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농부'도 고추 손뗐다…요즘 대마밭에 사람 몰리는 이유 [위기의 국민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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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농사 일손 부족에 수익성 떨어져 기피
지난 5월 13일 오후 경북 안동시 서후면 한 고추밭. 밭 주인 김상열(70) 서후고추작목반장이 모종 심기가 끝난 0.33㏊ (1000평) 고추밭에서 혼자 잡초를 뽑고 있었다.
50여 년 전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해 한때 1.32㏊ (4000평)가 넘는 고추밭을 가꿨던 김 반장은 나이가 들면서 농사 규모를 축소했다고 한다. 김 반장은 “고추 농사는 여름철에 농약을 일주일에 한 번꼴로 뿌려야 해서 일손이 많이 필요한 데다 수익성도 떨어져 젊은 사람은 기피하는 작물”이라고 말했다.
인근에서 5.95㏊ (1만8000평) 규모의 고추 농사를 짓는 조영득(66)씨도 “젊은 농사꾼이 없어 외국인 노동자로 꾸려나간다”고 했다. 조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사태를 거치며 외국인 근로자 일당이 6만원에서 13만원까지 올랐다”며 “밥값이나 차비까지 포함하면 올봄 인건비만 하루 140만원씩 들어 수익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고령화 영향으로 농촌에 젊은 인력이 부족해지면서 고추 농사가 휘청거리고 있다. 고추는 농사를 일일이 사람이 해야 하는 작목이다. 대신 농가는 노동력이 덜 드는 대마 같은 작물로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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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고추 생산량 10년 만에 반 토막
이에 고추재배 면적이 급감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고추 재배면적은 2만7132㏊ (8207만4300평)로 2022년(2만9770㏊·9005만4250평)보다 8.9% 줄었다. 10년 전인 2013년 4만5360㏊(1억3721만4000평)의 절반 수준이며 1975년 통계 발표 이래 최저치다. 전국 17개 시도 중 고추 생산량이 가장 많은 경북은 2013년 1만725㏊(3244만3125평)에서 지난해 7269㏊(2198만8725평)로 10년간 30% 정도 감소했다. 통계청은 생산비 증가로 인해 재배 면적이 줄었다고 봤다. 인건비가 증가하면서 10a(100㎡)당 고추 생산비는 2020년 370만8000원에서 지난해 432만4000원으로 11.2% 올랐다.
반면 고추 수입 양은 증가 추세다. 조상기 전 안동봉화조합공동사업법인 대표이사는 “국내 고추 소비량을 20만t 정도로 보는데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국내 생산량이 절반인 10만t 정도 차지했다”며 “불과 10년 사이에 생산량이 급속도로 줄면서 현재 13만~14만t 정도가 중국 등에서 수입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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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 밭 갈고 씨만 뿌리면 3개월 동안 2m 자라
안동 고추 농가는 대마로 작목을 바꾸고 있다. 최근 안동에서 섬유용 대마를 키우는 29농가는 대부분 몇 년 전만 해도 고추를 길렀다고 한다. 이종각(58) 안동대마작목반장은 “대마는 밭을 갈고 씨만 흩뿌려서 흙을 덮어주면 3개월 동안 2m 이상 자란다”라며 “잡초보다 잘 자라 농약을 칠 필요도 없어서 부부 2명이면 충분하고 1년에 이모작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반장은 21년 전 고향 안동으로 내려와 3.3㏊ (1만평)에 고추 농사를 지어 연간 매출 1억원을 기록한 ‘억대 농부’였다. 하지만 고령화로 인한 인건비 상승 등을 겪으며 새 작물을 고민하다 6년 전 대마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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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 옷부터 건축자재까지 다양한 분야 활용
이날 안동시 풍천면 한 대마밭에서 만난 20~30대 젊은이들도 대마 농사를 배우기 위해 서울과 호주 등 해외에서 온 젊은 예비 농부였다.
1년 전 귀농해 대마를 기르는 김국희(40)씨는 “대마 농사 과정을 알게 되면 왜 젊은 사람이 고추가 아닌, 대마밭에 몰리는지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호주에서 인테리어업을 하다가 3개월 전 한국에 왔다는 정재용(37)씨도 “고추와 달리 대마는 씨만 뿌리고 그냥 둬도 잘 자라는 작물이다”며 “미래 산업 가치도 뛰어난 것 같아 대마 농사를 배운다”고 말했다.
섬유용 대마는 옷부터 건축자재와 자동차 내장재까지 다양한 산업 분야에 활용될 수 있다. 씨 값과 기계 운영비만 들기 때문에 수익성도 높다. 0.066㏊ (200평)당 순수익이 80만원으로 예상된다.
박영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 양념 채소 관측팀장은 “고추 외에도 마늘 등 온 국민이 연중 소비하는 채소 재배 면적이 갈수록 줄고 있다”며 "정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무작정 외국인 노동자를 들여오는 게 아니라 인건비를 줄일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동=백경서·박진호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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