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으면 쉰 살... 그가 피운 불길이 내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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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기자]
따박따박 월급 나오던 직장을 그만두고 여러 일들을 했다. 글쓰기 과외는 돈은 되지만 마음이 상할 때가 많았다. 마음이 상한다기보단 짜증이 날 때가 많았달까. 마땅히 제가 써야할 자기소개서며 과제물, 공모전에 출품할 글 따위를 당당히 청탁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너무나도 많았다. 이 땅에 반칙이 얼마나 흔하고, 그 반칙을 저지르는 이들이 겉보기엔 얼마나 세련되고 우아한지를 마주하는 건 내게 참기 어려운 일이었다.
또 본업이 소설이며 영화평과 서평, 기사 따위를 쓰는 일이다보니 글로 스스로를 소진하는 게 마땅치 않기도 했다. 못난 글들을 바로잡아 나아지게 하는 건 의미 있는 일이지만, 다른 누구의 어리석음 안에서 헤엄치는 고단함을 피할 수가 없었다.
▲ 꽃다발 처치곤란, 그러나 귀한 꽃다발. |
ⓒ 김성호 |
상만 받고 가기엔 아쉬운 걸음이다. 항해사 자격을 얻기 위해 교육받던 시절 추억이나 살려볼까, 이틀의 말미를 냈다. 가고팠던 음식점은 망해 없어지거나 휴일이거나, 그래도 그대로 나쁘지는 않았다.
'김성호의 바로여기'에서 언제가 소개할 기회가 있을 '송상현 광장'에도 들러보고, 부산에 사는 지인들과 만나 책과 글을 두고 대화를 나눈다. 여행지에선 많이 걷는 편인데 영 거추장스러운 건 한 팔에 들린 꽃다발이다. 단상에 올라 상장, 상금과 함께 꽃다발을 받았던 것이다. 부산은 큰 도시지만 꽃다발 안길 처자 하나를 만나지 못하고 온통 친구들과만 진탕 마시다가 비틀대며 자갈치 시장 앞 여관까지 꽃다발을 들고 들어갔다.
세상에 글이 귀한 만큼, 글로 얻은 것 또한 귀하다. 쓰잘데기 없는 꽃다발이라도 글로 얻은 것이니 귀히 써야 한다. 여관방 쓰레기통을 잠시 보다가는 꽃다발을 다시 챙겨 자갈치 시장 앞 생선구이 집에 자리를 잡는다. 웬놈이 양복에 꽃다발을 든 채 혼자서 생선구이를 먹는가. 옆 가게 아지매들까지 때 아닌 관심이다. 시장 아지매들에게 부산 사는 애인을 만나러 멀리서 온 총각 행세를 하다가, 팔팔년에도 안 통할 연애비법을 한참이나 전수받고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목적지는 부산어린이대공원이다. 이곳 너른 터에 부산학생교육문화회관이 있다. 그 앞 광장에는 사위를 둘러 동상이며 조형물이 늘어섰는데, 부산항일학생의거 기념탑과 위안부소녀상 같은 것들이다. 기념탑과 소녀상 사이, 그러니까 회관을 정면으로 마주보는 곳에 선 두 개의 석상이 내가 이곳을 찾은 이유다. 의사자 이수현 추모비다.
2000년이었다. 세상이 끝날 것처럼 떠들썩했지만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었던 2000년이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온통 괴로운 일로 가득하였다. 어느 교사에게 매일 같이 따귀를 맞았고, 종일 수업 대신 책만 읽었다. 별 볼 일 없는 학교야 콱 때려치면 좋았겠으나 멀리 미국까지 가서 제 일을 하고 있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교과서엔 온통 멍청한 이야기들 뿐이고, 즐거운 일은 죄다 돈이 드는 탓에 할 수 있는 건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일 뿐이었다. 그 시절 많은 양서와 만났으나 그중 가장 꽂혀 있던 것은 바로 <맹자>였다.
의로움에 대해 배웠다... 그를 보았다
<맹자>엔 많은 가르침이 있지만, 그중 두드러지는 것이 의로움에 대한 것이다. 사생취의(捨生取義), 네 글자로 대표되는 의로움이 곧 맹자 사상의 정수라고 나는 믿었다. 인간이 가진 귀한 것은 고작해야 목숨뿐인데, 세상 어느 의로움은 그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룰만한 것이다. 세상에 난 사내라면 그 의로움을 찾는데 삶을 바치는 것, 책이 어찌나 격렬하던지 나는 거의 부들부들 거리며 책장을 넘기고 다음날 다시 또 넘기고는 하였다.
그로부터 많은 책을 읽었으나 유가의 가르침은 대체로 나와는 맞아 떨어지지가 않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나를 옭아매는 의무들만 얹어지는 것이, 알면 알수록 불편한 세상이 꼭 이런 것인가 싶었다. 유가의 가르침은 대체로는 선한 이들에게 어우러지는 것인데, 선이란 나를 넘어 남에게 닿는 것으로써 별 볼일 없는 자식일랑 돌멩이 보듯 대하던 중학교 시절의 나와는 영 맞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2000년 1월 26일 저녁이었다. 일본 도쿄 신오쿠보 전철역에서 20대 청년 이수현이 죽었다. 뉴스는 그가 전철역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려다 기차에 치여 숨진 정황을 알렸다. 나와는 띠동갑으로, 고작 스물다섯의 어린 나이였다. 고려대 4학년을 휴학하고 일본에 어학연수차 떠난 지 반년만이라 했다.
▲ 의사자 이수현 추모비 부산어린이대공원에 있는 의사자 이수현 추모비. |
ⓒ 김성호 |
그 죽음이 내게는 어찌나 충격적이었는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인간이 다른 누구를 구하겠다고 열차 선로에 뛰어들 수 있는 존재라는 것, 심지어는 일면식도 없는 외국인을 살리겠다고 말이다. 그가 저의 안위보다 다른 무엇을 우선하여 생각할 수 있다면, 같은 인간인 나 또한 못하리란 법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인간이 평생을 다하여도 이를 수 없는 것을 죽은 이는 제 선택으로 증명해보이지 않았는가. 더 오래 살지 못함이, 그가 해낼 수 있었던 다른 가능성들이 안타까울 뿐, 대다수 인간이 마주하는 비루한 삶보다야 못할 건 없는 것이라고 나는 일기에 적었다.
▲ 의사자 이수현 추모비 의사자 이수현 추모비 앞에 꽃을 두었다. 쓸쓸함이 덜해지고 주변을 거니는 사람들도 돌아보며 의미를 살피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
ⓒ 김성호 |
이수현을 추모하는 비석은 이곳 외에도 그의 모교인 낙민초등학교, 동래중학교, 내성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에 있다고 했다. 나는 그중 부산어린이대공원을 종종 찾아 시간을 보내곤 한다. 비석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들어 있다.
'이기심이 만연해가는 이 세상에서 이타심의 본보기가 된 이수현님의 이같은 의로운 행동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인류애의 실천이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참다운 시민정신을 일깨워준 고귀한 희생이었다. 순간을 던져 영원을 얻은 그의 숭고한 정신은 우리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살아남아 의로운 삶의 등불로 타오르게 될 것이다.'
나는 비석 앞에서 이수현을 생각한다. 의로움을 생각한다. 의로움과 그를 이루는 선을 품은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생각한다. 악과 슬픔이 짙게 깔린 세상 가운데 내게도 의와 선을 이룰 기회가 있으리라고, 틀림없이 그러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결심하는 것이다.
이수현이 세상에 난 날이 7월 13일이라고 했다. 살았다면 이제 쉰, 반백이 되었을 테다. 그라면 틀림없이 좋은 어른이 되었을 테다.
꽃이란 빨리 시들어서 귀한 감상을 일으킨다. 어디 꽃뿐이랴.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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