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죽음 이후 천재 피아노 소년이 갖게 된 트라우마

안지훈 2024. 7. 15.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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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훈의 뮤지컬 읽기] 한국-영국 동시 개막, 뮤지컬 <4월은 너의 거짓말>

[안지훈 기자]

밖은 여름이지만 극장 안은 봄이다. 벚꽃이 군데군데 피어있고, 봄에 어울리는 색채로 무대는 가득 채워져있다.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4월은 너의 거짓말>을 원작으로 만든 동명의 뮤지컬은 그 이름에 걸맞게 4월과 같은 무대로 관객을 맞이한다.

트라우마를 지닌 천재 음악가 '아리마 코세이'가 자유분방한 소녀 '미야조노 카오리'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학원물인 <4월은 너의 거짓말>은 2022년 일본에서 처음 공연된 이후 올해 한국에서 첫 선을 보이고 있다. 특히 한국 개막일인 6월 28일, 영국 웨스트엔드에서도 동시 개막하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4월은 너의 거짓말>은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색채를 무대 세트로 구현하고, 학원물의 풋풋함을 보여준다. 그동안 국내 대극장 뮤지컬에서 쉽게 접하지 못한 소재다. 그 자체로 도전이라 평가할 수 있겠다. 다만 보는 이에 따라 신선함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과한 액션과 오글거리는 대사가 종종 등장하기 때문이다.

반면 음악은 듣는 이에 따라 익숙하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이미 <지킬 앤 하이드>, <웃는 남자> 등으로 한국 뮤지컬 팬들에게도 익히 알려진 프랭크 와일드혼이 작곡가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한국 공연에서는 뮤지컬배우 윤소호와 FT아일랜드 이홍기, 트로트 스타 김희재가 '아리마 코세이'를 연기하고, '미야조노 카오리' 역에는 이봄소리, 케이, 정지소가 캐스팅되었다. 카오리를 좋아하는 축구부 주장 '와타리 료타' 역에는 김진욱, 조환지, 그리고 FT아일랜드의 이홍기가 캐스팅되었으며, 코세이의 단짝 친구 '시와베 츠바키'에는 박시인과 황우림이 분한다. <4월은 너의 거짓말>은 8월 25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뮤지컬 <4월은 너의 거짓말> 공연사진
ⓒ EMK뮤지컬컴퍼니
 
어린 예술가, 그리고 사랑

코세이는 인간 메트로놈이라 불릴 만큼 정교한 피아노 연주로 각광받던 소년이었다. 하지만 엄격한 피아노 연주를 강조한 어머니에게서 비롯된 강박과 이후 어머니의 죽음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 트라우마는 코세이로 하여금 피아노 소리를 듣지 못하게 했다. 연주에 집중한 코세이의 귓가엔 피아노 소리가 아닌 어머니의 지적이 맴돈다.

<4월은 너의 거짓말>은 코세이가 사랑을 통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필자는 사랑과 함께 '어린 예술가'의 존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코세이를 구한 건 사랑이기도 하지만, 일차적으론 때묻지 않은 어린 예술가, 자유로운 음악가의 존재였다.

코세이는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카오리의 콩쿨 연주를 보러 간다. 여기서 카오리는 악보를 따르지 않고 마음 가는대로 연주한다. 정해진대로 연주해야 한다고 압박받았던 코세이는 카오리의 연주를 칭찬했지만, 입상에 대해선 부정적이었다. 심사위원들은 카오리의 연주 도중 악평을 쏟아냈고, 이를 음악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여기서 한 번 생각해보자. 카오리의 연주는 정말 음악이 아닌 걸까? 이에 대해선 다음의 두 인물로 반박할 수 있을 듯하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미학자인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Adorno)와 미국의 작곡가 존 케이지(John Cage)가 필자가 반박에 활용하고자 하는 주인공이다. 아도르노는 굵직한 저작 <미학 이론>의 첫 장에서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예술에 관한 한 아무것도 자명한 것이 없다"고.

존 케이지는 우연성을 음악 세계로 끌고 들어왔다. 카오리가 선보였고, 기존의 예술가라 할 수 있는 심사위원들이 부정했던 바로 그 우연성을 말이다. 특히 4분 33초 동안 피아노에 앉아 아무 음도 연주하지 않는 곡 '4분 33초'는 음악사에 큰 획을 그었다. 이들은 모두 어린 예술가들이었다. 나이가 아닌 영혼이 어린 예술가.

어린 예술가 카오리는 코세이가 변화하는 시발점이 된다. 입상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자유롭게 연주한 카오리는 스스로 "발버둥쳤다"고 회고하며 코세이에게 함께 연주할 것을 권유한다. 머뭇거리는 코세이에게 함께 발버둥치자고, 함께 여행하자고 소리치고, 음악에 대한 강박을 거부할 것을 요구한다. "오선지 감옥"에서 빠져나오라는 어린 예술가의 말에 코세이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는다.

코세이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결정적 계기는 '사랑'이다. 카오리의 사랑, 그리고 자신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준 어머니의 사랑. 그리고 이 사랑들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거짓말'을 수반했다는 것이다. 그 거짓말을 코세이가 알게 될 때, <4월은 너의 거짓말>이라는 작품의 제목이 상기된다.
 
 뮤지컬 <4월은 너의 거짓말> 공연사진
ⓒ EMK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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