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서 "증오 언행 자제" 자성 나오지만...NYT "더 분열시킬 사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겨냥한 피격 사건을 계기로 미 정치권에선 '증오·분열의 정치'를 중단해야 한다는 자성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유력 대선 후보이자 전직 대통령을 노린 초유의 암살 시도엔 미 대선을 앞두고 양극화된 혐오 정치가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 진영의 일부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이번 사건을 둘러싼 의심과 비난, 음모론이 확산하는 등 분열상도 여전하다. 1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등은 "미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이전 암살 시도들과 달리, 트럼프 전 대통령을 향한 피격은 미국 사회를 더욱 분열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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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트럼프 양측 일제히 "통합"
이날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일제히 '통합'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연설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통화한 사실을 공개하며 "통합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같은 날 소셜미디어에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단결하고 미국인으로서의 진정한 기개를 보여주는 게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부인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도 성명을 통해 "좌파와 우파, 빨간색(공화당)과 파란색(민주당)을 넘어 하나가 되자"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피격 사건 후 멜라니아 여사와 통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 내부에서도 이런 목소리가 나왔다. 피격 사건 첫날 이번 암살 시도의 원인을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에서 찾던 공화당 내 분위기도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공화당의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이날 NBC방송에서 "우리는 극단의 언행을 줄여야 한다"며 "양당 지도자들 모두 나라를 진전시키기 위해 대립 자제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마이클 와틀리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의장도 폭스뉴스에 "모든 미국인이 지금은 분열을 중단하고 현재 정국에서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 돌아보기를 바란다"고 했다. 낸시 메이스 하원의원도 정치전문매체 더힐에 "누구도 정치적 신념 때문에 총에 맞아선 안 된다"며 "극단의 언사에 신물이 난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크리스 쿤스 상원의원은 NBC방송에서 "우리는 정치적 어조를 낮춰야 한다"며 "동료들에게 오늘만큼은 전화를 끄고, 소셜미디어도 멀리하라고 주문했다"고 전했다. 존 페터먼 상원의원은 "우리는 이번 대선과 관련된 열기를 가라앉혀야 한다"고 촉구했고, 조슈아 셔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는 "정치 지도자들이 증오의 언사를 자중해야 한다"고 했다.
레이건 피격은 사회 통합..."트럼프 피격은 분열 악화"
바이든과 트럼프 양 캠프도 피격 사건 이후 상대방에 대한 공격을 자제하는 분위기라고 전해졌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트럼프 캠프 측의 한 인사는 피격 사건 첫날 올린 민주당 비판 온라인 게시물을 삭제했다. 트럼프 캠프 내엔 "총격 사건에 대해 언급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지기도 했다.
CNN에 따르면 바이든 캠프는 역풍을 우려해 트럼프 전 대통령을 향한 인신공격보다 정책 차별화에 초점을 맞춘 선거 전략으로의 조정을 논의하고 있다. 또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광고나 메시지를 내지 말라는 '함구령'을 내렸다.
현지 언론은 그간 전·현직 대통령을 겨냥한 총격 사건은 미국 사회를 통합하는 계기가 됐다고 짚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1981년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공화당 소속)이 정신질환을 앓던 존 힝클리 주니어가 쏜 총탄을 맞고 중상을 입었을 때가 꼽힌다. 당시 민주당 하원의장이었던 토마스 P. 오닐 주니어는 눈물을 글썽이며 병실을 찾아 레이건 대통령의 두 손을 잡고 무릎을 꿇은 뒤 그를 위해 기도했다. AP통신은 "레이건 대통령 피격 사건은 미국인들의 마음을 자극하고 유대감을 형성하게 했다"고 평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이전 암살 시도들은 미국을 하나로 모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암살 시도는 미국을 더 갈라놓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도 "(트럼프 피격 사건 이후) 양진영은 정치적 폭력을 비판하면서도, 정치적 전쟁은 중단하지 않고 있다"며 "이번 사건은 과열된 미 정치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서로를 향한 분노·의심·비난·음모론을 낳으며 가뜩이나 양극화된 사회의 분열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좌파 진영에선 이번 사건을 "트럼프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하고, 반대로 우파 진영에선 "이번 사건의 배후에 바이든 대통령이 있다"고 주장하며 음모론을 퍼뜨리고 있다고 BBC 등은 지적했다. 트럼프를 추종하는 극우 음모론 집단 '큐어넌(QAnon)'에 빗대 좌파 음모론 세력인 '블루어넌(BlueAnon)'이란 용어까지 등장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런 상황에 대해 "이전까지 대통령이나 대선 후보에 대한 암살 시도가 이렇게 분열을 급격히 악화시킨 적은 없었다"고 평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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