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쳐야 산다"…재건축 냉각기, 뜨거운 1기 신도시[싹트는 통합재건축]
불씨 당긴 노특법…사업성 높이고 기반시설 정비
"서울서도 시도 계속 늘 것…성공은 글쎄"
편집자주 - 재건축이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가파르게 오른 공사비에 건설사의 선별 수주로 어려움을 겪는 단지가 많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통합재건축이 정비업계의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가구 수가 적거나 사업성이 부족한 개별 단지가 모여 하나의 단지처럼 재건축하는 방식이다. 통합재건축으로 규모를 키워 아파트 가치를 높일 수도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단지별 사업성이 다르고, 조율해야 할 이해관계가 많아 실제 성공할 단지는 많지 않을 것으로 점친다. 단지 간 소통이 성공 키워드라는 조언이다. 아시아경제는 정비업계의 통합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는 5곳을 찾아 이들의 현주소와 통합재건축의 방향을 진단해본다.
"1기 신도시에서 재건축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겠어요. 돈이 너무 많이 드니까 ‘재건축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한다’였지요. 근데 요즘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추진 안 하면 위원장이 쫓겨날걸요. ‘실패해도 일단 뭉치고 보자’ 이게 지금 상황이에요."
15일 경기 성남시 분당에서 통합재건축을 진행하고 있는 한 추진위원장은 동네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최근 통합재건축을 주도하는 것은 분당을 포함한 1기 신도시다. 특히 분당은 통합 움직임이 가장 활발하다. 아시아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 19곳, 58개 단지가 통합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된다.
불쏘시개 된 노특법…"통합 안 하면 재건축 못 한다"
1기 신도시에 통합재건축 바람이 분 것은 정부가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노특법)을 제정하면서다. 이 법은 기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으로는 재건축 등 정비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운 노후화된 계획도시에 특화돼 있다. ▲안전진단 면제 혹은 완화 ▲용적률 150% 상향 ▲용도지역 변경 등 사업성을 높일 수 있는 혜택이 담겼는데, 전제 조건으로 여러 개의 단지를 묶는 ‘통합 정비’를 내걸었다.
노특법이 아니고서는 재건축이 어려운 1기 신도시에는 소위 불이 붙었다. 특히 정부가 가장 먼저 재건축을 할 ‘선도지구’ 선정 작업에 들어가면서 통합 동력이 더 세졌다. 지난 5월 국토교통부의 선정기준 발표 후에는 통합재건축을 추진하는 단지가 급속도로 늘었다고 한다. 분당의 한 통추위원장은 "원래는 12~15개 단지가 접수 의사를 밝히고 준비해왔는데 지금은 그 숫자를 다 세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기반시설 정비하고 공사비 낮추고…정부·주민 윈윈
정부가 통합을 유도하는 것은 1개 아파트 단지를 재건축하는 기존 방식으로는 도시의 밑그림을 다시 그리기 어려워서다. 노특법으로 재건축을 해야 하는 곳은 이미 아파트가 밀집된 경우가 많다. 여기에 용적률을 높여 다시 아파트를 지으면 일조권 침해, 늘어난 인구에 따른 교통난 등 각종 문제가 쏟아질 수 있다. 반면 인접한 단지를 묶어 재건축 규모를 키우면 도로 등 기반시설 정비가 함께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재건축이지만 사실상 재개발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통합을 추진하는 단지도 더 넓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관리사무소, 노인정과 같은 법적 필수시설은 1개로 통합해 대형화하고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을 넣는 것이 가능하다. 단지 사이에 있는 도로도 대지로 편입하면 면적이 더 커진다. 통합주차장으로 지하를 덜 파고도 주차장 크기를 키울 수 있다. 개별재건축 때 필요한 흙막이 공사 등 경계부 공사도 사라진다. 불필요한 공사가 줄다 보니 공사비도 아낄 수 있다. 국토연구원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개별재건축 대비 약 11% 내외의 사업비 절감 효과가 있다. 이 밖에도 경비·관리 인력, 커뮤니티 시설 통합 운영으로 관리비가 줄어든다. 소규모 단지는 최근 건설사 선별 수주에 따른 유찰 우려를 덜 수 있다. 대형화에 따른 아파트 가치 상승도 노려볼 수 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통합의 장점은 정비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것에 있다"며 "공사비가 엄청나게 커지면서 규모가 작은 곳들은 이제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인데,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야 공사비 협상력을 높이고 단가도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광역으로 묶어서 움직이다 보니 도로 정비 등 일대 개선 효과도 있다"고 덧붙였다.
선택지는 늘었다…1기 신도시 넘어 활성화될까
정부가 노특법을 제정하면서 서울도 재건축 선택지가 다양해졌다. 노특법상 100㎡ 이상의 택지가 적용 대상인데 서울에서는 강남구 개포·수서동, 노원구 중계·상계동, 양천구 목동, 중랑구 신내동, 강동구 고덕동 등이 해당한다. 이들 지역은 통합재건축을 하면 기존보다 안전진단이나, 용적률 등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도정법에 따르면 재건축은 준공 연한이 30년을 넘어야 하지만, 노특법을 적용받으면 20년 이상도 가능하다. 애초 재건축은 용적률이 200%를 넘으면 사업성이 없다고 평가받지만 노특법을 적용받으면 최대 450%까지 상향을 기대할 수 있다. 안전진단을 통과하기 어렵고, 용적률이 높은 단지라면 통합을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통합재건축을 시도하는 사례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실제 목동 등 서울에서도 통합재건축 추진 시도가 있었다. 노특법 적용을 떠나 대단지 사업성을 기대해 통합재건축을 추진하는 단지도 있다. 다만 성공하기까지 쉽지는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장은 "정부도 묶어서 재건축하도록 유도하고 있고 개별 사업 주체인 조합도 통합 필요성을 계속 느낀다"며 "다양한 이해관계 때문에 현실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어서 다시 쪼개거나 상가를 빼거나, 여러 모습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혜민 기자 hmin@asiae.co.kr
한진주 기자 truepear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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