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서 넘겨받은 '바통'…예견된 부실 '폭탄 돌리기' [기업부채 3000조②]
코로나 이후 600조 넘게 불어
가계대출 총량 규제 강화 영향
"산업별 위험 관리 철저해야"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상처로 남아 있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는 과도한 기업부채로부터 촉발된 사태였다. 그런데 현재 국내총생산과 비교한 우리나라 기업들의 부채 비율은 IMF 사태 당시를 웃돌며 연일 역대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기업 10곳 중 4곳은 영업해서 번 돈으로 대출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좀비 상태다. 그 사이 빚에 더욱 관대해진 사회가 됐지만, 그래도 이제는 제동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기업부채 3000조 시대 이면의 불안과 대응 방안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국내 금융사가 기업에 내준 대출만 2000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발발 이후 기업들의 경영 여건이 급격히 악화하자 자금 마련을 위한 대출 수요가 확대된 영향이다. 여기에 더해 정부의 가계대출 총량 규제 강화로 금융사들이 기업대출에서 성장을 모색하려는 움직임도 맞물렸다.
문제는 고금리와 이에 따른 경기 침체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기업들의 빚 상환 여력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연스럽게 금융사들이 보유한 대출의 질이 나빠지면서 건전성에 위협을 받고 있다. 앞으로도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산업별 위험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금융사의 기업대출 잔액은 지난 1분기 말 기준 1866조4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2조원(5.2%) 늘었다. 코로나19 발발 직후인 2020년 1분기 말과 비교하면 637조3000억원(51.9%)이나 불었다. 이는 국내 기업들이 짊어진 빚(2734조원)의 68.3%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통상 금리 상승기에는 가계보다 기업대출이 크게 증가한다. 경기 둔화로 운영자금에 대한 필요가 커진 기업들의 대출 수요가 확대되기 때문이다. 지난 2000~2020년 금리 상승기 중 기업대출은 연평균 28조5000억원 늘어나면서 가계대출(26조9000억원)보다 증가 폭이 컸다. 반면 이 기간 금리 하락기에는 가계대출이 연평균 32조7000억원 증가해 기업대출(17조1000억원)보다 두 배 가까이 확대됐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금리 상승기에는 이 같은 경향성이 보다 뚜렷하게 관찰됐다. 이 기간 기업대출은 연평균 58조5000억원 늘어난 반면, 가계대출에서는 오히려 2조원 감소했다. 코로나19 발발 이후 기업들의 운영자금 수요가 과거보다 크게 확대되면서다. 또 고금리로 채권시장이 위축돼 은행 문을 두드리는 기업들이 늘었다.
아울러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 강화도 기업대출이 크게 불어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정부가 지난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 만기를 최대 40년으로 축소한 데 이어 올해 9월부터는 스트레스 DSR 2단계를 본격 시행한다. 이는 대출 한도를 산정할 때 가산금리(스트레스 금리)를 추가 부과해 한도를 축소하는 제도다. 금융사들이 상대적으로 규제에서 자유로운 기업대출로 눈을 돌리게 만든 배경이다. 실제 5대 은행은 올해 가계대출 성장률을 1~2%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상태다.
문제는 기업대출의 몸집이 불어난 만큼 부실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2021년 8월 0.50%였던 기준금리를 지난해 1월까지 10차례 연속 인상해 3.50%로 급격히 끌어올렸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의 금융비용이 치솟았고, 경기 둔화에 따른 매출 감소로 원리금 상환에 어려움이 가중됐다. 실제 지난해 이자보상배율이 1미만인 기업 비중은 41.4%에 달했다. 기업 10곳 중 4곳은 영업해 번 돈으로 대출 이자조차 갚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에 금융사들이 보유한 대출의 질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내 금융사의 기업대출 연체율(원리금 1개월 이상)은 지난 1분기 말 기준 2.31%로 전년 동기 대비 0.82%포인트(p) 상승했다. 지난 2012년 6월(2.48%)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같은 기간 은행권은 0.48%로 비은행권은 5.96%로 각각 0.13%p, 2.33%p 오르며 위험 수위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도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이 회복되고 있지만 내수 부진이 이어지고 있으며, 금리 인하 시기도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에 금융사들이 손실흡수능력을 확충하는 등 리스크 관리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진단이다.
한은은 최근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최근 기업신용이 빠른 속도로 늘어난 만큼, 금융기관들이 산업별 위험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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