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누리호’와 ‘대왕고래’
유독 동해 석유엔 정치 공세
정치권 입맛이 과학 주물러
‘자원 빈국’.
한국을 지칭할 때면 으레 따라붙는 수식어다. 이 수식어마냥 자원이 없으니 대신 제조업을 육성했고, 그 결과 한강의 기적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결과적으로는 한국을 경제 강국으로 만들었으니 다행이다. 그래도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자원안보 위기에 취약한 경제 구조가 그대로인 탓이다.
그런데 최근 떼려야 뗄 수 없을 듯했던 이 꼬리표를 잘라낼 가능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부가 지난달 3일 발표한 최대 140억 배럴 규모의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 덕분이다.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세계 15위 수준의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다니 쉽사리 믿기가 힘들다. 확인할 방법은 가능성을 검증한 비토르 아브레우 액트지오 고문 말대로 뚫어보는 방법뿐이다. 연말이면 일명 ‘대왕고래’로 명명된 석유 시추 탐사 프로젝트의 첫 구획 시추 작업에 돌입한다.
의아한 점은 이 발표를 바라보는 외부 시선이 지나칠 정도로 냉랭하다는 부분이다. 한 번 시추를 할 때마다 약 1000억원이 소요되는 점이 문제로 떠올랐다. 국민이 낸 세금을 종잣돈 삼아 함부로 이런 큰 일을 벌여도 되냐는 지적이다. 지적처럼 중대사인 만큼 철저한 검증은 필요한 일일 터다. 다만 검증의 잣대에는 ‘과학적’이라는 전제가 달려 있어야 한다. 발표 이후 40일가량 지났지만 과학적인 측면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보다는 야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공세가 더 두드러진다. 대왕고래는 어느새 천덕꾸러기가 됐다.
한국이 자체 기술로 만든 첫 우주 발사체인 ‘누리호’ 사정과 사뭇 비교된다. 14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프로젝트가 시작된 2010년부터 올해까지 누리호 개발·발사에 투입된 예산은 2조3100억원에 달한다. 대왕고래 시추 비용의 23배 수준이다. 이런 돈이 투입된 누리호 역시 승승장구한 것만은 아니다. 누리호는 2021년 10월 1차 발사에서 엔진에 문제가 생기며 실패로 끝맺었다. 그렇다고 비난의 목소리가 들끓지는 않았다. 되레 응원의 목소리에 힘입으며 2022년 6월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누리호는 미국 아폴로 14호마냥 한국의 영웅이 됐다.
두 가지 프로젝트가 비슷한 전력을 지닌 점은 대왕고래를 향한 차가운 시선을 더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누리호는 5025억원을 들인 나로호 발사 성공에 힘입어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다. 나로호도 두 번이나 실패했지만 뚝심으로 세 번째 발사에 성공한 사례다. 대왕고래의 경우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성공 사례는 ‘동해가스전’이다. 동해가스전은 24번의 지난한 시추 끝에 결실을 맺었다. 2004년부터 2021년까지 ‘동해-1’과 ‘동해-2’ 가스전에서 가스와 경질유를 캐냈다.
차이점은 성공이 가져다주는 결과물 정도다. 나로호와 누리호의 성공은 우주 관련 기술 진보에 역할을 했다. 괄목할 만한 성과지만 투입한 예산의 원 주인인 국민 입장에선 체감도가 낮다는 게 흠이다. 반면 성공한 동해가스전 개발은 우리가 쓰는 전기와 가스로 공급됐다. 수입 대체 효과는 2조6000억원으로, 투자 비용(1조2000억원)을 뛰어넘는다. 대왕고래 역시 성공만 한다면 체감 가능한 경제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배경에도 대왕고래를 곱지 않게 보는 시선이 큰 이유로 혹자는 주무 부처 장관 대신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점을 꼽는다. 다만 이 역시도 단순히 대통령 발표만 문제삼기는 어렵다는 판단이다. 실패한 누리호 첫 발사 당시 현직이던 문재인 대통령도 전면에 나섰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결국 문제는 대통령 인기도가 평가를 갈랐다는 결론으로 귀결되는 듯하다. 인기 없는 대통령이 발표하다보니 대왕고래도 비난 대상으로 엮였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야당의 시추 예산 삭감 예고에서도 엿보인다. 다만 그게 국익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과학자들이 정치권 입맛에 맞는 프로젝트만 해야 하는 건가. 누리호는 되고 대왕고래는 안 된다는 생각에 반대한다.
신준섭 경제부 차장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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