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위대의 원활한 한반도 진출 위한 수단?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 레이와 6년판 일본 방위백서 |
ⓒ 일본 방위성 |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은 한국인들의 경계심 때문에 용이하지 않다. 그렇다고 일본이 포기하리라고 볼 수는 없다. 향후 일본이 어떤 방식으로 이를 추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지난 12일 일본 내각에서 채택된 <레이와 6년판 방위백서>다.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가능케 하는 법적 수단 하나를 여기서 접할 수 있다.
2024년판인 이번 방위백서는 "국제사회는 전후(戰後) 최대의 시련의 때를 맞이하여", "우리나라를 둘러싼 안전보장 환경도 전후 가장 엄중하고 복잡하게 되었습니다"라는 기하라 미노루 일본 방위대신의 발간사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번 백서에도 독도에 관한 공격적 문구가 담겨 있다. 제1장 '우리나라를 둘러싼 안전보장환경'은 북한·러시아·중국의 위협을 거론하는 대목에서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인 북방영토나 다케시마의 영토 문제가 여전히 미해결인 채로 존재한다"고 기술한다. 독도 영유권에 관한 한, 일본이 한국과 북·중·러를 구분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레이와 6년판 방위백서>의 한 페이지. |
ⓒ 일본 방위성 |
그런 내용들에 더해, 백서 곳곳에서 눈길을 끄는 것이 '원활화'라는 단어다. 자위대 병력 및 물자의 신속 이동과 관련해 이 단어가 사용된다. 일례로, PDF 기준으로 38쪽에서는 자위대가 공항과 항만을 원활히 이용해야 할 필요성이, 265쪽에서는 자위대가 규슈섬과 타이완섬 사이의 시설들을 원활히 이용할 필요성이 언급된다.
백서는 이런 원활화가 일본 영토 안에서뿐 아니라 바깥에서도 구현돼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제시한 것이 외국과의 원활화 협정이다. 백서는 364쪽에서 이 협정의 개념을 풀이한다.
"한쪽 나라의 부대가 다른 쪽 나라를 방문해 협력 활동을 할 때의 수속이나 이 부대의 지위 등을 정함으로써 공동 훈련이나 재해 구조 등 양국 부대 간의 협력 활동의 실시를 원활히 하는 것."
방위백서는 이런 협정이 동맹국뿐 아니라 동지국과의 관계에서도 요구된다고 말한다. 전통적인 동맹 개념으로 포괄하기 힘든, 최근 자국이 표방하는 가치외교에 부합하는 동지국들과도 이 협정을 맺어야 한다고 말한다. 364쪽에 나오는 문장이다.
"동지국 등과의 연대 강화를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관점에서 원활화협정(RAA), 상품·서비스 상호제공협정(ACSA), 방위장비품·기술이전협정 등의 제도적 틀의 정비를 한층 더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일본과 목적을 함께하는지의 관점"
2023년 1월 7일 자 <요미우리신문> '히로시마 서미트에 한국 대통령 초대 검토'는 작년 5월로 예정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한국과 인도·호주도 초청할 것을 검토하는 일본 정부의 분위기를 전하면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의 실현을 위해 G7과 가치관을 공유하는 동지국과의 결속을 내세운다"라고 보도했다. 동지국과의 결속 강화를 위해 한국 등을 정상회의에 초대하자는 내각의 의중을 전하는 보도였다.
작년 6월 6일 기자회견 때 하야시 요시마사 당시 외무대신은 "어떤 나라가 동지국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각각의 외교적 과제와 관련하여 일본과 목적을 함께하는지 하는 관점에서 개별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답변했다.
이렇듯 동지국은 동맹국에 비해 유동적인 개념이기는 하지만, 한국을 '파트너'나 '중요한 이웃나라'로 평가하는 지금 상황에서 기시다 내각이 윤석열 정부를 동지국 개념에서 빼기는 곤란하다. 이는 향후 일본이 한국과의 관계에서 원활화 협정 체결을 검토하게 될 가능성을 생각하게 만든다.
일본은 호주와 원활화 협정을 체결한 상태에서 2022년 5월 6일 런던에서 이에 관한 성과를 거뒀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보리스 존슨 당시 영국 총리와 함께 공군 전투기 분열식에 참석하고 후쿠시마산 음식을 같이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국방 및 무역 협력을 논의하고 원활화 협정 체결에 합의했다.
뒤이어 작년 8월에는 호주와 체결해 둔 협정이 발효됐다. 금년 5월 1일에는 프랑스와 협정 체결에 관해 협의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요미우리신문>에서 나왔다. 이번 방위백서에는 "2024년 4월 현재 오스트레일리아·영국과의 사이에서 체결돼 있다"고 알려준다.
백서의 이 문구가 확정된 이후인 지난 8일에는 필리핀과의 협정이 체결됐다. 이에 대한 반발로 중국은 다음날 센카쿠열도에서 해상 무력시위를 벌였다. 원활화협정이 단순히 자위대의 이동 편의뿐 아니라 일본군의 영향력 강화도 지향한다는 점이 중국의 격한 반응에서 나타난다.
원활화 협정을 주목해야 할 이유
이렇게 일본은 동맹국·동지국과의 관계에서 원활화 협정을 차근차근 진행해 나가고 있다. 아직은 초기이지만 협정 체결국 숫자가 좀 더 불어나면, 한국과의 체결 문제 역시 테이블 위에 오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일본과 이 협정을 체결한 국가들이 많아지면, 윤 정권이 이에 관한 외교적 압력을 피하기가 어렵게 된다.
호주나 영국과 맺는 것과 달리, 한국과 맺는 원활화 협정은 자위대의 한국 진출을 용이하게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 땅에서 국제대전이 발발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러일전쟁 발발 직후인 1904년 2월 23일 체결된 한일의정서 제4조도 일종의 원활화 협정이었다.
의정서 제4조는 "대한제국 정부는 대일본제국 정부의 행동이 용이하도록 십분 편의를 공여할 것"이라고 규정했다. 일본이 한반도에서 원활히 활동할 수 있도록 대한제국의 협력을 요구한 것이다. 그런 뒤 다음 항에서, "대일본제국정부는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군사적으로 필요한 지점을 수시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런 규정이 작동하는 속에서 일본은 한반도 근해 등지에서 러시아와 전쟁을 벌여나갔다. 일본은 이 전쟁에서 승리한 뒤인 이듬해 11월 을사늑약을 강요했다. 한일 원활화 협정과 그 위험성이 결코 낯선 게 아님을 보여주는 역사적 선례다.
원활화 협정은 한국의 군사주권을 침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국을 또다시 열강의 전쟁터로 전락시킬 수도 있다. 지금 일본이 동맹국과 동지국들을 상대로 추진하는 원활화 협정이 자위대의 한국 진출과 윤석열 정권의 대일 관계에 어떤 파장을 미치게 될지 주목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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