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달지 말라, 당신은 퇴장"…거야, 국회법 맘대로 사용설명서
#.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발언을 제지당했다. 그가 “존경하고픈 위원장님”이라고 하자 정청래 법사위원장(더불어민주당)이 3초 만에 “발언을 중지한다”고 막아섰다. 정 위원장은 ‘(상임)위원장은 회의 발언을 금지·퇴장시킬 수 있다’는 국회법 145조 2항을 근거로 댔다.
#.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발의촉구 국민동의청원’ 2차 청문회(26일) 증인으로 채택된 김건희 여사에 대한 증인출석요구서를 곧 발송한다. 만약 수령을 거부하거나, 불출석하면 국회증언·감정법 위반으로 김 여사와 대통령실 인사를 고발할 예정이다. 이미 민주당은 1차 탄핵청원 청문회(19일) 증인출석요구서 수령을 거부한 정진석 비서실장 등 대통령실 인사를 15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거대 야당이 국회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악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사용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은 국회법 조항이 많다. 잠자고 있는 국회법 조항을 흔들어 깨우겠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국회법을 무리하게 적용하고 있어서다. 무엇보다 ‘국회의 민주적·효율적인 운영에 기여함이 목적’이라는 국회법 1조에 정면으로 배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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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논란의 질서유지권
지난달 21일 열린 법사위의 채상병 특검법 입법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임성근 전 사단장은 회의 도중 10분씩 퇴장당했다. 민주당 공세에 “발언할 기회를 달라”(이종섭), “수사 중이라 답변하기 어렵다”(이시원), “제 말은 그게 아니다”(임성근)며 반론을 폈다는 이유다. 정 위원장은 이때도 국회법 145조 2항을 근거로 댔다.
하지만 회의질서유지 목적인 국회법 145조 2항은 발동에 앞서 1항 ‘위원장의 경고·제지’가 전제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즉 경고·제지하고도 상황이 계속 혼란스러울 경우에만 퇴장이란 극단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정 위원장은 퇴장을 명하기에 앞서 “토 달지 말고 사과하라” “또 끼어드느냐” 등의 발언만 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질서유지권은 폭력적 행위나 감금 등에 따라 회의가 방해됐을 때 제한적으로 발동하는 것”이라며 “위원장 마음에 안 드는 발언을 했다고 퇴장시키거나 발언 중지를 하는 건 오히려 국회의원·증인의 발언권을 침해했기에 직권남용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회의 주재자는 중립적이고 공정하게 회의를 진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데 편파성과 당파성을 보이면 회의의 목적과 성과가 흐려진다”고 지적했다.
정 위원장은 5일 민주당 최고위에선 “회의방해 시 국회법 165·166조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아 국회의원 재출마가 불가능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해당 조항은 ‘회의방해 목적으로 폭력·감금·협박 등의 행위를 하면 5년 이하 징역·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상대당 국회의원을 향한 겁박”(국민의힘 중진)이란 반발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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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尹 탄핵청원 청문회 논란
민주당은 9일 법사위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즉각 발의 청원 청문회 실시계획서’를 의결했다. 18명의 법사위원 중 국민의힘 위원 7명이 모두 퇴장한 채 민주당·조국혁신당 위원 11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두 차례(19·26일) 청문회를 열기로 하고 김 여사 등 증인 39명, 참고인 7명을 채택했다. 국회법 65조 ‘위원회는 중요 안건심사와 국정감사·국정조사에 필요한 경우 증인·참고인에게서 증언을 듣기 위해 위원회 의결로 청문회를 열 수 있다’는 조항이 민주당의 근거법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탄핵청원 청문회가 탄핵소추 절차를 규정한 헌법·국회법을 어겼다며 반박하고 있다. 국회법 130·131조에는 ‘탄핵소추안을 본회의 의결로 법사위에 회부해 조사하게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탄핵청원 청문회 역시 법사위의 조사 과정이기에 헌법 65조 상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법사위 회부 동의안 본회의 의결이 선행돼야 한다는 논리다. 민주당이 2일 강행한 검사 4명 탄핵소추안 법사위 회부의 건은 헌법·국회법 절차를 따랐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 탄핵청원은 일반 청원과 달리 헌법이 규정한 절차를 따라야 하기 때문에 탄핵청원 청문회는 위헌”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 청구 및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도 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헌법·국회법 어디에도 위원회 청문회 개최 요건에 ‘탄핵청원은 방법을 달리한다’는 내용이 없다. 절차상 하자가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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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金여사 불출석시 처벌 가능한가
26일 2차 탄핵청원 청문회에 김 여사가 불출석하면 처벌이 가능할지도 관심이다. 민주당은 “김 여사가 정당한 이유 없이 불출석하면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정당한 이유 없이 불출석한 증인 등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는 국회증언·감정법 12조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위헌·위법한 청문회이기 때문에 출석할 이유가 없으며, 당연히 국회증언·감정법에도 저촉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회증언·감정법이 준용하는 형사소송법 148조에는 배우자 등 친족의 묵비권을 명시했다”며 “윤 대통령 탄핵청원 청문회에서 배우자인 김 여사의 출석·증언을 강요하는 것은 위법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제헌의회 이후 69차례 개정된 국회법…미·영은 구속력 적은 운영규칙인데 한국은 법으로
「 정치권에서 정쟁 수단으로 활용하는 국회법을 해외 주요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과거에는 한국에서도 인사청문회 자료 제출을 촉구하는 정도로 국회법이 활용됐지만,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을 가져간 21대 국회부터 여야 간 이견이 첨예한 쟁점 법안을 강행 처리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1대 국회에서 처리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법'은 국회법의 오용을 잘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당시 야당의 반발에 부딪힌 민주당은 하루짜리 임시국회를 소집하는 ‘회기 쪼개기’ 수법으로 이를 무력화했다.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 도중 회기가 끝나면 필리버스터도 종결된 것으로 간주하고, 다음 회기가 열리면 해당 안건에 대해 지체 없이 표결한다’(제106조의2 8항)는 조항을 활용했다.
다수당이 수적 우위를 내세워 일방적으로 법안을 처리하지 못하도록 만든 안건조정위도 취지와 달리 속전속결 도구로 이용했다. 조정위는 3명의 다수당 위원과 그 외 정당에서 3명의 위원을 구성해 4명의 찬성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다수당이 수로 밀어붙이는 것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다.
하지만 민주당은 소속 의원을 위장 탈당시킨 뒤 조정위에 넣어 숫자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22개 법안을 3일 만에 처리했다. 비판이 쇄도했지만, 민주당은 “국회법을 근거로 했으니 문제없다”고 일축했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국회법을 뜯어고치는 일도 반복된다. 국회법은 1948년 제정된 이래 69차례 수정됐다. 2021년 법제사법위원회의 법안 체계·자구심사 기한을 120일에서 60일로 축소(국회법 제86조)한 것이 대표적이다. 각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은 법사위의 심사를 받는데, 법사위원장이 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넘어가자 국회 의석의 과반을 가진 민주당이 심사 기한을 반 토막 낸 것이다.
미국·영국·프랑스 등 해외 주요국은 국회법 대신 하위법령인 ‘의사 규칙’을 두고 있다. 국회 운영의 근거를 구속력 높은 법이 아닌 자율성 높은 규칙에 둔 것은 정치적 타협의 여지를 남기려는 취지다. 국회 입법조사처 전문위원은 “의사 진행의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법에 담으면 조문 해석 논란과 다툼이 이어질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는 “의회 정치는 법에 더해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진행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여백이 필요한데, 지금은 모든 걸 법에 의존하면서 정치가 작동할 수 있는 공간을 모두 파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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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김정재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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