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들짝 놀란 한미 정상, 북러 협정에 뭐가 들었길래
[김창현 기자]
▲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월터 E. 워싱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2024.7.12 |
ⓒ 연합뉴스 |
7월 11일 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두 정상은 북러 군사협력을 입모아 규탄하며 한반도 핵억제 핵 작전 지침에 관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 1차장의 해설에 따르면 그동안 재래식 전력에 기반해 온 한미동맹이 이제 핵기반 동맹으로 격상되었다고 한다. 도대체 북러 협정의 본질이 무엇이길래 한미정상들이 이렇게 화들짝 놀라 핵 기반 한미동맹을 운운하기에 이르렀을까. 바로 얼마 전 있었던 푸틴과 김정은의 만남 때문이다.
상상을 뛰어넘는 전진
올해 6월 북과 러시아의 포괄적 전략동반자관계 조약이 맺어진 후 많은 학자와 연구자들은 다양한 해석과 평가를 내놓았다. 거의 대부분 공통적으로 북과 러시아가 전략적 동맹관계로 격상되었다는 평가에 큰 이견이 없는 듯하다. 혹자는 그 위험성을 강조하고 혹자는 아직 한국과 러시아 간 뭔가 여지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위험성에 대한 강조는 아무리 많이 해도 지나침은 없다. 또한 아직 한국과 러시아 간 친선과 협력에 대한 꿈을 말하는 것도 그런 대로 의미를 지닌 평가이기도 하다. 푸틴은 한국이 미국과 관계 속에서 자율성이 없음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선만 넘지 말 것을 여러 차례 경고한 바 있기 때문이다.1) 즉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만 하지 않는다면 러시아와 한국 간 관계는 결코 적대적으로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섞인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 무기가 아닌 재건을 위한 신탁기금 증액과 발전기 200대 등을 지원하기로 한 것은 여러 가지를 고려한 결정이라고 본다.
그러나 필자가 볼 때 현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00년 7월 방북하여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바 있다. 그리고 올해 6월, 24년 만에 평양 땅을 밟고 김정은 위원장과 역사적인 회담을 진행했다. 소련과 러시아 통틀어 두 번이나 방북한 러시아 최고 지도자는 푸틴이 유일하다.
혹자는 이번 협정에 침략을 당할 시 상호 지원하는 내용의 조항을 두고 '유사시 자동 군사개입 조항'이라고 호들갑을 떤다. 그러나 실제 이것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엄밀히 말해 그 조항이 있고 없고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자동 개입 조항이 있다고 한쪽에서 전쟁이 터지면 동맹국은 무조건 그날부로 전쟁에 돌입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 조항 유무를 떠나 국내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개입을 결정짓기 마련이다. 서로 돕자고 여러 번 맹세한 동맹이라 할지라도 자국의 여론이 좋지 않거나 상황이 어려우면 개입하지 않는 법이다. 따라서 이번 북러 협정을 분석할 때 자동 개입 조항 유무는 그렇게 중요한 고려지점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번 협정의 핵심일까. 우선 1961년 북이 소련과 맺었던 조약과 비교를 해보면 이번 협정의 의미가 선명해진다. 흐루쇼프 서기장과 김일성 주석 간 맺었던 1961년 조소 조약의 명칭은 '우호 협조 및 상호원조에 관한 조약'이다. 이 조약은 '유엔의 목적과 원칙에 입각하여 극동과 전 세계 평화와 안전의 유지 공고화'를 목적으로 하며 이를 위해 일방이 무력 침공을 당하면 군사적 원조와 지지를 서로 지체 없이 제공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두 국가 간 경제적 문화적 협조와 원조를 서로 제공하며 한반도의 통일은 평화적이고 민주주의적 기초 아래 실현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못 박고 있다.2)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제 1조에 명시하고 있는 '유엔의 목적과 원칙에 입각하여 극동과 세계평화와 안전유지'라는 조약의 목표로 얼른 보아도 방어적이고 수세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실제 이 조약은 상호원조의 형식을 띠고 있으나 전쟁을 마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은 북에 대한 소련의 지원 약속이 가장 중요한 의미였다. 더욱이 한반도 남쪽에 주둔하며 여전히 북을 위협하고 있는 미군에 대한 안전판 역할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그리고 이 조약이 맺어진 장소가 모스크바라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원래 답답한 사람이 찾아가 부탁하는 것이 당연한 법이다. 당시 조약이 가장 급한 쪽은 북이었지 소련이 아니었다. 자 그렇다면 이번 협정은 어떨까?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월 19일 모란관 영빈관에서 열린 국빈 리셉션에 참석하고 있다. |
ⓒ 타스통신=연합뉴스 |
이번 북러 간 포괄적동반자 협정이 갖는 목표를 보면 조소 조약과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롭다. '정의롭고 다극화된 새로운 세계질서 수립'에 적극 협력한다는 것을 목표로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은 2022년 6월 30일 제10차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법률포럼에서 영상 인사말을 통해 "현재 국제 관계는 다극 체제로 만들어져 가고 있으며 이는 되돌릴 수 없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규범에 기초한 질서(RBIO)'는 미국의 부정의한 일극 체제일 뿐이라고 비판하며 이것을 허물어뜨리고 다극 질서를 만들어가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실천적 방향도 입만 열면 주장해 왔는데 그것은 브릭스3)와 상하이 협력기구4)의 발전이었다.
푸틴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김정은 위원장도 입만 열면 미국의 일방 패권은 끝났음을 지적하고 신 냉전을 반대하고 다극화된 세계에 대한 지향을 수시로 밝힌 바 있다. 이러한 두 정상의 주장이 이번 협정의 제1 목표로 정확하게 제기되었다는 점에서 그 특징을 읽을 수 있다. 미국의 일방적 패권주의를 반대하는 반제 전선을 공동으로 펼쳐나갈 것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조소 조약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전략적이다.
무기한 조약
조소 조약은 10년간 효력을 가지며 일방이 기한 만료 1년 전 조약 폐기에 대한 의사를 표시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5년간 계속하여 효력을 갖는 방식으로 연장한다고 되어 있다. 소련이 붕괴된 후 1994년 6월 김영삼 대통령은 러시아를 방문하여 보리스 옐친 대통령에게 해당 조약의 폐기를 요구한 바 있다. 1995년 8월 7일 러시아는 북에 이 조약의 기한을 늘리지 않겠다고 선언해 1996년 9월 10일 폐기되었다. 북의 입장에서 본다면 오랜 친구였던 러시아에 관계 단절의 아픔을 겪었다 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 조약은 이보다 훨씬 진일보했음을 보여준다. 조약은 총 23조로 작성되었는데 양국의 비준을 거쳐 비준서를 교환한 날로부터 무기한 효력을 가지며 조약의 효력 중지는 일방이 서면으로 통지받은 날로부터 1년 후에 발생한다고 못 박은 것이다. 국가 간 군사 지원까지 염두에 둔 조약이 무기한이라는 점에서 두 국가 간 신뢰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9월 27일 개정된 북한 사회주의 헌법 제104조에 따르면 국무위원장이 다른 나라와 맺은 중요 조약에 대해 비준 또는 폐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재의 무력화
두 정상의 회담에는 외교·군사뿐 아니라 에너지·교통·철도·우주·보건 등 다양한 경제 분야 책임자들이 대거 참석하였다. 이것은 향후 두 국가의 협력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한 전망을 보여준다 할 것이다. 북러 양국은 이번 조약에서 첫째, 식량 및 에너지, 둘째, 정보통신기술분야, 셋째, 기후변화·보건·공급망 등 전략적 의의를 가지는 분야, 넷째, 무역경제·투자, 다섯째, 우주·생물·평화적 원자력·인공지능·정보기술 등 과학기술분야, 여섯째, 농업·교육·보건·체육·문화·관광·환경보호 및 자연재해 방지 등 여러 분야의 교류와 협조를 포괄적으로 약속했다.
한마디로 유엔 대북제재를 뛰어넘어 관계를 발전해가겠다는 것이다. 물론 러시아는 몇 년 전부터 대북 제재 관련한 추가 결정에 계속 반대표를 던져 유엔 제재에 심대한 타격을 입혀왔다. 추가 제재를 반대하는 수준을 넘어 제재 결정에 구애받지 않고 무제한 협력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군사 강대국 간 결합
이제 그 누구도 북이 핵 보유국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한국 정부도 애써 이를 부인하고 있을 뿐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가 요원해졌음을 잘 알고 있다. 북은 다양한 핵무기를 소형화·규격화하여 양산 체계에 들어갔음을 보여 주고 있다. 더욱이 최근 극초음속 중장거리 미사일 시험에 성공해 괌과 오키나와에 주 전력이 몰려있는 미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미 본토를 위협하는 고체연료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핵무기를 실은 3000t급 잠수함, 다양한 순항 미사일을 선보이고 있다.
북과 러시아의 밀착은 동북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군사적 균형을 뒤흔드는 일대 사건이 분명하다. 러시아가 현재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는 중국·인도·베트남·몽골·남아프리카공화국·우즈베키스탄·아르헨티나 등이다. 그러나 이들 중 서로 공격받을 경우 군사적 지원을 약속한 나라는 아무도 없다. 공동훈련을 하는 중국과도 그런 약속은 하지 않았다. 즉 북과 맺은 이번 동반자 관계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군사동맹이 탄생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조소 조약과 질적 차이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번 조약의 가장 큰 수혜자는 북이 아니라 러시아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면서 미국과 나토 등지에서 러시아 본토 공격에 대한 언급이 심심찮게 흘러나오며 확전의 위험성이 커져가고 있다. 5) 그 어느 나라도 러시아와 상호 지원을 약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의 일부 학자와 언론은 조러 조약을 보며 세계 무대의 전면에 등장한 김정은이라고 묘사하는 것이다.
▲ 북한이 우리 군이 실패로 판단한 탄도미사일 발사가 다탄두 능력 확보를 위한 '성공적' 시험이었다고 주장했다. 조선중앙통신은 27일 "미사일총국은 26일 미사일 기술력 고도화 목표 달성에서 중대한 의미를 가지는 개별기동 전투부(탄두) 분리 및 유도조종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고 밝혔다.2024.6.27 |
ⓒ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
한국의 언론들이 러시아와 북의 협력 배경으로 러시아의 포탄 부족을 언급하는 것을 보며 필자는 잠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러시아는 자국 영토가 전쟁터가 아니므로 무기 생산 시스템이 정상 가동 되고 있다. 따라서 북의 포탄을 공급받고 있다는 추측은 그야말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
혹자는 북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 축소로 한반도 이슈에서 밀려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동반자 협정을 맺었다고 한다. 이 또한 옳은 분석이 아니다. 지금 북이 엄청난 속도로 군사 강국이 되어 가고 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두 국가의 결합은 반미·반제의 국제적 상징이다. 그래서 필자는 북·러 포괄적 동반자 협정을 게임 체인저로 평가하는 것이다. 한미일을 묶고 나토와 연결하려는 거대한 미국의 의도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1) 권혁철. 한겨레 신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각) 모스크바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제공하기로 결정한 것을 알고 있다”며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할 경우 한국과 러시아 관계가 파탄 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22.10.28 2) 로동신문, 조선과 극동에서의 평화의 위력한 담보, 1961.7.7 3) 브라질(Brazil), 러시아(Russia), 인도(India), 중국(China), 남아프리카 공화국(South Africa) 2006년 브릭스로 언급된 국가의 외무부 장관들이 뉴욕에서 만나 회의체에 대한 구상을 의논했고, 2009년에 상설기구화되어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첫 정상회의를 가졌다. 2023년 8월 24일 남아공에서 열린 회의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아랍에미리트, 아르헨티나, 이집트, 에티오피아 6개국 추가 가입이 결정되었으나 아르헨티나는 정권교체 후 집권한 하비에르 밀레이가 가입을 거부했고 사우디의 경우 아직 가입 검토 중이다. 4) 1996년 4월 26일 중국 상하이시에서 러시아, 중화인민공화국,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정상들이 《국경 지대의 군사적 신뢰 강화를 위한 조약》을 체결하면서 상하이 5국(Shanghai Five)이 형성되었다. 2001년 6월 15일에 우즈베키스탄이 합류하면서 상하이 5국은 상하이 협력 기구로 개편되었다. 2017년 6월 9일에는 인도, 파키스탄이 가입하였다. 2023년 7월 4일에는 이란이, 2024년 7월 4일에는 벨라루스가 가입하였다.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인도, 파키스탄, 이란, 벨라루스 10개국은 정회원국, 몽골 1개국은 옵서버로 활동하고 있으며 투르크메니스탄, 독립 국가 연합과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은 초청 국가 및 기구이다. 또한 스리랑카, 튀르키예,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캄보디아, 네팔, 이집트,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쿠웨이트, 몰디브, 미얀마, 아랍에미리트는 대화 파트너로 지정되었다. 5) 연합뉴스. 김계연기자.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31일(현지시간)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외무장관 회의에서 미국 무기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할 수 있도록 일부 허용했다고 말했다. 2024.5.31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집집마다 붙은 집주인 변경 안내문, 지옥이 시작됐다
- 미 대선 뒤흔든 '세기의 사진', 누가 찍었나 보니
- 김건희·한동훈 수사할 의혹 쌓인다
- 장마 끝나도 큰일... BBC가 소개한 그 집이 위험하다
- 나와 같은 샤워장 쓰는 걸 불편해 할 수도 있는 당신에게
- 영국대학 교재된 차인표 소설... 현지에선 이 작가 추천하네요
- 노인은 면허증 반납해라? 쉽게 얘기할 일이 아닙니다
- "한동훈 댓글팀 발견, 502개 댓글 오탈자까지 똑같아"
- 빗속 1인시위 시민에 "왜 그렇게 사나, 불쌍", 서산시장 발언 논란
- 공수처 검사들 '도이치 공범' 변호 전력... 야권, 부실수사 우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