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종 사건' 변호해도 55만원이 끝…미국은 '시간당 13만원'
형사 법정에 피고인을 대리하는 변호인을 두게 한 건 15~17세기 영국 법정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당시 재판이 고문과 억압적 진술 강요로 악명이 높았던 탓에 법률가들끼리 시시비비를 다투자는 ‘당사자주의’가 태동했다. 18세기 미국이 수정헌법에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6조)를 기본권으로 명시하면서 형사법정의 변호인은 자리를 잡았다.
국선변호인은 이런 기본권 보장의 토양 안에서 생겨난 제도다. 한국도 1948년 헌법을 제정하며 변호인 조력권을 명시했다. 국선변호인 제도가 정식으로 생긴 건 1962년 제5차 개헌을 통해서다. “형사피고인이 스스로 변호인을 구할 수 없을 때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가 변호인을 붙인다”(헌법 12조)는 규정이 이때 등장했다.
재판을 받는 피고인에 국한됐던 국선변호인 제도는 적용 범위도 점차 넓어졌다. 2012년에는 피해자의 법률적 지원을 맡는 ‘피해자 전담 국선변호사’ 제도가 생겼다. 2017년부터는 피의자가 체포·구속심사를 받을 때부터 국선변호인을 선정하고, 1심 재판까지 맡게 하는 ‘논스톱 국선변호인 제도’도 시행됐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국선변호인 예산이 위축되면서 이들에 대한 보수도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국선 전담변호사의 보수는 2006년 이후 18년째 월 기본 600만원(최초위촉)을 유지하고 있다. 국선 변호만 전담하는 변호사들이 월 평균 20건 안팎의 사건을 맡는 걸 감안하면 건당 약 31만원을 받는 셈이다. 사선과 국선을 함께 수임하는 일반 국선변호인은 건당 55만원을 받는다.
사건 종류와 무관하게 고정된 보수를 지급하는 점도 문제로 지목된다. 피고인이 일찌감치 자백하는 사건도, 무죄를 다퉈야 하는 사건도 국선 전담변호인이 받는 돈은 같다. 국선 일반변호사의 경우 증빙서류를 첨부해 법원에 보수증액신청서를 내면 수당을 더 받을 수 있긴 하지만, 절차가 번거롭고 신청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신청률은 50%에 그친다.
강력범죄와 같은 기피 사건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8월 서울 관악산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최윤종은 1심과 2심 변호인이 모두 국선이었다. 1심 변호인은 국선 전담변호사라 별도의 건당 보수를 받지 않았다. 일반 국선변호인이었던 2심 변호인은 증액 신청을 하지 않을 경우 기본 55만원을 받는다.
반면에 해외에서는 죄의 경중에 따라 보수를 차등 지급하고 있다. 미국은 가석방 없이 종신형이 예상되는 중죄를 맡는 국선변호인은 시간당 100달러(약 13만원)을 받는다. 영국은 경죄는 사건당 248~471파운드(약 38만~73만원), 중죄는 투입시간을 고려해 약 수백만원을 지급한다. 일본은 형사 단독 사건의 경우 약 70만~82만원, 통상 합의사건은 90만~92만원, 중대합의사건은 약 103만원을 지급한다.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충분한 노동의 대가를 주지 못하면 변론의 질적 저하를 초래하는 것은 분명하고, 피해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 볼 수밖에 없다”며 “모든 국민이 재판을 공정하게 받을 권리,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충분히 누릴 수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희균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보수 현실화가 되지 않으면 나중에는 최소한의 양식만 맞춘 명목뿐인 국선변호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연·최서인 기자 choi.seo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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