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국어 실력, 문해력과 독해력

2024. 7. 15.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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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우천 시' 표현이 촉발한 논쟁
한자어 지양 vs 한자교육 확대
문해력·독해력의 문제가
엉뚱하게 한자 문제로 비화

표현이 풍부할수록 고급 언어
한자어로 우리말 표현 풍부해져
순우리말도, 한자어도 '국어'
이 둘을 자꾸 분리하지 말자

최근 ‘우천 시’ 때문에 온라인이 자못 떠들썩했다. 야외 활동 건으로 학교에서 가정통신문을 보냈는데, 우천 시 모일 장소를 안내하는 문구를 읽고 한 학부모가 ‘우천시’가 어디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요즘엔 검색 한 번만 하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건만, 굳이 교사에게 물어본 그 학부모가 일단 경솔했다. 그저 해프닝으로 끝날 일이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한자 교육 찬반 논쟁으로 비화하였다. 어렵거나 한글로 대체할 수 있는 한자어는 지양하자는 주장과 이참에 한자 교육을 강화하자는 견해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둘 다 사안의 본질에서 적잖이 벗어났다. 어떤 동일 대상을 같은 의미의 한글(vernacular Korean)과 한자어(Sino-Korean) 두 가지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한국어의 복일지언정 화는 아니다. 오래 쓰던 말인데도 단지 한자어라는 이유만으로 그 단어를 폐기할 이유는 없다. ‘비가 오면’과 ‘우천 시’ 가운데 양자택일할 사안도 아니다. 표현은 풍부할수록 좋고, 그럴수록 고급 언어다.

한자 교육을 강화하자는 주장도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서구 중등학교에서도 라틴어를 필수로 강제하지는 않는다. 알면 당연히 큰 도움이 되겠지만 필수일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도 ‘우천시’가 어디에 있는 도시냐고 물어본 학부모의 문제는 한자 능력과는 무관하다. 단어(words)와 표현(expressions)은 언어생활을 통해 습득한다. 독서도 그 한 과정이지만, 언어 습득은 독서 없이도 충분히 가능하다. 또한 라틴어를 몰라도 한자를 몰라도 고급 수준의 영어와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

어떤 글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문해력을 갖춰야 하며, 그다음에는 독해력이다. 해당 학부모는 둘 다 부족해 보인다. 문해력(literacy)은 말 그대로 텍스트 내용을 이해하고, 자기 생각을 글로 나타낼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려면 단어와 표현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 학부모가 ‘우천 시’라는 표현을 정말 몰랐다면 그것은 지금껏 그 표현을 별로 듣거나 보지 못했음을 뜻한다. 어휘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그렇게 된 이유는 그 학부모의 국어 실력 문제이지 한자 교육 여부와의 상관성은 약하다.

독해력(reading comprehension)은 읽은 내용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분석하고 나름대로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이른다. 따라서 문해력이 떨어지면 독해력은 말할 것도 없다. 중등교육 과정에서 학생이 국어는 곧잘 하면서도 영어를 못하는 사례가 적잖다. 언어를 다루는 지적 능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영어 성적이 안 좋은 이유는 영어라는 언어를 구성하는 기본 단어와 표현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영어 문해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영문 독해 문제를 잘 풀 수도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영어 학습을 별로 안 했기 때문이다.

굳이 교육을 논하려면 한문보다는 국어 교육 문제를 살필 필요가 있다. 내 경험이지만, 1970년대 후반만 해도 고등학교 문과에서는 국어 시간이 가장 많았다. 국어 교과서 4시간, 문법 2시간, 작문 2시간, 한문 2시간, 한문II 2시간, 고전 2시간이었다. 물론 한 학기에 문법과 작문을, 한문I과 한문II를 동시에 수강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국어 관련 주간 수업시수가 근 10시간이었다.

요즘 대학생에게 글쓰기 실력의 심각성을 얘기하며, 국어 문법이나 작문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놀랍게도 그런 수업 시간은 아예 없다는 답이 많았다. 가뜩이나 독서량이 급감하고 SNS에 익숙한 요즘 세대의 문해력과 독해력이 예전 같지 않은 현실은 차라리 당연하겠다.

그렇다고 난리법석을 떨면서 다 같이 걱정할 일도 아니다. 학생 개개인의 학습 욕구 역시 큰 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예전에 어떤 학생이 3·1운동을 ‘3점1’로 읽었다고 하여 국사 교육을 강화하자며 떠들썩하다가 은근슬쩍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움직임으로 넘어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예나 지금이나 공부 안 하는 학생은 있게 마련이다. 어휘력이 부족한 탓에 ‘우천 시’의 의미를 몰랐을지라도 문맥을 통해 유추하지도 못했다면 그것은 본인의 문제다. 그래도 어떻게든 교육을 통해 개선하기를 원한다면 국어 교육이 우선이다. 단 ‘순우리말’도 국어이고, 이미 우리 말이 된 ‘한자어’도 국어다. 그 둘을 자꾸 분리하지 말자.

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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