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교체 성공한 무적함대, 또 다시 침묵한 케인

이준목 2024. 7. 15.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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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축구연맹유로 2024' 결승에서 스페인, 잉글랜드에 2:1승리

[이준목 기자]

우승도 역시 해본 사람들이 하는 것일까. '무적함대' 스페인이 '축구종가' 잉글랜드를 누르고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4회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반면 잉글랜드와 간판스타 해리 케인은 마지막 고비를 넘지못하고 또다시 메이저대회 무관의 아픔을 되풀이하며 역대급 진기록을 남겼다.

7월 15일(한국시간) 독일 베를린 올림피아슈타디온에서 열린 '유럽축구연맹(UEFA)유로 2024' 결승전에서 스페인은 잉글랜드에 2-1로 승리했다.

스페인은 경기 초반부터 압도적인 점유율을 바탕으로 공세를 주도했다. 잉글랜드는 밀리는 상황 속에서도 끈끈한 수비로 유효슈팅을 단 한 개로 허용하지 않으며 스페인의 공세를 잘 버텨냈다. 양팀은 전반을 0-0으로 마쳤다.

후반 시작과 더불어 균형이 깨졌다. 2분만에 야말이 우측에서 대각선 패스로 내준 공을 문전으로 돌진하던 니코 윌리엄스가 논스톱 왼발 슛으로 마무리하며 마침내 잉글랜드의 골망을 갈랐다.

위기에 몰린 잉글랜드는 파격적인 강수를 꺼내들었다. 올리 왓킨스를 투입하며 부진하던 간판 공격수 해리 케인을 교체한 것. 이어 25분에는 마이누를 빼고 콜 파머를 투입했다.

3분만에 교체투입된 파머가 극적인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내내 밀리던 잉글랜드도 모처럼 얻어내 역습찬스에서 주드 벨링엄이 스페인 수비의 견제를 이겨내고 넘어지면서도 뒤로 공을 내줬다. 달려오던 파머가 노마크 상태에서 과감한 왼발 중거리슛을 날렸다. 골은 정확하게 스페인의 골망 구석에 꽂혔다.

경기가 연장으로 흘러갈 듯한 분위기가 깊어지던 후반 42분, 다시 한번 스페인이 승부의 흐름을 뒤집었다. 교체카드가 적중한 것. 교체투입된 미켈 오야르사발의 원터치 패스를 이어받은 쿠쿠렐라의 땅볼 크로스가 다시 문전으로 쇄도하던 오야르사발에게 연결됐다.

오야르사발은 잉글랜드의 수비와 오프사이드를 모두 간발의 차이로 피하여 몸을 날리며 발을 밀어 넣어 원터치슛을 날렸다. 만일 연장으로 갔다면 스쿼드가 두터운 잉글랜드가 유리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터진 극적인 결승골이었다.

다급해진 잉글랜드는 필 포든을 제외하고 아이반 토니를 투입하며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하지만 스페인은 수비형 미드필더 미켈 메리노를 투입하며 지키기에 들어갔다. 스페인은 코너킥 상황에서 잉글랜드의 위협적인 세트피스에 고전했으나 수비수 다니 올모의 결정적인 헤딩 클리어링으로 위기를 벗어났다. 추가시간을 잘 버텨낸 스페인은 종료 휘슬이 울리면서 12년만의 대회 우승을 확정했다.

스페인은 유로 대회에서 1964년 첫 우승에 이어 2008년과 2012년 연속 우승, 그리고 이번 우승까지 통산 4번째 트로피 획득에 성공했다. 월드컵에서는 2010년 남아공 대회 단 한 차례 우승을 차지했던 스페인은, 유로 대회에서만큼은 독일(3회)을 제치고 단독 최다 우승국의 반열에 올랐다.

유럽 최고의 축구강국중 하나인 스페인은 2000년대 후반부터 메이저대회 3연패(유로 2연패, 2010 남아공월드컵 우승)을 차지하며 최전성기를 보냈다. 하지만 사비,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다비드 실바, 페르난도 토레스, 다비드 비야 등 '황금세대'가 쇠퇴하면서 한동안 부침의 시간을 보내야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충격적인 조별리그 탈락을 시작으로 유로 2016과 2018 러시아 월드컵,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연달아 16강에서 언더독팀들에게 덜미를 잡히는 수모를 당했다. 지난 대회인 유로 2020에서는 4강에서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스페인은 2022-23시즌 UEFA 네이션스리그 우승에서 이어 유로 2024에서 다시 한번 정상에 오르며 명가의 자존심을 회복했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 7전 전승은 전성기의 황금세대조차 이루지못한 유로 역사상 최초의 업적이다.

스페인은 조별리그부터 크로아티아, 이탈리아, 알바니아와 '죽음의 조'에 속했다는 우려와 달리 3연승과 5득점 무실점으로 가볍게 통과했다. 토너먼트에서도 16강에서 만난 조지아를 제외하면 8강 이후로는 독일-프랑스-잉글랜드같은 우승후보들을 잇달아 만나고도 모두 승리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사실 스페인의 전력은 황금세대 시절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다. 알바로 모라타를 제외하면 이렇다할 최전방 공격수가 없고, 선수들의 메이저대회 경험도 부족했다. 심지어 스페인 내부에서조차 장래가 기대되기는 하지만 당장 우승전력은 아니라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루이스 데 라푸안테 감독은 스페인의 연령대별 대표팀을 거쳐 2022년부터 A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으며 자신의 특기를 살려서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세대교체에 성공했다. 스페인은 대회 내내 확실한 게임플랜과 빌드업을 바탕으로 주도적인 경기를 펼쳤고, 중요한 고비마다 라 푸안테 감독의 교체 카드가 신들린 듯 적중하면서 우승후보들을 격파할 수 있었다. 또다른 황금세대의 등장을 예고한 스페인은 2년뒤 북중미월드컵에서도 강력한 우승후보 1순위가 될 전망이다.

반면 잉글랜드는 지난 유로 2020에 이어 사상 첫 2회 연속 대회 결승진출이라는 업적을 이루고도 또다시 준우승에 그쳤다. 잉글랜드는 축구종가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메이저대회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자국에서 열린 1966년 월드컵이 유일한 메이저대회 우승기록이며 심지어 유럽선수권은 아직 무관이다.

잉글랜드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해리 케인, 필 포든, 주드 벨링엄 등 빅리그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는 초호화 스쿼드를 앞세워 선수들의 이름값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꼽힐만큼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됐다. 그러나 정작 대회 내내 기대에 못미치는 경기력으로 결승까지 올랐음에도 혹평을 피하지 못했다. 스페인과 달리, 결승까지 올라올 동안 네덜란드와의 준결승을 제외하면 강팀들을 한번도 만나지않았던 역대급 대진운의 수혜를 누렸다는 평가도 있었다.

잉글랜드의 주장이자 간판스타 해리 케인도 조국 잉글랜드 못지않게 '무관의 저주'로 유명하다. 케인은 EPL과 월드컵 득점왕까지 차지한 당대 최고의 월드클래스 공격수지만 클럽과 대표팀을 통틀어 아직까지 메이저대회 우승 경험이 없다. 케인은 프리미어리그(PL) 2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준우승, 잉글랜드 리그컵 준우승, 유로 2연속 준우승 등 오직 2위 커리어만 가득하다.

케인은 우승을 위하여 지난 시즌 토트넘을 떠나 독일 최강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지만, 하필 레버쿠젠의 무패우승 돌풍에 밀려 뮌헨의 연속 우승 기록이 중단됐다. 챔피언스리그에서도 4강에서 고배를 마시며 또다시 무관에 그쳤다. 이번 유로 2024에서 첫 우승이 어느 때보다 절실했던 케인은 4강까지 3골을 기록하는 활약을 보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결승전에서 케인은 또다시 거짓말처럼 침묵했다. 케인은 클럽과 국가대표 경력을 통틀어 총 5번의 메이저대회 토너먼트 결승전에서 기록한 득점이 제로(0)다. 스페인과의 유로 2024 결승에서도 케인은 경기 내내 스페인의 압도적인 점유율과 견고한 수비 앞에서 철저히 지워지며 슈팅 1회, 패스 성공률 50%, 경합 성공 2회에 그쳐 존재감이 없었다.

결국 케인은 이번에는 팀이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른 시간에 교체당하는 굴욕을 겪으며 잉글랜드의 패배를 벤치에서 바라만 봐야했다. 이로써 케인은 한 시즌에 리그(분데스리가)와 UCL(유럽챔피언스리그), 유럽선수권대회까지 무려 3개 대회 득점왕을 석권하고도 정작 모조리 무관에 그치는, 어떤 의미에서 두 번 다시 나오기 힘든 대기록의 화룡점정을 찍으며 '불멸의 2인자'로 등극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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