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모래주머니 달고 뛴다”는 기업인들의 아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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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벌 5886개…류진 회장 “몸 가벼운 경쟁국 버거워”
“기업가 정신 르네상스 풍토 조성해 달라” 경청해야
기업은 혁신을 이끌고 일자리를 만들며, 경제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기업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에 직결되고, 글로벌 경제 전쟁의 첨병인 한국 기업이 보다 강해져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전장에 나서기도 전 한국 기업의 기력은 빠지기 일쑤다. 낡고 과도한 규제 탓이다.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이 지난 12일 ‘2024년 한경협 CEO 제주하계포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기업은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뛰는 형국이다. 세계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데, 가벼운 몸으로 뛰는 경쟁국을 상대하기엔 너무 힘들다”고 말한 배경이다.
한국 기업은 규제와의 전쟁 중이다. 지난해 기획재정부 등이 참여한 ‘경제 형벌 규정 개선 태스크포스(TF)’의 조사에 따르면 414개 경제 관련 법률에서 경제 형벌 규정은 5886개나 된다. 이 중 다수는 이중 처벌 혹은 양벌 규정이다. 한국의 CEO가 다른 나라의 CEO보다 과잉 형사처벌 위험이 높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게다가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담은 상법 개정안과 파업 노동자의 불법행위에 대한 사용자 방어권을 제한하고 원청기업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노란봉투법) 등 기업 경영을 옥죄는 야권의 법안도 대기 중이다.
규제에 대한 기업의 불만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과거에 머무른 규제에 발목 잡혀서는 경제도, 기업도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규제 등에 얽매여 장기 투자와 연구개발(R&D), 인수합병(M&A) 등을 주저하거나 실기할 경우 그 피해는 기업을 넘어 고스란히 국가로 이어진다. “제도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인 시대”라는 그의 말을 흘려 듣기엔 우리가 맞닥뜨린 상황이 엄중하다.
한국의 산업구조는 정체 상태다. 한국의 10대 수출 품목을 보면 2023년과 2000년이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이 기간 중 새로 들어간 것은 3개(자동차 부품, 평판 디스플레이센서, 정밀화학 원료)에 불과하다. 이는 반도체와 석유화학 등 기존 산업이 경쟁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먹거리와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한 채 안주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반도체와 석유화학 분야의 경우 경쟁국과 기업의 추격이 거센 상황이다.
인공지능(AI)이 여는 새로운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기존 산업의 초격차를 유지하고 신사업을 찾을 해법으로 류 회장은 “기업가 정신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과 기업인을 존중하는 풍토를 조성해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젊은 경영인을 많이 배출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엔비디아 같은 혁신 기업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기업이 날고뛸 수 있는 판부터 깔아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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