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중의 행복한 북카페] 완벽한 대가의 불완전한 삶
지난 5월 타계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앨리스 먼로에 대한 충격적인 뉴스가 나왔다. 막내딸인 안드레아 로빈 스키너가 9세에 시작된 계부의 성폭력과 그 사실을 방관한 어머니에 대한 진실을 밝힌 것이다. 여성의 열정과 비밀에 대해 정교하게 그려낸 단편소설의 대가가 딸에게 벌어진 일을 뒤늦게 알고도 문제의 남편에게 돌아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함께 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내가 특히 좋아한 작품은 『착한 여자의 사랑』에 수록된 ‘우리 엄마의 꿈’이다. 이 소설에는 남편의 장례식에서 산통을 시작해 딸을 낳은 주인공이 등장한다. 시누이 둘과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와 살면서 딸을 키워야 하는 젊은 여성은 엄마 노릇을 잘 해내지 못한다. ‘자신이 낳은 아기를 달래지 못하는 엄마-이보다 창피한 일이 뭐가 있는가?’라는 문장은 엄마의 절망을 잘 보여준다. 우는 아이에 맞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 처절하다.
독특한 것은 소설의 화자다. 젊은 엄마와 갓 태어난 자신을 타자처럼 바라보는 딸의 목소리, 그 유령 같은 목소리는 책을 덮은 다음에도 한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 작품과 작가의 약력과 위의 뉴스가 기묘하게 맞물린다. 이 소설에서 엄마가 재혼하는 사람이 지질학자라는 정보가 잠깐 지나가는데, 먼로의 두 번째 남편이 지질학자다. 화해하지 못하고 밀어내는 모녀 관계는 먼로의 주요 모티프 중 하나다. 먼로도 끝내 막내딸과 화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름다움과 추함이 얽혀있는 자신의 작품처럼 작가의 삶도 취약하고 위태로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다행인 것은 ‘우리 엄마의 꿈’에 나오는 화자가 죽음이 아닌 생존을 택해 목소리를 냈고, 먼로의 딸 역시 그렇다는 것이다. 엄마의 명성을 지키기 위한 침묵이 아니라 사후에라도 진실을 밝힌 용기, 그 어려운 결심에 대해 상상하니 마음이 먹먹해진다. 잔인한 삶의 진실은 이처럼 대가의 책 밖으로도 길게 이어져 있다.
김성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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