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최저임금 1만원 시대…결정 방식 이젠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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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갈등에 흥정하듯 인상 폭 정하는 구태 반복
전문가 의견 충분히 듣고 정부가 책임있게 결정을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9860원)보다 170원(1.7%) 오른 1만30원으로 결정됐다. 1988년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된 지 37년 만에 최저임금 1만원 시대가 열렸다. 이번 인상률 1.7%는 2021년의 1.5%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낮다. 노동계는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최저임금 인상률에 “사실상 실질임금 삭감”이라고 비판했다. 경영계는 올해에도 최저임금 차등적용이 불발된 데에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문재인 정부 때 최저임금 과속의 후유증이 여전하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전체 산업의 명목임금은 17.2%, 물가는 12.6% 올랐는데 최저임금은 27.8% 올랐다. 실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져야 하는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은 강하게 반발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임금 지불 주체인 소상공인의 현실을 외면한 무책임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중소기업중앙회도 “현재의 높은 최저임금은 준수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했다. 괜한 엄살이 아니다. 지난해 최저임금마저 받지 못한 근로자는 301만 명으로 전체 임금 근로자의 13.7%다.
최저임금은 실업급여와 산업재해 보상금 등 다양한 복지제도와 연관돼 있다. 이렇게 중요한 정부 복지정책의 기준점인데, 그 결정 과정은 주먹구구식이다. 노사 위원들이 샅바 싸움을 벌이고 흥정하듯 인상 폭을 정하거나 정부가 임명하는 공익위원들이 주도해 중간쯤에서 타협하는 일이 반복된다. 데이터를 근거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꼼꼼하게 따지지도 못한다. 오죽했으면 최저임금 결정을 마친 이인재 최저임금위원장조차 지금의 결정 시스템은 합리적·생산적 논의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을까.
최저임금 결정 방식을 바꾸자는 논의가 나온 지는 오래됐다. 문재인 정부도 2019년 최저임금위원회를 전문가만 참여하는 구간설정위원회와 노사와 공익위원이 참여하는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노동계의 반발로 진전을 보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전문가와 노사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정부가 책임 있게 결정하는 구조가 바람직하다고 제안한다. 최저임금위원장도 2018년 비슷한 취지의 논문을 썼다. 정부가 뒤로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입맛에 맞는 공익위원 임명을 통해 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책임 있는 정부라면 투명하고 지속가능하며 예측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노동계도 최저임금 인상에만 매달리지는 말아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이 노동 수요를 줄이고 결국 자영업자와 이들이 고용하는 을(乙)들의 갈등만 키운다는 지적을 외면해선 안 된다. 저소득 가구의 소득 증대와 분배 개선을 위한 제도로는 최저임금만 있는 게 아니라 근로장려세제(EITC)도 있다. 늘 더 좋은 대안을 찾는 노력에 노동계도 함께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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