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부터 은행까지...90년대 워크맨 신화 재현하는 소니 [트랜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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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변화 거부한 소니의 몰락
소니는 세계 최초로 트랜지스터라디오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대세였던 진공관 라디오는 크고 무거웠습니다. 소니의 트랜지스터라디오는 작고 가벼워 시장을 빠르게 장악했습니다. 이후 컬러 TV와 비디오 플레이어 등을 연달아 선보이며 경쟁사를 압도하는 디자인과 품질로 전자 산업을 이끌었습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도 소니의 제품에 항상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초대박 히트 상품 ‘워크맨’ 이후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소니의 질주는 영원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2000년을 전후로 MP3 플레이어가 등장하고 애플이 아이팟을 내놓으면서 디지털 중심 하드웨어가 대중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소니는 시대적 변화를 거부하고 미니디스크(MD)라는 자체 음향 기기를 개발했지만, 결국 MP3에 밀려 사라졌습니다. 과거 독자적인 비디오테이프 규격을 고집하다 겪은 실패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만든 셈입니다. TV 등 가전 시장 역시 삼성과 LG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소니는 디지털 카메라·노트북·휴대전화 등 다양한 하드웨어를 선보이며 하드웨어 중심 전략을 이어갔습니다. 소니의 광학 기술과 카메라는 여전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플레이스테이션(PS)이라는 전 세계적 관심을 얻은 게임기로 하드웨어의 강자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전자기기 제조사에서 엔터테인먼트사로 변신한 소니
소니는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소니는 할리우드 5대 스튜디오 중 하나인 컬럼비아 픽처스를 인수하고, 소니 뮤직을 통해 소프트웨어 비즈니스를 추가했습니다. 여기에 플레이스테이션을 중심으로 게임 구독 서비스를 출시하고, 최근에는 포트 나이트로 유명한 에픽게임즈에 거액을 투자하는 등 게임 생태계를 지속해서 강화하고 있습니다.
소니는 자신을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부릅니다. 음악·영화 등 콘텐트 관련 소프트웨어 부문 매출은 소니 그룹 전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콘텐트 외에 금융 사업도 매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소니의 비즈니스 축은 소프트웨어로 옮겨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과거부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충분히 결합할 수 있었음에도, 소니의 혁신을 가로막은 이유는 바로 ‘폐쇄’에 있습니다. 소니는 독자적인 개발과 폐쇄된 형태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성장했습니다. 소니는 IT 산업에서 오픈소스 전략이 시장 크기를 키우고 다양한 콘텐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소니의 비즈니스 변화와 혁신은 국내 기업에도 시사점을 줍니다. 삼성·SK 등은 반도체·전자 제품 등 하드웨어 중심 기업이지만, 소프트웨어 쪽에선 영향력이 낮습니다. 반대로 네이버·카카오 등 소프트웨어 중심 기업은 하드웨어 영향력이 낮습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접목하고 싶어도 어느 쪽에 무게 중심을 두어야 하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소니가 현재 걸어가는 길은 애플과 유사합니다. 애플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융합의 꿈을 실현했고, 전 세계 시가총액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소니는 애플과는 다른 강점을 갖고 있습니다. 게임·영화·음악 등 엔터테인먼트의 핵심 콘텐트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니는 인공지능·증강현실 등의 최신 기술과 소니 하드웨어를 접목해 더욱 풍부한 콘텐트를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습니다.
가상 자산 산업까지 손 뻗은 소니의 미래
소니의 최근 행보 중 주목할 부분은 바로 웹3 영역입니다. 소니는 이미 가상 자산 거래소를 인수했고, 일본 게임 전문 블록체인 기업과 조인트 벤처를 설립하는 등 최근 일본 정부의 웹3 관련 기조에 빠르게 발맞추고 있습니다.
소니 그룹 산하 인터넷 전문은행 ‘소니 뱅크’는 웹3가 엔터테인먼트와 금융을 연결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이야기합니다. 소니 뱅크는 블록체인 기반 토큰 증권을 발행했으며, 법정 화폐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을 소니 내부에서 게임을 비롯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소니는 과거 폐쇄적이고 독자적인 길을 고집하던 방식에서 벗어났습니다. ‘개방’과 ‘공유’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고객에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융합된 경험을 제공하려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미 성공적으로 부활한 소니가 콘텐트와 웹3를 중심으로 어떻게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지 기대됩니다.
윤준탁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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