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원년, 용문(龍門) 앞에 선 포스코 [기자수첩-산업IT]
용문점액(龍門點額). 잉어가 용문(龍門)이라는 물살이 거센 협곡을 뛰어올라 용이 되려 하지만, 넘지 못하고 머리만 찧어 이마(額)에 상처(點)만 남긴 채 하류로 떠내려간다는 중국 전설이다.
용문점액은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연말 국내 경제 전문가 90명을 대상으로 '2024년 경제 키워드'를 조사하며 꼽은 사자성어다. 반대말로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 출세한다는 뜻의 등용문(登龍門) 이 있다.
당시 전문가들은 '용문점액'과 함께 '기로' '살얼음' '변곡점' 등도 올해의 키워드로 선택했다. 그 외에 ‘고진감래’(고생 끝에 낙이 온다), ‘사중구활’(수렁 속 한 줄기 빛), 'Lost in Fog'(안개 속에서 길을 잃는다)와 같은 키워드도 전문가들의 선택을 받았다.
해당 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올해 한국 경제‧산업이 익숙지 않은 경영환경과 함께 여러 도전을 맞닥뜨리면서 도약과 도태의 기로에 섰음을 키워드를 통해 시사한 것이다.
최근 포스코그룹을 보면 용문 앞에 선 잉어가 연상된다. 거센 물줄기를 맞으며 용이 되려는 잉어 말이다.
포스코는 올해 장인화 회장을 새롭게 추대한 이래 전방위적인 재편이 한창이다. 주력 사업인 철강 산업은 업황 침체 속에서 ‘친환경’ 옷 입기에 분주하고, 신사업인 이차전지소재 사업은 전방 산업의 침체로 첫발을 떼고도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장 회장은 취임과 함께 ‘7대 미래 혁신 과제’를 발표하며 임기 내 해결할 주요 과제를 선정하고 포스코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특히 장 회장은 그룹의 미래를 위한 혁신을 강조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실행하는지에 따라 그룹의 미래는 크게 달라질 것”이라며 새로운 변곡점 앞에 선 포스코의 현실을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포스코는 국제사회의 탄소중립 요구에 맞춰 저탄소 철강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포스코는 자체 개발 중인 수소환원제철 기술인 ‘하이렉스 (HyREX)’을 통해 CO2(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며 ‘그린철강시대’를 선도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되고, 기술 개발 및 설비 전환 등에 약 40조원의 비용이 필요하다는 건 포스코가 넘어야 할 용문이다. 아무리 글로벌 기업이라도 매년 수조 원을 투입해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도 대외적 해결 과제다. CBAM은 일종의 관세 제도로 향후 철강업계의 수익성 악화를 야기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요구는 포스코가 거스를 수 없는 용문이다.
이차전지 소재 사업에서도 포스코는 ‘포스코만의 경쟁력’ 구축에 매진하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 12일 '제3회 포스코그룹 이차전지소재사업 밸류데이'를 개최해 ▲풀 밸류체인 완성 ▲사업경쟁력 강화 ▲차세대전지 소재시장 선점을 그룹의 ‘이차전지소재사업 고도화 전략’으로 선언했다. 특히 올해를 리튬·니켈 등 원료부터 양·음극재 등 배터리 소재까지 이르는 풀 밸류체인의 가동 원년으로 선언했다.
포스코그룹은 현재 포스코필바라리튬솔루션(수산화리튬)-포스코씨앤지알니켈솔루션(니켈)-포스코퓨처엠(양‧음극재)-포스코실리콘솔루션(실리콘 음극재)-포스코HY클린메탈(배터리 리사이클링) 등 자체적인 공급망 구축에 매진하고 있다.
포스코그룹이 공급망 구축에 집중하는 것은 미‧중 패권 경쟁으로 인한 글로벌 이차전지 산업의 혼돈이 지속되면서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제재 강도를 높이면, 중국은 핵심 광물 장악력을 통해 공급을 중단하는 식의 보복으로 맞대응하는 분쟁이 반복되고 있어 자국 내 안정적인 밸류체인 구성은 포스코만의 충분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차전지 산업이 오랜 침체 속에 있어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까지는 상당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수익보다 투자 규모가 더 큰 상황이 이어질 수 있는데, 이 또한 포스코그룹이 넘어야 할 용문이다.
아울러 세계 최대 시장으로 전망되는 미국 시장에서 반기후 정책을 내놓는 후보와 정당이 대선 등 주요 선거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어 전기차로의 전환 속도가 늦춰질 수 있다는 점도 포스코의 성과를 뒤로 미루는 요인이자, 난제가 될 수 있다.
많은 전문가가 예상한 것처럼 올해는 다수 기업이 ‘지속성장의 길을 걷느냐, 장기침체의 길을 걷느냐’ 기로에 선 시기다. 장 회장이 경쟁력을 강화하고 경영체제 전반을 혁신해 초일류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 역시 포스코그룹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뜻에서다.
장 회장은 취임사에서 ‘혁신’이라는 단어를 9번 사용하며 연일 변화를 강조했다. 기로에 선 포스코에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또 강조한 것이다. 어쩌면 누구보다 포스코가 변곡점에 섰다는 것을 가장 잘 알아서였을지도 모른다.
결과는 용문을 오르거나(登龍門), 굴러 떨어져 이마만 다치는(點額) 것이다. 용문 앞에선 포스코의 등용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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