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이 사진, 美대선 흔들다…피격 이후 "당선 가능성 70%"
"탕 탕 탕"
13일(현지시간) 오후 6시 15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진행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야외 유세장. 트럼프가 불법 이민 문제를 거론하며 “(국경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번 보라”며 고개를 돌린 찰나 여러 발의 총성이 연이어 울렸다. 연단 밑으로 몸을 숨긴 트럼프의 오른쪽 귀에선 피가 흘러내렸고 청중의 비명 속에 행사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무대 위로 뛰어오른 비밀경호국 요원들에 둘러싸인 트럼프는 대피하기 직전 “잠깐만”이라는 외침과 함께 고개를 내밀더니 주먹을 불끈 쥐어 들어 보이며 “싸우자(Fight)”고 세 차례 외쳤다. 건재를 알리는 동시에 지지자들의 ‘전투 의지’를 북돋우는 메시지였다. 유세장의 지지자들은 “유에스에이(USA)”를 연호하며 격하게 호응했다.
연설 무대에서 120m 떨어진 공장 옥상에서 총을 쏜 범인은 비밀경호국 요원들에 의해 사살됐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총격범이 펜실베이니아 출신 20세 백인 남성이라고 발표했고, 워싱턴포스트(WP 등은 토머스 매튜 크룩스란 이름의 이 용의자가 공화당 등록당원이라고 전했다. FBI는 이번 사건을 ‘트럼프에 대한 암살 시도’라고 규정하며 “범행 동기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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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 큰 충격…“두쪽 난 정치 현주소”
유력 대선 후보이자 전직 대통령을 겨냥한 이번 암살 시도에 미국은 충격에 휩싸였다.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의 소속 정당은 물론 민주당과 조 바이든 대통령도 ‘정치 폭력’을 강한 어조로 규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사건 직후 긴급 대국민 연설을 통해 “그(트럼프)가 무사해 다행”이라며 “미국에서 이런 종류의 폭력이 설 자리는 없다. 역겹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하킴 제프리스 하원 원내대표는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라며 “어떤 종류의 정치 폭력도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정치 담론이 ‘정치 폭력’으로 변질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상황에까지 이른 미국의 현주소를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데니스 해스터트 전 하원의장 보좌관 출신으로 공화당 사정에 밝은 존 러셀 DGA(종합컨설팅기업) 파트너는 중앙일보에 “극과 극으로 두 쪽이 난 미국 정치 시스템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며 “정치라는 거대 담론의 장에 발생한 유혈 사태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예상했던 ‘정치적 건전성’이 여지없이 파괴됐음을 말해주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경위ㆍ배후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지만,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증오ㆍ혐오ㆍ분열의 정치’가 방아쇠를 당겼을 거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스테판 슈미트 아이오와주립대 명예교수(정치학)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정치적 분열이 깊고 대립과 양극화가 심할 때 폭력 발생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민주주의 기반을 흔든다”며 “이번 대선 레이스에서 벌어지는 폭력적인 진흙탕 싸움이 총격범의 범행 동기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분노의 시대…가장 위험한 시기”
조너선 털리 조지워싱턴대 교수도 정치전문매체 더힐의 기고문을 통해 “지난 몇 달간 정치인과 언론, 평론가들은 상대 진영에 대해 거친 말들을 쏟아냈고 분노로 이성을 잃은 사람들은 이런 정치적 수사에 정당성을 찾기도 한다”며 “우리는 ‘분노의 시대’에 살고 있고 지금이 역사상 가장 위험한 시기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정치 양극화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마상윤 국제정치학회장(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정치적 양극화는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 흐름이 되고 있는데 특히 미국이 더욱 두드러진다”며 “단순 분열을 넘어 증오ㆍ분노의 정서와 연결되고 이번과 같은 정치 테러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고 짚었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혐오와 분노를 이용해 지지율을 끌어올렸던 트럼프가 분열의 정치의 피해자가 돼 버린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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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판 요동…공화당 “바이든 심판해야”
대선 후보를 공식 확정하는 밀워키 공화당 전당대회를 이틀 앞두고 터진 이번 피격 사건은 대선 판도를 뒤흔들 대형 변수가 될 전망이다. 사건 직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한 트럼프는 지지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난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I WILL NEVER SURRENDER!)”이라며 지지층의 선거 캠페인 참여를 독려했다.
공화당 인사들과 트럼프 캠프는 피를 흘린 채 주먹을 불끈 쥔 트럼프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며 지지층 결집을 시도했다. 또한 지난 8일 “트럼프를 과녁 중앙에 놔야 할 때”라고 발언한 바이든 대통령을 겨냥해 “바이든을 투표로 심판해야 한다”(크리스 라시비타 트럼프 대선 캠프 공동선대위원장), “바이든을 암살 선동 혐의로 기소해야 한다”(마이클 콜린스 공화당 하원의원)는 주장도 나왔다.
주요 외신과 정치 전문가 사이에선 이번 암살 미수 사건이 트럼프의 지지층 결집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CNN은 “지지자들에 의해 정복할 수 없는 영웅으로 여겨져 왔던 트럼프는 유세장에서 초자연적인 숭배 대상이었다”며 “적으로부터 계속 공격을 받는 그의 전사 이미지는 보다 강고해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에게 ‘피해자’, ‘순교자’란 이미지가 덧붙여지면서 지지층이 한층 적극적으로 투표할 뿐 아니라 중도ㆍ관망층 유권자 중 일부가 트럼프로 마음을 굳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는 이번 공격에서 살아남았다. 그는 방금 선거에서 승리했다”(데릭 반 오든 하원의원) 등의 발언을 전하면서 이번 피격 사건으로 공화당 내에선 ‘이미 선거에서 이겼다’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미국의 이벤트 베팅 사이트 ‘폴리마켓’에서는 트럼프 대선 승리 가능성이 70%로 전날보다 10%포인트 올랐다. 바이든 대통령 승리 확률은 16%에 그쳤다.
이날 공화당은 총격 사건에도 불구, 이틀 앞으로 다가온 전당대회를 예정대로 개최한다고 밝혔다. 지지자들 입장에선 검찰 기소, 암살 미수 등 크고작은 고난을 극복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마침내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되는 ‘승리의 순간’으로 인식될 수 있다.
폴리티코 “공화당 대선 승리 분위기”
대선 후보의 건강 이슈와 결합할 경우 후보 교체론에 시달리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불리한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존 러셀 파트너는 “후보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바이든이 버티는 명분 중 하나가 자신과 같은 경륜 있는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는데 이번 사건으로 오히려 미국 사회 통합을 위해 새 판을 짤 수 있는 젊은 정치인이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커져 후보 사퇴 여론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대선에 미칠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예상도 있다. 서정건 교수는 “이미 미 유권자의 90% 가까이는 지지 후보를 마음속으로 굳힌 상태이고 약 10%의 중도층 유권자는 ‘비호감 후보 대결’ 구도에서 투표 의향이 낮은 유권자들인데 이들이 트럼프 피격 사건으로 트럼프를 찍는 쪽으로 돌아설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치 전략가 데이비드 액설로드는 더힐에 “처음부터 매우 격렬한 선거였다. 이제는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하기 어려워졌다”며 “그래도 곧 있을 공화당 전당대회에 트럼프가 참석하면 일종의 순교자처럼 대환영을 받을 게 분명하다”고 예상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장윤서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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