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코리아] 실손보험 개혁 없는 의료 개혁은 실패한다

2024. 7. 15.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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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식 건국대 명예교수·조지아주립대 객원교수·리셋 코리아 자문위원

파행을 겪는 의대 증원을 포함한 의료 개혁과 관련해 실손(의료)보험이 의료시장 왜곡의 주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1999년 출시 이후 매년 가입자가 증가해 현재 4000만명이 가입한 실손보험은 의료 보장의 필수품이 될 정도다. 이를 통한 의료 남용이 만연해 한국은 의료 중독 국가라 할 정도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4월 16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열린 '시니어의사 지원센터 개소식'에 참석하고 의료계 주요 인사들과 지역·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정책 간담회를 했다. 연합뉴스

이는 국민의식 속에 의료보장시스템이 공공과 민간의 조합으로 정착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제는 실손보험을 제도권 밖의 제도로 볼 것이 아니라 의료시스템 일부로 흡수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 없이 당면한 의료 인력 편중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비급여가 많고 어떤 환자가 와도 수익이 보장되는 진료 과목으로 의사들이 쏠림에 따라 필수의료와 지방 의료 담당 의사들은 크게 줄 수밖에 없었다.

「 의료시장 왜곡 요인 된 실손보험
팔수록 손실, 다른 상품 팔아 메워
교차 보조 규제 등 정상화 필요

일러스트=김지윤

실손보험은 금융위원회가 2009년 표준화로 세 차례에 걸쳐 규정을 변경하며 감독 규정을 강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1분기 손해율은 4세대 보험에서만 134.5%로 나타나는 등 큰 폭의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실손보험 보험료가 매년 인상됐고 내년에도 10% 이상 대폭 인상되는데도 가입자는 줄지 않을 것 같다.

실손보험은 시장에서 상품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결함을 가지고 있다. 손해율이 130%나 되니 누구든 내는 돈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을 보험사의 경영 관점에서 보면 실손보험 손실을 어떻게든 메꾸어야 하므로 암묵적으로 다른 상품의 가입자들에게 바가지를 씌우고 있다. 다른 상품의 이익으로 실손보험의 손실을 메꾸는 교차 보조가 일반화됐다.

교차 보조의 일반화는 대형 보험사에 유리하다. 대형 보험사는 모든 상품의 수지를 통합 관리하면서 실손보험을 미끼 상품으로 활용한다. 그래서 2023년 기준 31개 보험사 중 14개 중소 보험사(손해보험사 3개, 생명보험사 11개)는 판매를 포기했다. 앞으로 지금과 같이 실손보험 시장이 더 확대되면 판매를 포기하는 보험사는 오히려 더 늘어날 것이다. 교차 보조는 사실상 진입장벽이 돼 실손보험이 보험산업을 독과점 체제로 왜곡시키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실손보험 적자를 현재와 같이 방치하는 것은 정부가 불공정 행위를 용인하는 것이다.

서남규 건강보험공단 비급여관리실장이 6월 19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융합관에서 '한국 의료 제도 속 비급여, 실손보험'을 주제로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발표했다. 연합뉴스

손해율이 100% 이상인 상황이 지속하면서 실손보험료가 인상되고 있음에도 가입자는 더 증가하고 의사들은 더 비보험이 많은 전문과목에 쏠리면서 의료시스템은 급속히 왜곡될 것이다. 정부도 이러한 왜곡을 조장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건강보험 급여에 대해 원가 보전을 하지 않으면서 이에 따른 손실을 실손보험으로 보상하도록 허용해 왔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이 확대되면 될수록 의사들의 실손보험 유혹은 더 커질 수밖에 없고 필수 및 지방 의료는 공동화될 것이다.

이를 바로잡으려면 먼저 보험사에서 다른 보험상품을 통한 실손보험 교차 보조를 규제해야 한다. 실손보험 상품의 회계를 공개하도록 하고 일정 기준 이하의 손해율에 대해서는 판매를 규제해야 한다. 실손보험 상품 회계를 독립시키는 것은 실손보험 혹은 민영 의료보험 전문 회사의 진입과 시장 경쟁력을 높일 것이다. 보험회사 간 건전한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

둘째, 건강보험의 본인 부담금에 대비한 실손보험과 비급여 진료비에 대비한 실손보험을 물리적으로 분리해야 한다. 그리고 가입자들이 둘 중 하나 혹은 두 개의 보험에 모두 가입할지를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건강보험의 본인 부담금은 건강보험공단 통제를 받는 의료 수요에 따른 리스크이지만, 비급여 진료비는 개인 선택에 의한 것이어서 통제받지 않는 리스크이다. 비급여에 대비한 리스크에 대해선 보험사들이 다양한 상품을 만들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셋째, 민영 의료보험이 가입자들의 건강 리스크를 줄이도록 유도하는 상품 개발이 시급하다. 건강 리스크를 줄이기 위하여 기업이 다양한 건강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건강한 가입자에 대한 보험료 감액 등 마일리지 혜택도 가능하게 해야 한다. 아울러 국회에서 10년 이상 미루어진 보험사의 건강관리서비스업도 허용해야 한다. 실손보험 시장 정상화는 의료체계 효율화뿐 아니라 국민 의료와 건강 보장에 기여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원식 건국대 명예교수·조지아주립대 객원교수·리셋 코리아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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