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총 맞은 뒤에도, 얼굴 계속 노출…세기의 사진? 경호의 실패
새파란 하늘, 휘날리는 성조기 아래 총격 직후 자신을 둘러싼 비밀경호국 요원들 사이로 주먹을 번쩍 치켜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모습은 공화당원들에게 '불굴의 상징'이 됐다. 그러나 이 사진은 사실상 경호 실패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미국 매체들의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14일(현지시간)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총격 이후 비밀경호국이 트럼프를 보호하기 위해 제대로 된 절차를 거쳤는지 의문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경호국 요원들이 연단에서 트럼프를 감싸고 안전한 곳으로 ‘엄호 후 대피’를 시켰어야 하는데, 트럼프가 연단을 내려오면서 가슴과 몸을 두 번이나 대중에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폴리티코는 “복수의 총격범이 있었다면, 이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해군 특수부대 네이실 출신으로 보안업체 블랙워터의 창립멤버인 에릭 프린스도 X를 통해 “비밀경호국이 경계의 기본을 못 지켰고, 총격 이후 철수 방법이 서툴러 트럼프가 후속 공격에 노출됐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를 저격한 토마스 매튜 크룩스(20)의 총격 횟수가 많다는 점도 경호 실패를 지적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수사당국은 트럼프를 향해 크룩스가 5번 정도 총격을 가했다고 밝혔고, 미국 현지 매체는 이보다 더 많은 7~8번가량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어느 쪽이든 경호팀의 즉각적인 대응이 있었다고 보기엔 어려운 정황이다.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FBI 요원 케빈 로젝도 언론 브리핑에서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 당시 집회 현장에는 경호국 소속 저격수 2개팀과 경찰 소속 저격수 2개팀 등 총 4개 팀이 배치돼 있었다.
가장 많은 비판을 받는 대목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서는 연단에서 겨우 120m 떨어진 공장 지붕에 있던 저격범 크룩스를 막지 못했다는 점이다. 통상 비밀경호국은 유세 전에 답사팀을 보내 행사 장소를 분석한 뒤 인력배치 등 경호 방식을 결정한다. 저격에 대비해 인근 건물에서 대통령, 대선 후보가 있는 곳까지의 거리도 고려한다.
해당 공장 건물이 행사장 밖에 있었던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외신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군 전문가들은 비밀경호국이 드론을 사용했는지, 만일 사용하지 않았다면 왜 그렇게 결정했는지 의아해한다”라고 미국의 정치전문 매체 RCP는 전했다.
크룩수의 수상쩍은 행동을 경찰에 알렸는데도 제지가 늦었다는 유세 참가자들의 증언도 거듭 나오고 있다. 목격자 벤 메이저 역시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의심스러운 남성을 목격해 경찰에 알렸고, 몇 분 후 총격 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폴리티코는 이와 관련해 “첫 신고 후 경호국 요원들에게 얼마 만에 정보가 전달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경호국과 경찰의 통신사항을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포스트(WP)는 비밀경호국이 아닌 버틀러 지역 경찰이 외곽 경비를 맡았다고 보도했다. 크룩스가 올라가 저격을 시도한 건물도 경찰 관리 구역이었다고 한다. 지역 경찰은 이곳에 수상한 사람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크룩스를 발견했지만, 크룩스가 경찰에 총을 겨누는 바람에 그를 막지 못했다는 보도 역시 나왔다. 제이슨 채피츠 전 하원 감독위원장은 WP에 “비밀경호국이 지역 경찰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며 “그런데 경찰은 (이번 사건과 같은) 임무를 수행할 훈련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만 선거 유세 경호의 성격상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설명 역시 나온다. 비밀경호국의 한 소식통은 RCP에 “(경호는) 대응적(reactive) 성격이 강하다”며 “만약 경호원이 총을 쐈는데, 알고 보니 상대방이 들고 있던 게 (총이 아닌) 망원경이라면 어떻게 할 텐가”라고 반문했다.
선거 일정이라는 변수가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대통령 일정 등에 비해 선거 운동 일정은 유동적이라 비밀경호국이 제대로 경호계획을 검토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다. 은퇴한 비밀경호국 고위 관계자 도널드 미할렉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유세 일정이 있다고 해서) 마을 전체를 폐쇄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미국 정치가 극단화하면서 비밀경호국도 함께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 초기에는 비밀경호국의 한 고위 요원이 트럼프 행정부를 “여성과 소수자에 재앙”(disaster)이라며 “(트럼프를 위해) 총알을 맞기 보단 감옥에 가겠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려 문제가 되기도 했다.
경호 실패 책임론은 진실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트럼프 캠프는 비밀경호국에 경호강화를 요청했지만 경호국이 이를 묵살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경호국은 “유세 일정에 맞춰 보호 자원과 기술, 역량 지원을 추가했다”고 반박하는 중이다. 현지 언론은 결국 경호 실패에 따른 책임이 역대 두 번째 여성 국장인 킴벌리 치틀 비밀경호국 국장에게 번질 것으로 예상했다.
박현준·장윤서 기자 park.hyeon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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