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수사권 이어 조사권 박탈, 국정원 무력화 겁박

2024. 7. 16. 00:2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장석광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

현행법에서 규정한 간첩 수사권에 대한 다음 설명 중에 틀린 것은? ①2024년 1월부터 국가정보원의 간첩 수사권은 폐지되고, 경찰이 간첩 수사를 전담하고 있다. ②2024년 이전에도 경찰은 간첩 수사권이 있었다. ③국정원과 경찰의 간첩 수사권은 법적으로 차이가 없었다. ④2024년 이후 경찰의 간첩 수사권이 법적으로 강화됐다. ④번이 정답.

한 문제 더 풀어보자. 국정원의 간첩 조사권이 폐지됐을 때 예상되는 현상 중에 틀린 것은? ①국정원과 경찰의 정보 공유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②경찰의 간첩 검거가 더 힘들어질 것이다. ③경찰조직에서 안보경찰의 입지가 더 약화할 것이다. ④국가보안법은 더 강화될 것이다. ④번이 정답.

「 민주당 국정원법 발의안은 개악
수사권 폐지로 간첩 수사 반 토막
입법 역주행에 브레이크 걸 필요

국가정보원 전경. 국가정보원

지난 2020년 12월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당시 거대 여당이던 민주당 주도의 국가정보원법 전부 개정안이 재석 187, 찬성 187로 통과됐다. 1961년 6월 10일 출범 이래 60년 전통을 이어온 국정원의 간첩 수사권은 허망하게 폐지됐다. 국정원과 경찰, 두 기관에서 하던 간첩 수사를 이제 경찰이 전담한다.

국정원 수사권 폐지는 인권 침해란 비판이 주된 이유였지만, 경찰의 원만한 전담과 수사 공백을 피하기 위해 3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유예기간 덕분에 국정원은 법 개정 이후에도 2023년 12월 말까지 간첩 수사를 할 수 있었다.

2021년 1월 경찰청 산하에 국가수사본부를 신설해 출범하면서 경찰의 4개 법규가 정비됐다. 그러나 형사소송법·수사준칙·경찰수사규칙·범죄수사규칙 어디에도 경찰의 간첩 수사 전담을 위해 보완된 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민주당과 경찰은 3년의 유예기간에 마땅히 해야 할 보완 대책 마련 의무를 방기했다. 경찰의 간첩 수사 역량은 오히려 약화했다. 지난 1월 국정원의 간첩 수사권이 폐지되면서 대한민국의 간첩 수사 역량은 자연스레 반 토막 났다.

국가수사본부 전경. 2021년 1월 경찰청 산하에 국가수사본부를 신설해 출범하면서 경찰의 4개 법규가 정비됐으나 경찰의 간첩 수사 전담을 위해 보완된 규정은 없었다. 경찰청


“안보경찰의 70%가 대공 경험이 없고, 팀장급의 80%는 간첩 수사를 해본 적이 없다. 보직 공모를 통해 새로 들어온 안보경찰들은 내년 1월이면 모두 도망갈 거다. 멸공(滅共)은커녕 공멸(共滅)할 판이다. 안보는 안 보인다.” 경찰이 간첩 수사를 전담한 지 6개월이 지난 시점에 어느 월간지 7월호에 간첩을 수사하는 안보경찰의 자조적 한탄이 실렸다.

현장의 안보경찰관들이 참담한 심정을 토로하던 시점에 거대 야당인 민주당은 국정원의 간첩 조사권마저 폐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2020년 12월 수사권 폐지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인권 침해를 조사권 폐지의 주된 이유로 거론했다. 조사권이 수사권보다 오히려 더 광범위하게 인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법안 발의가 불법은 아니지만, 논리적 모순이고 견강부회(牽强附會)다.

21대 국회 때와 마찬가지로 22대 총선에서 175석(현재는 170석)을 얻어 거대 야당이 된 민주당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조직적으로 무리한 입법과 정치 공세에 나서고 있다. 대통령 탄핵, 검찰청 해체, ‘감사완박(감사원 권한 완전 박탈)’까지 검토하고 있다. 소행성이 지구로 날아오는 것처럼 충돌 직전의 위험한 형국이다.

지난 2020년 12월 13일에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전하는 내용의 국정원법 개정안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모두 불참한 가운데 재석 187명 중 찬성 187명으로 통과됐다. 오종택 기자

국정원에서 조사권을 없애면 국정원은 간첩 관련 첩보의 검증조차 하기 어렵다. 국정원과 경찰의 정보공유는 더 어려워지고, 실적 없는 안보경찰은 우수 인력이 외면하면서 무용론까지 거론된다. 국가보안법은 자연스럽게 있으나 마나 한 법으로 전락할 것으로 우려된다. 1964년 2월 북한 정권이 ‘3대 혁명 역량 강화’ 노선을 제시한 이후 60년간 줄기차게 획책해온 국정원 무력화와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이 바야흐로 코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논리와 상식이 실종된 지 오래다. 다수가 곧 정의인 사회에선 소수의 어떤 합리적 반론도 외면당한다. 굽이굽이 대관령 빙판길을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량이 휘파람을 불며 질주하는 위태로운 모습이다. 남북 관계를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북한 정권이 러시아와 군사적으로 밀착하면서 대남 위협을 노골화하는 시점이다. 대한민국의 안보를 무력화하려는 정치권의 위험한 ‘입법 역주행’에 이제는 상식적인 국민이 브레이크를 걸어줘야 할 때가 아니겠나.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장석광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