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의 끝판왕 대통령, 탄핵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이유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임상훈 2024. 7. 15.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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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민주주의와 탄핵

[임상훈 기자]

 지난 9일(현지시간) 총선에서 새로 선출된 영국 하원의원들이 런던의 의사당에 모여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 영국 의회
다수의 의중이 집단을 운영한다는 의미의 민주주의는 고대 시대부터 있었다. 다만 다수의 의중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집단의 운영에 반영하는가 하는 문제가 민주주의 제도의 문제고, 민주주의 역사란 곧 민주주의 제도의 역사다.

모든 민주주의 제도의 딜레마는 결국 어떻게 서로 다른 다수를 하나의 결정체로 구체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이 된다. 안건이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최후의 누군가는 매듭을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최후의 누군가의 권한을 그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어디부터 제한할 것인가? 민주주의가 전제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 최종 결정권자를 전제주의의 우두머리와 어떻게 제도적으로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을까?

제도적 민주주의에도 불구하고 독단적인, 수직적인 권력 행사가 반복되는 것은 최종 결정권자의 역할이 여전히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최종 결정권자의 판단과 결정이 잘못됐을 때, 그 잘못이 독단적 지위로 인해 바로잡을 수 없다면, 전제주의 대비 민주주의의 비교 우위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장으로서 대통령이라는 제도는 미국 건국 당시의 특수성과 관련이 있다. 민주주의의 발전에 따라 왕이든 또는 다른 어떤 직위이든, 국가원수는 행정 권력을 더 이상 행사하지 않는 방향으로 전개됐지만 미국은 달랐다.

1788년 영국과 긴장 관계 속에 탄생한 신생국가 미국은 전시에 준하는 국가 운영이 필요했고, 따라서 영국 왕에 준하는 권력의 정점이 요구됐다. 그러면서 동시에 영국식 군주제에서 벗어나길 원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대통령이다.

그랬기 때문에 삼권분립 원칙에 따른 제한된 행정부 수장 역할에도 불구하고 입법권력과 사법권력을 압도하는 국가원수급 권력이 미국 대통령에게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전제주의와 달리 민주주의라면 이처럼 위험한 제왕적 권력장치도 통제될 수 있는 제도적 보장이 따라야 했다.

민주주의는 각종 직무의 고유권한과 독립성이 상위 권력으로부터 침해받지 않도록 법적 보장을 갖춰야 한다. 특히 특수한 직무에 대해서는 그래서 엄격한 임기와 신분의 보장이 주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 역시 통제될 수 있는 제도적 보장이 필요하다. 이렇게 대통령을 포함, 고위 공직자에 대한 통제를 제도화한 것이 탄핵이다.

의원내각제의 영국에서보다 미국에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제도가 익숙한 이유는 정해진 임기 안에서는 대통령의 직위가 제왕에 버금가는 최고 수준으로 보장돼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행정부 수반인 총리는 의회의 불신임만으로 교체될 수 있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는 차이가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군주 신분인 영국의 국가원수에는 탄핵이 존재할 수 없다. 행정부 수반인 총리에게도 해당하지 않는다. 의회의 다수에 의해, 또는 소속 정당의 요구에 의해 간단한 절차를 통해 사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탄핵은 국가원수와 행정부 수반을 겸하는 대통령이라는 직위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내각 견제를 의회 독재라 부르는 것은 잘못
 
 가브리엘 아탈 프랑스 총리가 7일(현지시간) 파리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 치러진 총선 2차 투표 결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날 아탈 총리는 범여권이 1당 지위를 확보하지 못한 데 책임을 지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하겠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그렇다면 프랑스는 어떨까? 프랑스에서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국가원수와 사실상 행정부 수반의 역할을 동시에 맡는 직위가 대통령이다. 다만 미국과 차이점은 의회 권력이 행정부를 감시하는 역할을 더 부여받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행정부를 구성하는 내각이 대통령을 보좌하는 역할이라면 프랑스의 내각은 엄밀히 말해 총리를 보좌하는 역할이다. 미국의 장관을 대통령이 지명한다면 프랑스의 장관은 총리가 지명한다. 미국의 내각은 대통령의 책임과 보호 하에 있지만 프랑스의 내각은 총리의 책임과 보호 하에 놓이게 된다.

이런 이유로 프랑스의 총리는 미국의 부통령에게 없는 높은 권한과 책임을 가지며 그래서 프랑스의 정치제도를 이원집정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통령이 총리를 지명하지만 반드시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따라서 프랑스의 내각은 대통령의 지휘하에 있지만 의회의 감독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정치제도는 미국과 영국보다 프랑스와 더 닮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의회는 미국의 의회보다 내각을 통제,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이 더 크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의회를 지배하는 다수당이 내각을 견제하는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의회 독재라 부르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프랑스의 정치제도가 한국과 다른 점은 내각을 통제, 감독하는 의회의 권한이 법적으로 더 명확하고, 법에 따라 더 엄격하게 이뤄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총리 지명은 대통령의 의지보다 의회 다수파의 의지가 더 반영될 수밖에 없게 된다. 대통령의 의지대로 총리를 지명할 수 있는 경우는 대통령과 의회 다수파가 같은 정파일 경우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즉 대통령과 의회 다수파가 서로 다른 정파 출신이라면 총리는 대통령과 다른 소속의 인물이 지명될 수밖에 없다. 그런 경우를 소위 '동거정부'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프랑스 대통령의 권한은 한국 대통령보다 필연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을까?

이 문제에 관해 대통령의 권한을 더 보완하도록 한 제도가 대통령의 의회 해산권이며, 이점이 한국과 또 다른 차이점이다. 프랑스의 대통령은 의회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12개월 내 한 차례만 의회를 해산할 수 있고, 대통령의 선언과 동시에 의회의 모든 권한과 자격은 정지되며 그로부터 20일에서 40일 사이에 새 의회 구성을 위한 총선을 치러야 한다.

민주주의 변천사는 민주주의 제도의 변천사
 
 지난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총선 2차 투표 결과가 나온 후 시민들이 레퓌블리크 광장에 모인 가운데 프랑스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 연합뉴스
 
현재 프랑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권 지각변동이 바로 이 절차에서 비롯된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력 한계와 그에 따른 극우세력의 부상을 극복하기 위해 유럽의회 선거 당일 저녁 의회 해산을 선언했다.

그의 앞선 두 차례 대통령 당선이 그랬듯이 결국 극우 세력을 막기 위한 유일한 길은 자신을 지지해 주는 것 외에 없음을 국민들이 인정하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무능을 덮기 위해 민주주의를 볼모로 하는 대국민 협박을 또 한 번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국민은 그의 세 번째 협박을 거부했고, 좌파 정당들의 연합인 '신인민전선'에 제1당의 지위를 부여했다. 대통령의 신임은 이렇게 거부됐고, 프랑스 국민들은 극우세력을 막으면서도, 동시에 대통령을 거부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사실상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명한 것이다.

프랑스도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과 같은 이유로 헌법에 탄핵 제도를 보장하고 있다. 상원 또는 하원 10분의 1 이상이 발의하고 상원과 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을 해, 상·하원 합동으로 구성되는 고등재판소에서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대통령은 파면이 된다.

그렇지만 현 제도 하에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단 한차례의 소추도 없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현재와 같은 정치적 위기를 유발하고 무능의 끝을 보여준 마크롱 대통령을 향한 탄핵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기술한 대로 의회 권력을 통해 대통령의 권한을 무력화시키고 사실상 의회 통제 하의 내각이 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내치는 전적으로 총리가 책임을 지게 되고 대통령은 국방과 외교 등 제한된 영역에서만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사례가 5공화국 들어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자크 시라크 대통령하에서 두 차례 있었다.  

민주주의 원리 자체는 고대부터 변하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변천사는 민주주의 제도의 변천사다. 민주주의의 발전도 따라서 민주주의 제도의 발전이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행사하기에 피로감과 부담감이 크다면 얼마든지 제도를 보완해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할 수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탄핵에 대한 피로감과 부담감은 각오해야 한다. 그것이 주권자에게 주어진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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