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자전거 알려준 아빠, 이젠 딸한테 배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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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현숙 기자]
아이들이 자라 어느덧 성인이 되었지만 어린 시절, 그날의 감격이나 소중함이 시간이 흘렀다고 희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날은 아이들이 첫 발을 뗀 날이거나, 유치원 가방을 메고 현관에서 인사를 한 날이거나, 삐뚤빼뚤한 글씨로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써서 가져온 날이거나 등등. 무수한 추억 속에 감동으로 자리한 날들이다.
이런 추억 떠올리기 중 단골로 등장하는 장면이 자전거 타며 가르치던 그날이라고, 남편과 딸들은 입을 모은다. 첫 페달을 밟아 내디딜 때의 감격, 세발자전거에서 네 발, 그리고 두발자전거를 타고 제 스스로 달릴 때의 기쁨을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다들 웃음과 정겨움이 최고조에 달하는 기쁨을 맞이한다.
어디 이때뿐이랴. 우리는 이렇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사랑하고 이끌며 오늘까지 품어 왔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라니! 남편은 노란색 자전거, 바이크 위에 앉아 이리저리 방향을 잡아가며 전진하고 있고, 큰딸은 '아빠, 맞아요. 지금이요. 그냥 그대로 쭉 달리시면 돼요. 속도가 의외로 빠르니 조심하세요!'를 외치며 종종걸음으로 아빠 뒤를 따르고 있다.
나는 그저 신문물에 감탄할 뿐이다. 남편이 엉거주춤한 채로 이내 약속 장소로 먼저 가고 있음을 확인하며 뒤따랐다.
딸에게서 배운 전기자전거... 기계 앞에서 쪼그라드는 마음
며칠 전 가족이 모여 저녁 외식 장소로 가는 길에 아파트 입구에서 이 노란 바이크를 발견했다.
▲ 딸이 아빠에게 전용 앱을 통해 바이크를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아주 오래 전, 아빠가 딸이 자전거를 탈 수 있게 가르쳤는데, 이제는 딸에게서 전기 자전거 이용 방법을 배우고 있다. |
ⓒ 한현숙 |
아파트 입구나 거리에서 종종 이 전기 자전거를 본 적이 있으나 타려는 생각은 해 보지 못했다. 앱을 이용하여 택시를 부르는 딸들이나 직장 후배들을 보면서도 선뜻 이용하지 못했다.
▲ 딸의 설명으로 속도를 조절해 가며 생애 처음 전기바이크를 타고 약속 장소로 이동 중인 남편의 모습이 새롭다. |
ⓒ 한현숙 |
예전엔 사람을 보고 말로 하던 일을 스크린 앞에서 하려니 손가락은 갈 길을 잃어 춤을 추기 일쑤고, 한껏 떨어진 시력은 상하좌우로 두리번거리는 눈동자를 더 어지럽게 한다.
이제 키오스크란 산을 겨우 넘었나 싶었는데, 챗GPT, 증강현실 등등 인공지능 AI가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불안과 답답함이 다시 몰려온다. 편리함의 대명사가 우리 중장년층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라 여겨지니 숨이 가빠오고 헐떡거리며 따라가기가 버겁다.
실제로 서울디지털재단이 발표한 '2023 서울시민디지털역량조사' 결과에서 중장년층이 생성형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본 경험이 2~5%에 불과해 그 격차가 심각함을 드러냈다. 중장년도 이러한데 노년층은 얼마나 더 어렵고 불편하겠는가! 기계 앞에서 쪼그라드는 조급한 마음의 부담을 이심전심으로 짐작하게 된다.
▲ 서울 성동구(구청장 정원오)는 지난 2020년 8월 주민들이 자주 사용하는 마트, 영화관 등 다중이용시설에 천천히 시간을 두고 사용할 수 있는 키오스크(느린 키오스크) 4개소를 마련했다고 알렸다.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교육도 실시중이다. |
ⓒ 성동구청 블로그 |
'0차 문화'? 웨이팅 앱을 즐겨 사용하는 20~30대가 모바일 줄 서기를 한 후 활용하는 시간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보통 유명 매장이나 '맛집' 식당이 한산하다는 것만 확인하고 입장하려 하면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이미 수십 명이 '웨이팅 앱'을 통해 유명 맛집 입장 대기를 디지털 기기로 걸어둔 뒤, 다른 장소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냥 무심코 있다가,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데 식당에 왜 들어갈 수 없냐며 볼멘소리를 해도 소용없는 일이 된다. 되돌아오는 것은 시대에 쳐진 디지털역량 약자로서 초라해진 모습을 확인하는 일일 뿐이다.
사실 우리 앞에 놓인 키오스크(무인정보 단발기) 보다 더 어려운 것은 그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반응이다. 느리다고 눈치를 주거나, 서툴다고 짜증을 내는 직원이나 주변 손님들의 자세가 약자들을 더 움츠리게 만든다.
'기계'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없으니 사람이 '배려'라는 이름으로 채워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저 상품을 주문하거나 구입하려 했을 뿐인데, 여기서 막히면 당사자는 망신을 당하고 상처 입은 마음으로 매장 문을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정에서 우리 딸이 아빠에게 친절하게 안내해준 것과 같은 친절함, 사회 전체로부터 그걸 바라는 건 무리일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문화의 정도가 선진국임을 구별하는 척도 중 하나라면 디지털 약자인 우리 세대에게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빠름'을 지향하는 기계이지만, '배려와 존중'이 담긴 '느림'을 챙길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되지 않을까?
다행히 '느린 키오스크'라는 말이 생겨났고, 디지털 기기 사용에 낯선 노인들을 돕는 문화를 확산시키고자 하는 바람이 여기저기서 불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이 대한민국 서울 중 잘 사는 지역들에서 먼저 출발했다는 것이 내겐 또 다른 생각을 갖게 하지만, 아무튼 반가운 소식이다.
돈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빈부의 차이를 떠나 디지털 약자의 사정을 고려한다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 좋은 모습임이 틀림없다. 지방 소도시에서도, 경제력의 영향력을 고려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느린 키오스크'가 캠페인처럼 번져가기를 바란다.
빠름과 편리가 미덕인 사회 속에서 느림과 불편도 주눅 들지 않고 고개 들 수 있는 세상을 꿈꿔본다. 우리 세대 또한 용기 내어 새롭게 받아들이고, 부지런히 배워, 시대를 놓치지 않는 자세는 기본으로 품고 있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기사 채택 후 개인 블로그에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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