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금메달 목표로… 선수들 연습량 늘리고 체력 키워야”
파리올림픽 앞두고 조언
88 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탁구 여제’ 현정화(55) 한국마사회 탁구단 감독은 아직도 열정이 넘친다. 매일 인천 청라에 있는 구단 연습장에 운동복 차림으로 출근해 선수들과 구슬땀을 흘린다. 아홉 살 때 처음 탁구채를 잡은 뒤 열정이 꺾인 적이 없다. 만 19세에 올림픽 정상에 오르고 세계대회를 제패한 그에겐 열정과 승부욕이 지금까지 탁구와 함께 살아가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었다. 현 감독을 2024 파리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지난 9일 만났다.
올림픽 나서는 선수들에 대한 응원의 말을 기대했으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현 감독은 선수들에게 ‘덕담’ 대신 진심 어린 조언을 쏟아냈다. 연습량을 늘리고 체력을 키워야 메달권에 근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훈련해야 메달을 딸 수 있다고 했다. 한국 탁구는 지난 12년 동안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다. 현 감독의 말이 비단 탁구에만 해당하는 건 아닐 터이다. 1시간 넘는 대화 동안 선수들에게 본보기가 될 만한 얘기가 많았다.
현 감독은 “대표팀이든 실업팀이든 시간이 지날수록 연습량이 줄고 있다. 저는 죽어라 연습해서 결과를 냈으니까 할 수 있는 말 아니냐”며 “연습량을 늘리고 체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 감독은 “선수 시절 새벽부터 야간 운동까지 훈련에 매진했고, 뜀박질 수준으로 러닝 하면서 체력을 길렀다. 지금은 정규 훈련 시간 외에 추가로 하는 훈련들이 거의 없어졌다”며 “내가 지금 선수여도 자율로 하라고 하면 안 할 것 같다. 너무 힘이 드니까”라고 말했다. 이런 말하면 ‘꼰대로 본다’고 하니 “시대가 변했고 세대가 달라졌지만 중국을 꺾으려면 죽을 힘을 다해 훈련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현 감독은 15년의 선수 생활, 30년 지도자 생활까지 일평생 탁구만 보며 살아왔다. 여전히 눈빛에선 탁구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읽혔다. 그는 최근 대한탁구협회 부회장으로도 선임됐다. 지난 2월 고향 부산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조직위 집행위원장 역할을 잘 수행한 데 따른 것이다. 주요 대회 때마다 해설위원으로도 활약한 그는 이번에도 프랑스 파리에 간다.
1969년생인 현 감독은 초등학교 3학년 때 탁구를 접했다. 학교에서 탁구부를 만들었는데, 달리기에 재능 있던 현 감독도 선수로 뽑혔다. 나가는 대회마다 ‘언니들’을 이겼다. 중1말부턴 3학년 언니들을 제치고 금메달을 쓸어 담았다. 1985년 처음 국가대표로 선발된 뒤 한국 최고의 에이스로 10년을 지냈다.
전 국민에 현정화라는 이름을 알린 건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여자단체전 결승에서였다. 단식경기 대표로 나선 현 감독이 중국 선수를 2번이나 이기면서 우승을 이끌었다. 고2였던 현 감독은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또 ‘환상의 짝꿍’ 양영자 선수와 1987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여자복식 금메달을 따면서 신드롬을 일으켰다. 첫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을 여러 번 꺾으면서 국민적인 기대감이 크게 올랐다. 그에게 올림픽 금메달은 너무 당연했고 반드시 우승해야만 했다. 현 감독은 “우승을 하고 (양)영자 언니에게 ‘언니 금메달 따서 정말 다행이다’라고 얘기했다”며 “우승해야만 한다는 엄청난 부담이 있었는데 그제야 안도감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현 감독이 딴 주요 국제대회 금메달만 23개에 달한다. 수많은 금메달 가운데 가장 소중한 건 역시 서울올림픽이다. 1991년 남북 단일팀으로 출전해 단체전 우승을 차지한 지바 세계선수권도 각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1993년 여자단식에서 우승했던 예테보리 세계선수권은 개인적으로 가장 자부하는 대회로 꼽았다. 그의 마지막 국제대회로 이듬해 만 25세 이른 나이에 선수 생활을 접었다. 현 감독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선 여자단식과 복식 동메달을 땄다. 그는 “당시 탁구계 분위기는 ‘타도 현정화’였다. 어린 선수들이 성장하면서 나를 목표로 하니까 나도 계속 열심히 훈련해야 했는데 열정이 조금씩 식었다”며 “정상에서 박수 칠 때 떠나고 싶었다”고 했다.
은퇴 1년 만인 95년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96년부터 마사회 탁구단에서 코치를 하다 2010년부턴 감독을 맡고 있다. 지도자 생활 올해로 30년째다. 국가대표팀 지도자로도 활약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 처음 코치로 나갔고, 2004년 아테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코치에 이어 2012년엔 여자팀 감독으로 런던올림픽을 치렀다.
아쉽게도 한국 탁구는 런던에서 남자단체전 은메달 이후 메달 소식이 끊겼다. 여자만 보면 베이징 단체전 동메달 이후 메달을 따지 못하고 있다. 현 감독은 얇아진 선수층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다. 올림픽뿐 아니라 국제대회 성적이 저조한 것도 초등부부터 실업팀까지 남녀 선수 합쳐 1400여명에 불과한 얇은 선수층이 자리하고 있다고 현 감독은 봤다. 그가 선수로 뛸 땐 1800명가량 됐다고 한다. 30년 새 400명 이상 준 것이다. 대표적인 구기 종목인 축구, 야구 등 소위 ‘돈 되는’ 스포츠로 빠지거나 새로운 스타가 탄생한 골프, 피겨 스케이팅 등을 하는 유소년이 늘어난 영향이다. 인구 감소 문제도 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한국 탁구에 대한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올림픽 노메달, 얇아진 선수층, 귀화선수 문제, 또다시 훈련량 부족까지 얘기가 오갔다. 이번 올림픽에 대해 물으니 현 감독은 그래도 희망섞인 전망을 내놨다. 그는 “모든 선수가 메달 가능성이 있다”며 “남녀 단체전, 혼합복식 등에서 좋은 성적을 낼 거다. 탁구 붐을 다시 일으켜줬으면 한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강조했다. 현 감독은 “언제나 목표는 올림픽 금메달이어야 한다. 지금은 동메달에도 좋아하고 올림픽 자체를 즐기는 분위기지만, 좋은 결과를 내려면 목표를 크게 잡아야 한다”며 “금메달 목표로 하는 훈련과 동메달이 목표인 훈련은 천지 차이다. 또 국가대표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지고 있더라도 1점씩 따라붙는 모습에 국민이 박수를 칠 것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했다.
한가지 걱정은 역시 체력이다. 메달 기대주인 신유빈-임종훈의 혼합복식 조는 올림픽 결승전 전까지 세계랭킹 1위 중국을 피하고자 올해 내내 사우디아라비아, 크로아티아, 나이지리아 등 전 세계를 돌며 국제대회에 출전했다. 세계랭킹 2위를 사수해 올림픽 2번 시드를 받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난주 태국 방콕 대회 8강에서 탈락하며 2번 시드를 일본에 내주고 3번 시드로 밀렸다. 대진에 따라 중국을 준결승에서 만날 가능성이 커졌다. 대회를 치르느라 연습과 체력 훈련할 시간을 날린 꼴이 됐다. 결과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한 현 감독은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체력을 올릴 수는 없다”며 “본인이 제일 잘하는 것을 집중 연습하고 상대방 분석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천=김민영 기자 m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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