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산 마늘 이젠 못 먹나…남해군은 마늘밭 72% 사라졌다, 왜 [위기의 국민작물]
100세 시부모 떠난 마늘밭…70대 며느리 홀로 수확
김 할머니는 10여년 전만 해도 0.66㏊(약 2000평) 규모로 마늘을 재배했다. 당시에는 시부모와 남편·자녀 등 3대가 함께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장수마을’로 유명한 설천면 덕신마을에서 102살까지 사셨다는 그의 시어머니는 그 나이에도 가위로 마늘 꼭지도 떼주고 뿌리도 자르며 일을 거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마늘밭에는 며느리인 김 할머니 혼자만 남았다.
김 할머니는 “시어머니, 시아버지, 그리고 우리 영감(남편) 다 돌아가시고 자식들도 취직하면서 마을을 떠났다. 마늘은 손이 많이 가서, 나 혼자서는 이것밖에 못 한다”며 “이제 내도 힘들어서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했다.
하나둘 눈감는 장수마을…“고령에 힘들어 마늘 안 해”
실제 6~7년 전만 해도 마을 앞 농경지 가운데 70~80%가 마늘밭이었다. 지금은 약 20%에 불과하다고 한다. 한진균(66) 전국마늘생산자협회 남해군지회장은 “고령화에 지역 대표 농산물이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마늘 농사는 기비(基肥·파종 전 주는 거름)하고, 파종하고, 겨울철 보온을 위해 비닐로 씌우고(피복), 틈틈이 풀 뽑고, 약 치고, 수확 뒤에는 볕에 말려 선별하는 등 과정이 복잡해 어르신이 하기 어렵다”라고 했다.
남해마늘, 3분의 1로 ‘급감’…손쉬운 시금치는 ‘껑충’
남해군에서는 마늘 대신 시금치를 기르는 농가가 늘고 있다. 시금치는 재배 기간(4~5개월)이 마늘(8~9개월)보다 짧고 농사짓기도 비교적 쉽다고 한다. 20년 전 255㏊(2004년)에 불과했던 시금치 면적은 올해 약 900㏊로 증가했다. 현재 마늘 재배 면적의 2배다.
남해군 마늘팀 관계자는 “농경지가 최소 900평은 돼야 수확기에라도 기계를 도입하는데, 남해는 대부분의 마늘밭이 300평 내외”라며 “게다가 어르신이 기계 다루는 법을 새로 배우기도 어렵다”고 했다.
인건비·자재비↑…제주, 마늘 대신 양파·브로콜리 심어
제주 서귀포시에서 0.16㏊(약 500평) 마늘밭을 일구고 있는 전옥자(75)씨는 “아저씨(남편)까지 돌아가신 후 약 8000평이던 마늘밭 중 500평만 직접 농사를 짓는다”며 “이 와중에 올해 마늘의 70~80%가 벌마늘화(비상품) 돼 제값 받기도 어렵다”고 했다. 제주에서는 마늘 대신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좋은 양파나 콜라비·브로콜리 등을 심는 농민이 있다.
농민 김대진(78)씨는 “10여년 전 하루 10시간 기준 5만원이었던 인건비가 올해는 최소 11만원으로 2배 이상이 됐다. 새참비·간식비도 따로 줘야 한다”며 “마늘 농사를 지어도 이익이 거의 없다. 마늘밭을 줄이고, 양파와 브로콜리·콜라비를 심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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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마늘 면적도 ‘반 토막’…“국내산 마늘 못 먹을지도
경남연구원 연구기획조정실 이문호 박사(농업경제학)는 “고령화 문제가 가장 심각한 것이 농업이다. 국내산 마늘을 더는 먹지 못하고, 수입해서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입에만 의존하다 외교 문제나 전쟁 등으로 수입량이 확 줄면 국내 가격이 폭등할 우려도 있다”며 “주로 김치에 들어가는 마늘·고추 등 양념 채소는 안 먹는 사람이 없는 만큼 식량 안보 차원에서 적정 수준의 생산량이 유지돼 한다”고 조언했다.
남해·제주=안대훈·최충일·박진호 기자 an.dae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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