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민의 마켓 나우] 동남아 머니의 한국기업 M&A
최근 국내 M&A 시장에서 가장 큰 트렌드는, 자금이 국경을 넘나드는 이른바 ‘크로스보더(cross-border)’ 거래다. 지난해 M&A 거래 리스트를 살펴보면, 금액 기준으로 상위 20건 중 무려 13건이 이에 해당한다. 세계적 사모펀드 EQT가 21억 달러에 SK쉴더스를 인수한 거래와 네이버가 8억4000만 달러에 미국의 중고 거래 플랫폼 포시마크를 인수한 거래가 대표적인 사례다.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거래 상대방이 대부분 선진국 기업이거나 글로벌 사모펀드였다는 점이다. 이는 발달된 자본 시장을 가진 나라에서 주로 실행된다는 M&A 자체의 특성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다. 그런데 올해 들어 동남아 기반 기업들이 적지 않은 금액을 들여 국내 기업을 연달아 인수하면서 이목을 끌고 있다.
모건스탠리 사모펀드가 10년을 보유했던 제지 회사 모나리자가 대표적이다. 인도네시아의 아시아펄프&페이퍼그룹(APP)은 모나리자의 경영권 지분을 인수하는 데 약 4000억원을 지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한편 필리핀의 대표적인 레스토랑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졸리비푸즈가 커피 체인 컴포즈커피의 지분 70%를 약 3300억원에 인수하는 것으로 최근 확정됐다.
주목할 것은 그렇게 과감하게 투자하는 APP와 졸리비푸즈의 정체다. APP의 모회사는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시나르마스(Sinar Mas) 그룹으로, 인도네시아 최대의 재벌 그룹 중 하나다. 제지는 물론 부동산·금융·식음료·통신·의료 등 다양한 분야의 자회사를 동남아 여러 국가에서 운영하고 있다.
졸리비푸즈는 필리핀의 국민 패스트푸드 체인인 졸리비(Joliibee)를 시작으로, 커피빈·레드리본·팀호완·요시노야 등 글로벌 식음료 체인을 사 모으며 해외 확장에 집중하고 있는 다국적기업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필리핀의 3300여 매장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약 7000여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매출 총액은 무려 44억 달러에 달한다.
이렇게 동남아 대기업들이 국내 기업의 인수전에 뛰어드는 이유는 명확하다. 한국 혹은 선진국 투자자들에게는 매력적인 매물이 아닐 수 있지만, 동남아 시장에서는 충분히 경쟁력 있는 브랜드·기술력·생산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이라는 큰 시장에 진출하기로 일단 결정했다면, 원화가 상대적으로 싸진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동남아 대기업들의 국내 기업 인수는 점차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이는 M&A 시장에 새로운 자금줄이 나타났다는 뜻이므로, 최근 다소 위축된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것으로 보인다.
이철민 VIG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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