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사고땐 튀어라, 그리고 더 마셔라" 김호중 수법 판친다

이보람 2024. 7. 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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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서울 마포구의 한 도로에서 마포경찰서 소속 경찰관이 운전자의 혈중알코올 농도를 측정하고 있다. 연합뉴스

" “교통경찰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음주 사고를 내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냐’는 것인데, 요즘은 질문이 바뀌었습니다. ‘음주 사고 냈을 때 김호중처럼 일단 도망가면 음주운전은 처벌 안 받는 것 아니냐’고 묻습니다. 이럴 때마다 경찰로서 허탈합니다.” "
수도권 소재 한 경찰서 교통과장인 A경정은 15일 “김호중 사건 이후 음주 교통사고를 낸 후 도망가는 게 오히려 유리할 수 있다는 학습이 된 것 같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음주측정 회피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음주측정 수치가 없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 음주 사실이 명확히 확인되면 처벌이 가능하도록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수 김호중은 지난 5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내고 도망치는 등 혐의(위험운전치상·사고후미조치)로 지난달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 강남경찰서는 검찰 송치 당시 위드마크(Widmark·체중과 마신 술의 양 등을 토대로 혈중알코올농도를 역산하는 공식) 분석 결과와 김씨의 사고 당일 행적 등을 바탕으로 김씨의 음주운전 혐의가 인정됐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검찰은 김씨를 재판에 넘기면서 음주운전 혐의는 제외했다. 현행법상 혈중알코올농도 측정에서 정확한 음주 수치가 특정돼야 음주운전 혐의로 처벌할 수 있는데, 김씨가 사고 직후 음주 측정을 회피해 사고 시점의 정확한 혈중알코올농도를 확인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위드마크 공식은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적용된다는 판례도 고려했다. 방송인 이창명(55)씨가 대표적이다. 이씨는 2016년 4월 교통사고를 낸 지 9시간 만에 경찰에 출석했고 음주운전 등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법원은 위드마크 공식을 적용해 산출한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당시 0.05% 이상)를 인정하지 않고 무죄를 선고했다.

음주 뺑소니 혐의를 받는 가수 김호중이 지난 5월 24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와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김씨는 사고후미조치 등 혐의로 지난달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김호중씨 사건 이후 실제 교통사고를 낸 뒤 음주측정 없이 도망치는 사건이 잇따라 경찰에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인천 중부경찰서는 14일 오후 9시 20분쯤 인천시 도화동 일대 도로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차량 추락 사고를 내고 도망친 혐의(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로 40대 남성을 붙잡아 수사 중이다. 12일엔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전직 축구선수 이모(35)씨가 가로수·전압기 등 들이받는 사고를 내고 도주한 뒤 자택에서 붙잡혔다. 서울의 한 경찰서 교통과장은 “체감상 최근 음주 단속을 피해 ‘일단 도망가고 보자’는 식의 피의자들이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의 음주 측정을 거부한 피의자가 사고 현장을 벗어나 추가 음주를 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지난달 27일 오전 전북 전주시에서 상대방 운전자가 사망하는 교통사고를 낸 50대 운전자 A씨는 출동한 경찰에 “병원에서 채혈하겠다”며 회피한 뒤 119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갔고, 인근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사 마셨다. 경찰의 음주측정은 사고 2시간 후에나 이뤄졌다.

국회엔 경찰의 정확한 음주 상태 파악을 방해하기 위해 추가 음주를 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이른바 ‘김호중 방지법’(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이 2건 발의된 상태다. 하지만 음주측정 회피나 음주 측정치가 있어야만 처벌이 가능한 도로교통법 조항에 대한 개정 움직임은 아직 없는 상황이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음주측정을 회피·거부하고 도주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이 음주운전 처벌보다 낮으면 음주측정 거부를 선택하게 된다”며 “법의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도록 음주측정 회피 행위를 음주운전에 준해 처벌하는 등 간극을 메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도 “경찰 수사 결과 종합적으로 음주운전 사실이 확인된다면 음주운전 혐의로 처벌이 가능하도록 입법적 보완이 시급하고, 혈중알코올농도 측정 외에 음주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기술 개발도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보람 기자 lee.boram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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