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청 공무원측 최후변론 "이태원 참사, 국정 최고 권력자 사과 필요"
[김성욱 기자]
▲ 이태원 참사 부실대응 혐의로 기소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결심공판에 출석한 뒤 이태원참사 유가족의 항의를 뒤로한 채 급히 법원을 나서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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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부실대응 혐의로 기소된 박희영 용산구청장에게 검찰이 15일 징역 7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날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배성중 부장판사·김병일·백송이) 심리로 열린 용산구청 공무원 4명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 사건 결심 공판에서 박 구청장에게는 징역 7년, 유승재 전 부구청장·문인환 전 안전건설교통국장에게는 금고 2년, 최원준 전 안전재난과장에게는 징역 3년을 각각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1년 6개월간 이어진 1심 재판 변론이 모두 마무리되는 날이었지만, 이날 법정에서는 이태원 참사 수사가 애초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등 윗선에 대해선 이뤄지지 않은 채 말단 공무원에게만 책임을 전가한 '꼬리 자르기'였다는 문제제기가 피고인 측으로부터 처음 나오기도 했다.
최원준 전 과장을 대리한 서재민 법무법인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변호사는 재판 말미 마지막 변론에서 "불편한 얘기를 하고자 한다"라며 2022년 5월 용산 대통령실 이전을 언급했다. 그는 "수년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내용의 행사가 있었지만 유독 2022년 5월에 기존과 달리 변화가 있었다"라며 "용산 대통령실이 이전됐다"고 했다. 그는 "(이태원 참사 원인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공소사실에 드러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참사 직후 일선 경찰들과 지자체 공무원들 사이에는 대통령실 이전 후 업무량이 크게 늘어 너무 힘들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윤 경찰청장은 '대통령실 이전이 이태원 참사의 직접적 이유가 되는 것처럼 말하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얘기했다"라며 "이후 대통령 경호실은 국정조사에 포함되지 않았고, 하위직 공무원들에 대한 수사와 재판만 진행됐다"고 했다. 참사 책임자로 지목된 용산구 공무원 측이 직접 이태원 참사 배경에 갑작스런 용산 대통령실 이전에 따른 관리 공백이 있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최 전 과장 측 변호인은 최근 김진표 전 국회의장의 회고록과 박홍근 전 원내대표의 증언으로 논란이 된 윤석열 대통령의 '이태원 참사 조작설'을 거론하며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를 이행해야 할 권력의 수장이 이렇게 사고를 하고 계시는데 어떻게 국가의,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의 재난 및 안전관리 체계가 제대로 발동할 수 있었겠나"고도 발언했다.
그는 "(윤 대통령은) '좌파 언론이 사람들을 모이게 해서 일부러 사고를 발생하게 했다'고 말씀하시고, 총책임자인 행안부 장관을 사임시키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뒤에 불순한 세력이 있다'며 매도하고 계신다"라며 "말단 공무원에게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를 전가하지 말고, 국정의 최고 권력자가 사고의 전환으로 국가와 지자체의 재난 및 안전관리 체계를 확립하고 피해자들에게 명복을 빌고 사과하는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런 식의 수사와 기소는 세월호 사태, 이태원 사태를 똑같이 발생시킬 수밖에 없다"고 했다.
▲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등 결심공판 시작에 앞서 박 구청장의 사퇴와 엄정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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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 ‘이태원 참사’ 박희영 7년 구형… 분노한 유가족 “아이 1명당 1년씩 159년 형벌 내려야” ⓒ 유성호 |
"컨트롤 타워였다"... 검찰, 박희영에 징역 7년 구형
검찰이 박희영 구청장에게 징역 7년을 구형한 이유는 그를 "용산구의 재난관리를 총괄 책임지는 장"으로 봤기 때문이다.
검찰은 "박 구청장은 각종 법령과 매뉴얼에 재난에 대한 컨트롤타워로서 인파 집중에 따른 사고를 예측하고 예방할 책임이 있었다"라며 "그러나 코로나19 위험 상황이 마무리되고 처음 맞는 핼러윈데이 행사로 이태원 일대에 인파가 집중될 것이 예상됐음에도 어떠한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다"고 했다.
검찰에 따르면, 박 구청장은 참사 당일인 2022년 10월 29일 고향인 경남 의령을 방문했다가 오후 8시 22분경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으로 귀가했다. 박 구청장의 집은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불과 3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으로, 도보로 5분 거리다.
귀가 후에도 박 구청장은 핼러윈 인파 상황보다는 용산 대통령실 앞 집회에 더 관심을 보였다는 게 검찰 측 주장이다. 그날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1400미터 떨어진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는 윤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는데, 오후 8시 33분께 종료됐다. 시위가 끝나자 박 구청장은 용산구청 공무원들에게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 흩뿌려진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피켓들을 수거하도록 지시했다.
박 구청장은 오후 8시 59분 부하 직원들과의 카카오톡에서 "김진호 용산경찰서 외사과장(에게) 빨리 전화하세요", 오후 9시 4분 "강태웅(당시 더불어민주당 용산 지역위원장) 현수막 철거도 부탁해요"라고 말했다. 여기에 용산구청 직원은 곧바로 "민주당 현수막은 전부 새벽에 제거 예정입니다! 시위피켓은 당직실 통해서 바로 제거토록 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참사가 일어나기 한 시간쯤 전에도 박 구청장이 대통령실 앞에 있던 반정부 전단지나 현수막을 걱정하느라 안전관리에 소홀했다는 것이다.
이후 박 구청장이 실제 이태원 참사 현장에 도착한 것은 오후 10시 59분경이었다. 참사가 발생(오후 10시 16분)한 뒤 이미 40여분을 넘긴 때였다. 박 구청장은 오후 10시 51분에야 정식 보고가 아닌 이태원 상인회 관계자를 통해 사고 관련 소식을 처음 접했다고 한다. 검찰은 "구청의 상황보고 체계는 작동하지 않았다"고 했다.
'경찰'에 책임 돌린 박희영 측 "적극행정 안 했다고 '위법' 아냐"
박 구청장 측 변호인은 1시간 10분 넘게 PPT를 띄워놓고 최후변론을 하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박 구청장 측은 "(경찰은)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라 인파를 통제하거나 유입을 차단하고 밀집된 인파를 해산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이 있지만, 지자체에는 이런 권한이 없다"면서 참사의 책임을 경찰에 돌렸다.
박 구청장 측은 또 "재난안전법에서도 (핼러윈데이 같이) 주최자가 없는 다중 운집으로 인한 인파 사고에 대해서는 재난의 위험으로 예정하지 않고 있었다"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산구가 인파 통제에 나섰다면 그건 개념상 이른바 '적극 행정'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적극 행정'을 하지 않았을 뿐 '위법'은 없었다는 논리다. 박 구청장 측은 "적극 행정을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오면 그만큼 좋은 게 어디 있겠으나, 그걸 하지 않았다고 해서 위법한 행위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 이태원 참사 고 이지한씨의 어머니 조은미씨가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등 결심공판에서 박 구청장이 사과 없이 급히 법원을 빠져나가자, 울분을 토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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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뒤편 방청석에 착석한 10여명의 유가족들은 가슴을 치고 울었다. 박 구청장에게 죄가 없다는 변론이 나올 때마다 "거짓말하지 마라", "부끄럽지 않나", "살인마", "구청장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소리치며 항의했다.
재판이 끝난 뒤 유가족들은 박 구청장 측의 한 변호사를 지목하며 "왜 재판 내내 우릴 보고 히죽히죽 웃었나", "왜 계속 비웃나", "당신이 죽었어도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나"라고 반발하기도 했다. 경호와 직원들에 둘러싸여 퇴청하는 박 구청장을 향해 유가족들은 "살릴 수 있었지 않나", "왜 아직도 안 물러나나", "양심이 없나, 이제 그만 사퇴하라"며 오열하고 땅을 쳤다.
이날 검찰의 구형은 지난해 1월 20일 박 구청장이 구속 기소된 지 542일 만에 나왔다. 지난해 6월 7일 보석으로 풀려난 박 구청장은 현재까지 구청장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상태다.
▲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등 결심공판 시작에 앞서 박 구청장의 사퇴와 엄정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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