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제대를 해서 좋은 이유가 고작 이거라니요

변영숙 2024. 7. 15.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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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 무사히 마친 조카가 말한 '제대해서 좋은 이유'... 모두에게 소중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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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숙 기자]

1년 6개월 전 겨울 남동생의 아들, 그러니까 조카가 입대를 했다. 나에게는 장조카이자 우리 집 장손이다. 예전에 비해 군 복무 기간이 1년 6개월로 단축되었다고는 하나 당사자나 가족들에게는 끝날 것 같지 않은 긴 시간처럼 느껴졌었다. 조카는 연천에 위치한 '제5사단 신병교육대'에서 교육을 받고 자대 배치를 받았다.

조카는 코로나19가 터진 해에 대학에 입학해 가장 신나야 했을 대학 신입생 시절도 제대로 누려보지 못했다. 이제 겨우 학우도 사귀고 캠퍼스 생활에 재미를 붙여갈 즈음 입대를 하게 된 터라 더 짠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야 할 시기, 코로나라는 감염병과 군 복무라는 의무에 아이의 청춘이 저당잡힌 듯하여 안쓰럽기 그지없었고 어른으로서 미안했다.
 
▲ 신병교육대 입소 장면  입대지원자들이 신병교육대로 입소하고 있다.
ⓒ 변영숙
 
우리 가족은 부대 근처의 국밥집에서 곰탕으로 입대 전 마지막 식사를 했다. 모두 평소와 다름없다는 듯 짐짓 명랑한 척을 해 보지만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신병교육대에 도착하니 한 시간도 더 남았다. 조카의 신병교육대는 연천 제5사단 신병교육대로 '열쇠부대'라는 곳이었다. '열쇠부대'는 연천의 유명한 맛집 'ㅇㅇ국수본점' 옆에 위치해 있었는데, 당시 BTS의 진도 이곳에서 신병교육을 받아 더 화제가 되었던 부대다.

신병교육대 주차장에는 벌써 차량들이 가득했고 운동장에는 입대자와 가족들로 북적였다. 추운 겨울이라 짧게 깎아 하얗게 드러난 아이들의 머리통이 더 시려 보였다. 동반 입대를 하는 듯한 친구로 보이는 아이들은 서로의 머리통을 손으로 가리키며 키득거리기도 했다. 멀찌감치 떨어져 자식들을 지켜보는 부모들의 표정은 근심이 가득한 데 반해 아이들의 표정은 대체로 담담하거나 밝았다.

달라진 입영 풍경 

운동장에는 신발류와 의류들 그리고 소소한 생활용품과 같은 군 보급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입대 후 아이들이 사용하게 될 물건들인데 생각보다 품질이 좋아 보였다. 간혹 '군대 많이 좋아졌네' 하며 너스레를 떠는 부모도 있었다. 부모들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부대에서 나름대로 신경을 쓴 듯한 행사였다. '군대에서도 당신들의 자식들 잘 입히고 신기고 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입영 풍경도 많이 달라진 듯했다. 10여 년 전 언니네 조카 입영식 때와는 또 분위기가 달랐다. 뭐랄까. '시크'해졌다고나 할까. 누구도 눈물을 훔치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는 우리 형부도 눈물을 흘렸는데 말이다.

부대 입소 시간은 오후 2시였다. 1시 40분쯤 되니 서서히 부대 안으로 입장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부대 정문으로 향하는 길목에 '어부바문'이라고 하는 아치형 문이 세워져 있었다. 부모님을 업고 이 문을 통과하라는 뜻으로 '어부바문'이라고 이름 지은 듯했다. 어부바문으로 들어서기 전 마지막으로 가족사진을 찍었다.

'까까머리' 조카는 카메라를 향해 V자를 그리며 환하게 웃었다. 울먹이는 엄마도 토닥토닥해주고는 뚜벅뚜벅 어부바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서운한 마음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의젓하게 부대를 향해 들어가는 조카가 얼마나 듬직하던지.
 
▲ 신병교육대 입소 장면 입대지원자들이 신병교육대로 입소하고 있다.
ⓒ 변영숙
 
어부바문을 통과한 아이들과 가족들은 서로 마주 보고 섰다. 군 관계자가 부모가 알아야 할 공지사항을 안내했다. '하루가 지나면 전화 통화를 할 수 있으며, 이후부터는 부대 공중전화를 통해 전화를 할 수 있다. 며칠 후면 아이들의 옷이 배달될 것이다' 등등등. 공지가 끝나자 아이들은 구령에 맞춰 군대식 경례를 하고 줄 맞춰 부대로 걸어 들어갔다. 그렇게 입영식이 끝났다. 어부바 문을 통과하고 10분 정도 걸렸을까.

그날 조카를 군대에 보내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던가. 소중한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것 같았고 어린 조카만 혼자 덜렁 허허벌판에 두고 온 것 같아서 저녁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아 혼자 훌쩍거렸다. 오히려 부모인 남동생이 나를 위로해 주었을 정도였다.

"누나, ㅇㅇ이 애 아니고 다 큰 남자 어른이야. 잘 할 거야."

동생 말대로였다. 조카는 한 달간의 신병 교육을 무사히 마치고 2월 25일 첫 외출을 나왔다. 걱정과 달리 조카는 소년의 티를 벗어내고 건장하고 의젓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힘들지 않아?" 하고 물으면 "괜찮아요"라며 가족들을 안심시켰다.

휴가를 나올 때마다 조카는 성숙해져 있었다. 부대 내에서 시간 나면 공부도 한다며 제대 후 계획을 얘기해 주기도 했다. 다만 관심사병을 관리하는 보직이다 보니 가끔 기분이 다운되기도 한다는 것이 조카의 유일한 애로사항이었다.

소박한 일상을 돌려줄 의무

정확하게 1년 6개월 후 조카는 애초의 걱정과 달리 군 복무를 아주 잘 완수하고 동생말대로 '다 큰 남자 어른'이 되어 돌아왔다.

"고모, 저 오늘 제대했어요."

조카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잘했다. 정말!!!"

요즘 채상병 특검 등 군 이슈가 핫하다 보니 조카의 전역은 말할 수 없이 기뻤다. 나는 뻔한 질문을 하고 말았다.

"제대해서 좋지?"
"그럼요. 너무 좋죠."
"뭐가 제일 좋아?"
"좋은 게 많죠. 바지 주머니에 손도 넣을 수 있고, 늦잠도 잘 수 있고, 친구들도 만날 수 있고, 영화도 볼 수 있고, 여행도 할 수 있고…."

세상에, 제대를 해서 좋은 이유가 고작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을 수 있어서라니. 조카의 대답은 군 생활이 무척이나 엄격했으며 통제된 생활이었는지에 대한 방증임에 다름 아님을 안다. 또 그가 원하는 것도 소박한 일상이라는 것도.

대부분의 병사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누군가의 귀한 자식들의 시간과 희생의 대가로 누리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일상. 우리 모두는 그들과 그들의 부모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를 비롯한 야6당과 시민사회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열린 채상병 특검법 거부권 규탄 범국민대회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남소연
최근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어린 병사들의 사망 소식에 마음이 먹먹하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꿈꾸던 젊은이들이 왜 그렇게 허망하게 목숨을 잃어야 하는 것인지, 왜 그 죽음에 아무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지. 죽음을 막지 못했다면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이라도 제대로 밝혀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누군가의 잘못이 있다면 마땅히 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우리 사회가 젊은이들에게 진 빚을 갚는 길이 아닐까. 정확히 1년 6개월 후 그들에게 소중한 일상을 되돌려주는 것이 우리 사회의 의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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