서 소통의 어려움도 이어지고 있다.
늘어나는 아파트, 지을 사람 없는 현장
2021년 부동산 호황기를 맞으며 주택 수주 물량은 급증했다. 그러나 건설사들이 수주한 물량 공사를 담당한 인력은 늘지 않았다. 역으로 숙련공과 기술직은 더욱 줄어들며 건설 현장은 품질 관리에 더욱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착공에서 준공하는 물량이 늘었다”라며 “과거 연간 1만 세대를 지었다면 2~3만 세대까지 늘었을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사 물량이 늘다 보니 공사 기간과 인력 등이 부족해지고, 짧은 시간 내에 (공사가) 진행돼 현장에서 실수가 늘어난 것 같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 아파트 착공 실적을 분석한 결과, 2019년(1~11월 기준) 27만5368가구이던 착공 물량은 △ 2020년 32만6028가구 △ 2021년 38만4769가구까지 치솟았다. 이후 △ 2022년 27만8566가구 △ 2023년 13만3585가구로 감소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외국인 근로자만 늘고 기술을 가진 숙련공은 떠나고 있다. 건설근로자공제회가 지난달 20일 발표한 ‘건설기성 및 건설기능인력 동향 보고서’(2024년 5월기준)를 분석한 결과, 건설기능인력 취업자 수는 147만2000명으로 지난해 동월(149만1000명) 대비 2만1000명(1.3%) 감소했다. 특히 기능원과 관련기능 종사자 1만7000명, 장치기계조작 및 조립 종사자 8000여명이 줄었다. 반면 단순노무 종사자는 6000명 증가했다.
선분양제 뒷모습…고금리‧자잿값 인상 압박
선분양을 통해 공사 비용과 기간을 정해두는 제도도 아파트 하자로 이어졌다. 분양 이후 자잿값 인상, 수급 불안정 등의 상황에 대처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2022년 이후에 레미콘, 건설 노조 등의 파업과 시멘트, 철근 단가 등 인상이 있었다”며 “현장에서 공사를 하기 위해 원자재를 받아야 하는데 수급이 늦어져 공사 지연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어 “빠르게 공사를 하다 보니 미진한 부문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자잿값 상승세는 두드러졌다. 대표적인 건축 자재인 레미콘 가격은 지난 3년간 34.6% 올랐고 레미콘 주원료인 순수 시멘트 가격은 54.8%, 고장력 철근은 60%나 뛰었다. 같은 기간 중간 건축자잿값은 사상 최대 상승률인 39.6%를 기록했다.
공사비의 또 다른 한 축인 인건비 역시 3년 새 15.8% 올랐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건설사업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지난 4월 인건비 체감 경기실사지수를 보면 65.3으로 3월(55.5)보다 9.8p 상승했다. 이는 전년 동월(52.5)보다 높은 수준이다.
고금리도 장기화되고 있다. 대출을 통해 공사를 진행하는 업계에 고금리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 6월14일(현지 시각) 정책금리를 5.00~5.25%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3월 금리를 올린 이후 1년7개월 가량 5%대 고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숙련공 부족, 노조 파업 업계 핑계” 비판도
업계의 숙련공 부족, 자잿값 인상 등의 하자 원인 지목을 두고 핑계라는 비판도 있다. 특히 분양가가 수억원에 달하는 상황에 모든 책임과 피해를 수분양자가 떠 앉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건설 전문 민동환 법무법인 윤강 변호사는 “1군 시공사들이 1~2년 (공사)한 것도 아니고 30~40년 공동주택을 지었다. 숙련공 부족, 태풍, 폭설 등 공사하기 어려운 환경은 어느 해에나 다 있었다”라며 “이 같은 상황을 다 반영해서 분양 대금을 책정하는 것이다. 건설사의 핑계”라고 꼬집었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변호사도 “아파트는 당연히 제대로 지어주는 게 맞는 건데 하자가 발생했다는 것은 제대로 짓지 않았단 것”이라며 “계약 이행을 안 했기 때문에 이는 채무 불이행으로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정택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부동산국책사업팀 부장은 “세계에서 유례 없는 분양을 먼저 하고 한참 뒤에 입주하는 선분양제도로 인해 분양받고 입주하는 과정에서 모든 피해를 소비자가 뒤집어쓰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이어 “건축물에 있어 안전과 품질은 가장 핵심적인 가치”라며 “심각한 하자가 발생한단 것은 설계나 시공의 특정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면밀한 조사를 통해 원인 분석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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