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저금리의 유산…겹겹이 쌓인 PF까지 '누란지세' [기업부채 3000조①]

고정삼 2024. 7. 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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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부채 해마다 8.3%씩 증가
최근 5년간 부동산업만 301조↑
경제의 자원 배분 효율성 저해
구조조정 통한 디레버리징 필요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상처로 남아 있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는 과도한 기업부채로부터 촉발된 사태였다. 그런데 현재 국내총생산과 비교한 우리나라 기업들의 부채 비율은 IMF 사태 당시를 웃돌며 연일 역대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기업 10곳 중 4곳은 영업해서 번 돈으로 대출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좀비 상태다. 그 사이 빚에 더욱 관대해진 사회가 됐지만, 그래도 이제는 제동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기업부채 3000조 시대 이면의 불안과 대응 방안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기업 대출 증가 이미지.ⓒ연합뉴스

국내 기업들이 짊어진 빚만 3000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금리 시기 수익성이 높았던 부동산업에 자금이 대거 몰렸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한 기업들의 대출 수요가 확대되면서다.

문제는 생산성이 낮은 부동산업에 신용 공급이 집중되면서 경제 전반의 자원 배분 효율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부실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해 부채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금융업을 제외한 국내 기업들의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2734조원으로 전년 대비 117조원(4.5%) 늘었다. 기업부채가 본격적으로 불어나기 시작한 2017년 말(1699조원)과 비교하면 1036조원(50.7%) 급증한 수준이다.

기업부채의 증가 속도도 가팔랐다. 2010~2017년까지만 해도 기업부채의 연평균 증가율은 4.3% 수준이었다. 하지만 2018~2023년에는 8.3%로 뛰면서 명목성장률(3.4%)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높아졌다. 특히 2022년 3분기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12.2%까지 상승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이하 기업부채 레버리지)은 지난해 말 기준 122.3%로 2017년 말(92.5%)보다 29.8%포인트(p)나 뛰었다.

우선 부동산 시장이 활황을 보인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터 관련 PF 대출이 크게 늘어난 영향이 컸다. 수년간 저금리 상황이 이어지면서 수익성이 높았던 부동산을 중심으로 투자·개발 수요가 확대됐기 때문이다. 이 시기 부동산 PF의 위험은 상대적으로 과소평가됐다. 특히 비은행권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PF 익스포저(위험 노출액)를 확대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금융권의 수익 추구 행태가 기업부채 증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실제 금융권의 부동산업 관련 대출 잔액은 2018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301조원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기업부채 증가 규모의 29%에 달한다. 이에 따라 명목 GDP 대비 부동산업 대출 잔액 비율도 지난해 말 24.1%로 2017년 말(13.1%)보다 11.0%p 상승했다.

코로나19 발발 이후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주요국들이 통화긴축에 나서면서 금리가 가파르게 치솟기 시작한 점도 기업부채 증가의 영향을 줬다. 한은도 지난 2021년 8월 0.50%였던 기준금리를 지난해 1월까지 10차례 연속 인상해 3.50%로 급격히 끌어올렸다.

경제가 급격히 냉각되면서 기업들은 매출을 일으키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금융비용마저 치솟으면서 경영난이 가중됐다. 이에 운영자금을 확보하려는 기업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은행권의 기업대출 잔액은 올 1분기 말 기준 1331조4653억원으로 코로나19 발발 이듬해인 2021년 같은 기간보다 287조2870억원(27.5%) 증가했다.

문제는 생산성이 떨어지는 부동산업을 중심으로 기업부채가 급증했다는 점이다. 이 경우 자본의 부가가치 창출 효과와 신용 배분의 효율성이 저하될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실제 업종별 GDP 대비 대출 공급 비중을 나타내는 대출집중도를 보면 부동산업의 대출집중도가 다른 업종을 크게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업의 대출집중도는 3.67로 모든 산업 중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대출집중도가 1보다 클수록 해당 업종의 GDP 대비 대출 비중이 과도함을 의미한다. 부동산업의 뒤를 잇고 있는 ▲섬유및가죽(1.94) ▲도소매(1.94) ▲숙박및음식점(1.75) 등과 비교해도 차이가 크다.

글로벌 주요국들과 비교하면 차이가 더욱 확연해진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 부동산업 대출의 연평균 증가율은 15% 내외로, 유로·호주·미국·영국 등의 글로벌 주요국( 5~10%)보다 높은 수준을 지속했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관련 기업부채 레버리지는 2022년 말 24.0%까지 치솟았는데, 이는 ▲유로지역(14.7%) ▲호주(12.0%) ▲미국(11.3%) ▲영국(8.7%) 등을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한은은 이와 관련해 "부실 우려가 높은 부동산 PF 대출 등에 대한 질서 있는 구조조정을 통해 부채의 점진적인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을 유도하는 정책 기조를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며 "특히 향후 국내외 통화정책 기조 전환 과정에서 금융기관의 신용 공급이 부동산 부문으로 재차 집중되지 않고, 생산적인 부문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거시건전성 정책으로 적절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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