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프랑스는 정당 자율성 존중…국회법 대신 의사규칙 운영
국회법은 과거엔 인사청문회 자료 제출을 촉구하는 주요한 근거 정도로 활용됐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을 가져간 21대 국회부터 여야 간 이견이 첨예한 쟁점 법안을 강행 처리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21대 국회에서 처리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법’은 국회법의 오용을 잘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당시 야당의 반발에 부닥친 민주당은 하루짜리 임시국회를 소집하는 ‘회기 쪼개기’ 수법으로 이를 무력화했다.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방해) 도중 회기가 끝나면 필리버스터도 종결된 것으로 간주하고, 다음 회기가 열리면 해당 안건에 대해 지체 없이 표결한다’(제106조의2 8항)는 조항을 활용했다.
다수당이 수적 우위를 내세워 일방적으로 법안을 처리하지 못하도록 만든 안건조정위도 취지와 달리 속전속결로 통과시키는 도구로 이용했다. 조정위는 3명의 다수당 위원과 그 외 정당에서 3명의 위원을 구성해 4명의 찬성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다수당의 완력 행사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다. 하지만 민주당은 소속 의원을 탈당시킨 뒤 조정위에 넣어 숫자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22개 법안을 3일 만에 처리했다. 비판이 쇄도했지만, 민주당은 “국회법을 근거로 했으니 문제없다”고 일축했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국회법을 뜯어고치는 일도 반복된다. 국회법은 1948년 제정된 이래 69차례 수정됐다. 2021년 법제사법위원회의 법안 체계·자구심사 기한을 120일에서 60일로 축소(제86조)한 것이 대표적이다. 각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은 법사위 심사를 받는데, 법사위원장이 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넘어가자 국회 의석의 과반을 가진 민주당이 심사 기한을 반토막 낸 것이다.
미국·영국·프랑스 등 해외 주요국은 국회법 대신 하위 법령인 ‘의사 규칙’을 두고 있다. 국회 운영의 근거를 구속력 높은 법이 아닌 자율성 높은 규칙에 둔 것은 정치적 타협의 여지를 남기려는 취지다. 국회 입법조사처 전문위원은 “의사 진행의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법에 담으면 조문 해석 논란과 다툼이 이어질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정재 기자 kim.jeong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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