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가상자산 입법’속도…건전한 시장 조성 나선 유럽, 본격 시동거는 미국 [팩플]

윤상언, 권유진 2024. 7. 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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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건물의 전경. 윤상언 기자


“미 의회와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쌓여있는 여러 일 중, 가상자산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 건 긍정적입니다.”

지난달 18일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증권거래위원회(SEC) 사무소에서 만난 헤스터 퍼스 SEC 상임위원은 최근 미국 내에서 가상자산 제도권 편입에 관한 논의가 늘어난 것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지난 5월 미 하원은 가상자산 제도화 법인 ‘21세기 금융혁신 및 기술 법’(FIT21)을 통과시켰고, 이 법은 현재 미 상원 표결을 앞두고 있다. 퍼스 위원은 2018년 SEC 상임위원으로 임명된 이후 가상자산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온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가상자산 규제만 명확했다면 (FTX 같은 거대 암호화폐 거래소의 파산 등) 각종 불법 활동으로 소비자가 피해를 입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헤스터 퍼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상임위원은 지난달 18일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SEC 건물에서 중앙일보와 만나 ″가상자산 규제만 명확했으면 (FTX 같은 거대 암호화폐 거래소 파산 등) 소비자 피해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상언 기자


실체가 없는 가상자산을 계속 법적 규제가 모호한 회색 영역에 남겨 둘 것인가, 아니면 제도권 안으로 편입 시킬 것인가. 최근 글로벌 흐름은 후자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이용자 보호부터, 불확실성 제거까지 건전한 시장 조성을 위해선 규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공감을 얻고 있어서다.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 규모는 올해 717억 달러(약 98조원, 스태티스타). 미국이 규제를 위한 걸음을 뗀 사이, 유럽연합(EU)은 법 시행에 들어가는 등 세계 각국이 가상 자산 제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핵심은 ‘투자자 보호’


지난달 30일부터 유럽에서는 가상자산 관련 세계 최초 포괄적 법안인 ‘가상자산시장에 관한 법률(MiCA)’이 일부 시행됐다. 자산준거토큰(ART, 특정 자산 기반으로 발행되는 토큰) 및 전자화폐 토큰(EMT, 기존의 전자화폐와 유사한 기능을 가진 토큰) 외 기타 가상자산에 대한 규정은 오는 12월 30일 부터 시행된다. 유럽 의회와 전문가들이 꼽는 MiCA의 핵심은 투자자 보호다. 가상자산 산업의 대표적인 문제인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하기 위해, 기존 금융 서비스에 적용되던 내부자 거래 금지 등의 원칙을 가상자산에도 적용했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EU 집행위원회. EPA=연합뉴스


MiCA에는 가상자산서비스 제공자(CASP) 및 가상자산 발행인에 대해 엄격한 승인 조건이 담겼다. 또 가상자산 사업자들은 법정 의무 공시사항을 담은 백서를 발행해야한다는 내용도 들어갔다. 백서를 통해 발행자와 이용자 간 정보 불균형을 해소해 혹시 모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MiCA 법안 제정 당시 주도적 역할을 한 에로 헤이넬루오마 EU 의원은 중앙일보와 서면 인터뷰에서 “이용자들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만큼 가상자산 업계를 제대로 규제하는 게 중요했다”며 “ART 및 EMT 발행자에 대한 구체적인 의무를 명시한 게 큰 진전”이라고 설명했다.

MiCA는 내부 정보를 구체적으로 정의(제87조)하고 이를 이용한 내부자 거래, 내부 정보의 불법적 공개(제89, 90조)를 금지하고 있다. 헤이넬루오마 의원은 “수년간 암호화폐 업계에서 생긴 여러 스캔들을 고려할 때 이런 조항은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는 데 필수적”이라며 “이 조항이 완전하게 효과를 내려면 국가 관할 당국의 올바른 시행과 집행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경민 기자


규제가 가져온 시장 활성화


유럽 가상자산 업계에선 MiCA로 인해 시장이 일부 위축된 면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규제가 생긴다는 건 기회라는 반응이 많다. 불확실성이 해소되기 때문이다. 유럽 가상자산 전문 벤처케피털(VC) 그린필드의 크리스티안 짐머만 최고법률책임자(CLO)는 “(아직 가상자산 규제가 없는) 미국의 가상자산 프로젝트가 유럽으로 이전하거나, 미국 창업자가 유럽 중 미국에서 가장 가까운 리스본으로 이전하는 사례들이 있다”며 “MiCA로 인해 유럽의 가상자산 시장에 새로운 유입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가상자산 시장을 보유한 미국(2023년 32조원, 스태티스타)은 유럽보다 규제에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올해 말 예정된 상하원 선거 등 굵직한 정치 행사를 앞두고 의회에 관련 법안이 통과되는 등 분위기가 바뀌었다. 지난 5월 미 하원을 통과한 ‘21세기 금융 혁신 기술법안(FIT21)’이 대표적이다. 가상자산의 법적 지위를 정의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가상자산 제도화에 회의적인 민주당에서도 이례적으로 하원 의원 71명이 찬성표(전체 213석)를 던졌다.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업체 체이널리시스의 제이슨 소멘사토 북미정책총괄은 “미국 정부 내 가상자산 생태계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매우 많다”고 말했다.

규제 기관도 적극 움직이고 있다. 가상자산 규제 주도권을 가져오려는 미국 상품거래위원회(CFTC) 캐롤라인 팸 상임위원은 지난달 17일 미국 뉴욕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자금조달 등 증권과 연관된 가상자산 행위는 SEC가 관할해야 하지만, 그 외에 블록체인화 된 쿠폰, 게임에 사용되는 가상자산 기술 등의 활동은 CFTC가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캐롤라인 팸 미 상품거래위원회(CFTC) 상임위원이 지난달 17일 미국 뉴욕의 한 호텔에서 중앙일보와 만났다. 윤상언 기자

미국이 바뀌면, 세계가 바뀐다


미국의 가상자산 규제가 명확해지면, 이를 참고하는 해외 주요국의 가상자산 제도화에도 속도가 붙을 수 있다. 미 증시에 상장된 가상자산거래소 코인베이스의 존 오로건 아시아태평양지역 담당자는 “미국 규제 동향을 대다수 주요국들이 주의 깊게 보고 있기에, 미국 내 가상자산 규제 명확성이 높아지면 글로벌 가상자산 규제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비트코인 관련 상장지수펀드(ETF)를 중심으로 증권사, 투자은행 등이 활동하는 ‘전통 금융’ 영역과 가상자산 산업간 결합도 빨라질 전망이다. 올초부터 미국, 홍콩, 호주 등의 금융 당국이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하고 있다. 미국 ETF 운용사 글로벌 X의 아담 지 상품개발팀장은 “기관투자자들이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투자를 위해 ETF 상품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글로벌X는 지난 3월 비트코인 가격 추세를 반영하는 ETF 상품인 ‘글로벌X 비트코인 트렌드 전략 ETF’를 출시했다.

워싱턴DC, 뉴욕(미국)=윤상언 기자, 권유진 기자 youn.san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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