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평 원룸에 사는 사람들, 내 마음에 쏙 들어왔습니다
유튜브의 시대이다. 광대한 대양과도 같은 유튜브의 세계에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콘텐츠의 섬들이 떠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저마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유튜브 콘텐츠를 찾아 주유한다. 이제는 초등학생의 장래 희망이 유튜버인 시대, 뒤늦게 그 유튜브의 세상에 맛들인 기자가 매우 사적인 유튜브 콘텐츠 탐험기를 적어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이정희 기자]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저녁, 자연스레 손이 리모컨으로 간다. 한때는 애청하는 드라마를 '닥본사(닥치고 본방 사수)'하는 게 유행이었지만 이제는 방영하는 시간도 제각각, 그걸 기억하고 챙겨 볼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척 보면 알겠'는 드라마가 많으니 호흡이 끊어진다. 미드, 영드, 유럽드, 중드까지 섭렵해 보기도 하지만 점점 긴 호흡이 버겁다.
그리고 고백하건대 TV 뉴스를 끊은 지는 오래되었다. 세상사의 동정으로 내 마음까지 다칠 일인가 싶었다. 핸드폰 속 뉴스 피드, 하다못해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까지 뉴스 속보가 시시때대로 뜨는 세상, 정자세로 뉴스를 시청하는 수고를 내게서 덜어주기로 했다.
▲ 유튜브를 시청하는 사람. |
ⓒ pexels |
그래서 리모컨이 향한 게 유튜브다.
그 중에서도 요즘 즐겨보는 콘텐츠에 <자취남>이 있다. <자취남>은 유튜버 정성권씨가 진행하는 1인 콘텐츠로 75만 명 정도의 구독자가 있다. 프로그램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말 그대로 '자취'를 하는 이들을 찾아가 그들의 자취 생활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되돌아보면 어릴 적부터 집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어릴 때 우리 집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집을 소개하는 책이 있었다. 당시 유행하던 이층 양옥집 사진이 게재되어 있고, 그와 함께 집 단면도, 구성도 같은 것들이 각종 정보와 함께 나와 있었다. 백과사전만큼 두꺼운 책이었는데, 나는 그 책이 좋았다. 가끔은 그 책의 단면도로 소꿉놀이같은 것도 했었다. 돌아보면 꽤나 '이상한' 아이였다.
잡지를 보더라도 패션보다는 남의 집 구경이 재밌었고, 때로는 도서관에서 건축 관련 에세이를 빌려다 보기도 했다. 땅콩 집도 열풍이 불기 전에 책으로 알았고, 정치인 김진애(전 국회의원)씨를 알게 된 것도 '건축가' 김진애가 쓴 책을 읽으면서이다.
왜 <자취남>이냐고?
그랬기에 자연스레 남의 집 구경하는 유튜브 콘텐츠를 찾아보게 됐다. 당연히 EBS <건축 탐구-집>은 애청 프로그램이 되었고, <소비요정의 도시 탐구> 등등의 유튜브 콘텐츠를 섭렵했다.
유튜브의 특징이 내가 특정한 콘텐츠를 보게 되면 귀신같이 그와 비슷한 콘텐츠를 '맞춤'으로 찾아 올려준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것이 <자취남>이다.
그런데 대부분 유튜브에 등장하는 남의 집은 '아름답고 멋진 집'인 경우가 많다. 풍광이 좋은 곳에 유려하게 잘 지은 집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그게 여운으로 남지는 않았다.
▲ 유튜브 <자취남> 관련 이미지. |
ⓒ 유튜브 |
오랫동안 남의 집 구경을 다녀 본 정성권씨가 호기롭게 집세를 맞추는 게 이 콘텐츠의 통과 의례다. 대부분의 대한민국 갑남을녀들이 살아가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어느덧 전체 가구의 34.5%가 '1인 가구'가 된 상황(출처: 통계청, 2022년 기준)에서 이제 자취는 더는 특별한 사람들의 삶이 아닌, 보편적 삶의 형태가 됐다. 유튜브 <자취남> 속 등장인물들은 그런 시대 보편의 삶을 전한다.
'자취'라는 말에서도 느껴지듯이 대부분 홀로 생활하게 된 젊은 MZ 세대가 많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것이 40·50·60대가 되어서도 홀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집을 통해 소개된다. 어렵사리 구한 7-8평의 공간을 온전히 나만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쪼개고 나누어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고시원 등을 전전하다 방이 세 개인 공간을 '차지'한 젊은 남성은 방 하나를 온전히 자신이 만든 가구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운다.
8천만 원의 예술인 대출로 마련한 1억의 전세 빌라는 한 배우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으로 거듭났다. 60대의 한 여성은 나이가 무색하게 여전히 자신만의 취향과 에너지로 가득한 공간을 선보기도 한다. 특별할 것없는 오피스텔과 빌라들이 '개인'들의 손때를 타며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공간으로 재탄생되는 것이다.
코로나 펜데믹은 내가 머무는 공간을 새롭게 인식하는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애써 벌어도 집 한 칸 마련하기 힘든 시절은 역설적으로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지금 여기서 내가 누리는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바로 그런 시대에 새롭게 깨달은 '현존의 삶과 의미'를 <자취남> 속 등장인물이 알려주는 것이다. 젊건, 나이들 건 홀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공간'은 곧 나이다.
그냥 집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허용된 시간과 공간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이 시대의 '시그니처'다. 그저 20~30분의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의 집을 소개받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보고 나면 자신의 두 발로 땅을 딛고 우뚝 서있는 한 사람의 인생을 마주한 듯한 여운이 전해진다. 그 어떤 일일 드라마도 전하기 힘든 진솔한 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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