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매카트니·베컴 찍던 사진작가, 요즘 쓰레기장 찾는 까닭

전수진 2024. 7. 15.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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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매카트니 전속 사진가로도 유명한 김명중 사진작가. 새 전시 '22세기 유물전'에서 포즈를 취했다. 친환경 메시지를 담은 전시다. 그의 왼쪽에 보이는 사진은 공룡이 아니라 버려진 치실이다. 장진영 기자


쓰레기다. 사진작가 김명중의 새 전시 주제 얘기다. 플라스틱 컵라면 용기부터 버려진 운동화와 선풍기 날개까지, 이번 전시를 위해 그가 렌즈에 담은 주인공은 다양한 쓰레기다.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부터 데이비드 베컴 등 세계 스타들이 찾는 작가인 그가 왜 쓰레기에 주목했을까. 전시 제목인 '22세기 유물전(展)'에 힌트가 있다. 신석기 시대 인류는 빗살무늬 토기를, 신라시대 조상은 금관을 남겼지만, 21세기에 살아가는 인간이 남길 물건, 즉 유물(遺物)이라곤 쓰레기밖에 없지 않겠냐는 위기의식이 담겨있다.

지구를 위한 메시지에 공감한 배우 김혜자 씨가 오디오 도슨트(전시 설명) 가이드로도 참여했다. 전시의 32개 아이템 하나하나마다 김혜자 배우의 설명이 곁들여진다. 설명은 22세기 시점이다. 사용 후 버려진 치실을 찍은 사진을 두고 "유물 2호, 서울 논현동 출토"라고 시작해 "치실은 플라스틱 지지대 사이에 실을 끼워 이 사이에 낀 음식물을 제거하도록 제작된 발명품이다"라는 김혜자 배우의 설명이 이어진다. 이어 "현대인들은 치아 건강을 얻었지만 지구는 그 대가로 건강을 잃고 말았다"고 마무리된다. 전시 첫날인 12일 북서울꿈의숲 아트센터 갤러리에서 김 작가를 만났다. 전시는 다음 달 11일까지 이어진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명중 작가 '22세기 유물전' 중 마스크. 김명중 작가 제공
김명중 작가 '22세기 유물전' 중 라이터. 김명중 작가 제공
김명중 작가 '22세기 유물전' 중 일회용 플라스틱 물병. 김명중 작가 제공

Q : 인물 사진 전문가인데.
A : "인물을 찍으면서도 정물 사진을 찍고 싶다는 열망은 계속 있었다. 구본창 선생님의 비누, 배병우 선생님의 소나무 시리즈를 보며 더욱 그랬다. 그러다 2019년쯤 뒷산에 산책 겸 올라갔는데 콜라병이 땅에 반쯤 박혀서 버려져 있는 거다. 그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나중에 저 콜라병이 유물로 출토가 된다면? 우리가 이 땅에 남길 건 쓰레기뿐인 걸까. 이 작은 아이디어에 착안해 사진을 시리즈로 찍어보자고 생각했다."

Q : 전국 각지에서 쓰레기를 모았는데.
A : "쓰레기 하역장부터 매립장, 고물상 등등 안 가본 곳이 없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배달이 일상화하고 배달 용기 등등 양도 엄청나더라. 멀쩡한 데 버려지는 것들도 많았다. 어찌 보면 우리가 한 번 사용할 걸 5번 10번 더 쓸 수도 있는 건데 싶더라. 기업들만 지속가능성을 위해 ESG 경영을 할 게 아니라, 우리 개인이 ESG 생활을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김 작가의 작품으로 새 생명을 얻은 쓰레기는 지저분함이나 더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하나의 버려진 물건에 집중해 대형 사진으로 출력한 쓰레기는 오히려 아름다움쪽에 가깝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지고 쓰이다 버려진 물건이지만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음을 그의 사진은 증명한다. 크게 뽑은 치실 사진을 보고 어린아이들은 "공룡이에요?"라고 묻기도 한다고. 전시 의도와 사진들을 담은 영상은 내년 프랑스 칸 국제광고제에도 출품 예정이라고 한다.

Q : 촬영을 일반 카메라로 하지 않은 까닭은.
A : "디지털카메라로도 찍어봤는데, 맛이 살지 않더라. 아날로그 감성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우연히 집에 있던 8X10 대형 폴라로이드로 찍어봤는데, 딱이었다. 폴라로이드 필름은 온도와 습도에 따라서도 미묘하게 달라진다. 사진이 어떻게 현상이 될지 예측 불가였는데, 바로 이 불가측성이 아름다운 지점이다. 인생과도 닮지 않았나."

전시장 중앙엔 22세기 유물 출토장을 상상한 공간도 있어 재미를 더한다. 그 앞에 선 김명중 사진작가. 장진영 기자

Q : 사진 속 쓰레기가 예쁘다.
A : "한때 우리가 유용하고 편리하다고 해서 썼다가 버린 물건들이다. 쓰레기는 억울하다. 인간이 만들어놓고 막 쓰고 막 버리고 막 대하니까. 예전에 어떤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기 위해 에콰도르에 간 적이 있었다. 거대한 쓰레기 처리장엘 갔는데 알록달록한 꽃들이 피어있는 거다. 한쪽에선 쓰레기 태우는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아이러니컬하다는 느낌에 가까이 다가갔는데, 세상에, 꽃이 아니었다. 다양한 색의 비닐봉지들이었다."

Q : 대형으로 확대한 의도는.
A : "일상의 비 일상화를 노렸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치실과 선풍기이지만, 그걸 우리가 흔히 아는 크기보다 더 확대해서 마주할 때 오는 압도감이 있다."
전시장 한가운데엔 실제 22세기를 가정한 유물 출토 장소도 재현되어 있다. 일회용 플라스틱 테이크아웃 컵부터 타이어까지, 다양한 쓰레기가 출토되어 있다. 김 작가는 "계몽을 하려는 전시가 되지 않도록 굉장히 조심했다"며 "사진으로 사람들을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 즐기면서 스스로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어린이를 위한 친환경 용품 만들기 등 다양한 행사도 마련된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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