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섭의 이코노믹스] 주식회사제도 원칙과 현실 무시한 ‘주주 포퓰리즘’ 안 돼
‘주주 충실의무’ 담으려는 상법 개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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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식회사는 소유와 통제를 분리
유한책임 가능해져 경영에 집중
이사회, 법인 최고 의사결정기구
경영 대부분에 대한 결정권 가져
경영 책임에서 벗어나 있는 주주
이사 선·해임권으로 기업 통제해
」
기업은 법인이 소유, 주주는 통제권
주식회사 제도를 이해하는 첫걸음은 소유와 통제가 처음부터 분리돼 있다는 사실이다. 창업자는 자신이 갖고 있던 사업 관련 자산을 법인 소유로 넘기고 대신 법인이 발행한 주식을 받는다. 이에 따라 법인이 기업의 소유자가 되고 창업자들은 주주(株主), 즉 ‘주식의 주인’으로 변모한다. 주주는 기업에 대해 소유권이 없는 대신 주식에 딸린 이사 선임과 해임권 등을 통해 기업을 통제한다.
소유와 통제를 이렇게 분리하는 것은 기업 경영에 대해 주주는 유한책임을 지고 법인이 무한책임을 져서 자금 조달과 장기 투자가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유한책임 덕분에 주주는 기업이 잘못되더라도 보유 주식만큼만 손해를 보고 다른 재산을 뺏기는 일을 막을 수 있어 창업이나 증자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된다. 법인은 주주가 사망하거나 파산하는 등의 문제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에서 보호받고 경영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금융기관도 법인의 사업성만 살펴서 장기 자금을 공급할 수 있다.
법인을 통한 장기 투자는 자본주의가 빠르게 생산력을 확대할 수 있었던 기반이었다. 미국의 사상가 니콜라스 버틀러는 주식회사를 “현대에 가장 위대한 단 하나의 발견”이라며, 산업혁명의 총아로 얘기되는 증기 기관이나 전기 등의 기술적 성취도 주식회사 없이는 ‘상대적 발기부전’에 빠졌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주총, 이사회 결정 번복 불가
만약 소유와 통제가 분리되지 않았다면 기업 경영의 목적은 간단하다. 소유주를 위해 경영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소유와 통제가 분리됐기 때문에 누구를 위해 경영하는지가 복잡해진다. 자본주의 초기 주식회사가 만들어지던 때는 ‘유한 책임’이 정부가 주는 특권이기 때문에 공익을 함께 추구하는 사업자에게만 제한적으로 허용됐다. 당시 가장 성공한 주식회사였던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제국주의 확장이라는 영국의 공익에 발맞춰 사업을 벌였다. 네덜란드와 프랑스 동인도회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이후 신고만으로 주식회사를 자유롭게 설립하게 되면서 주주만을 위해 경영해야 한다는 사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 기업사냥꾼이 등장하고 기관투자자의 입김이 세지면서 ‘주주가치론(Shareholder value view)’은 대폭 강화됐다. 한편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해관계자론(Stakeholder view)’이 등장하면서 경영 목적에 공익이 포함돼야 한다는 조류도 이어졌다. 지금 많은 기업이 받아들이고 있는 ESG 경영도 이해관계자론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경영의 목적에 대해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지만, 경영의 방법은 법적으로 확립돼 있다. 법인이 경영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기 때문에 법인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가 경영에 대해 거의 모든 결정권을 갖는다. 주식회사 제도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흔히 주주총회(주총)가 기업의 최상위 기구이고 이사회가 주총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총은 기업 경영의 외곽에서 이사 선임과 해임 승인권, 합병·매각·해산 승인권, 정관 개정 승인권 등의 일부 기능만 갖고 있을 뿐이다.
미국에서는 20세기 초부터 이사회 권한을 ‘어디에서 나온다고 입증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든지, ‘태생적이고 위임받지 않은 것’이라고 확립했다. 한국의 경우도 ‘이사회는 법령 또는 정관에 의하여 주주총회의 권한으로 돼 있는 사항을 제외하고는 회사의 모든 업무 집행에 관하여 의사 결정을 할 권한을 가진다’고 돼 있다. 또 ‘이사회는 고유 권한을 가진 주식회사의 독립된 기관이므로 그 권한에 의하여 결의한 사항에 대하여는 주주총회의 결의로 번복하거나 무효화할 수 없다’고 대법원 판례로 확립돼 있다. 만약 주총이 최상위라면 이사회 결정을 번복하거나 무효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사회가 최상위 기관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는 것이다.
폭넓게 인정되는 이사회 재량권
이사회는 이렇게 경영 방법에 대해 거의 전권(全權)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경영 목적에 대해서도 폭넓은 재량권을 갖게 된다. 이 사실을 확립한 판례가 미국 델라웨어 법원이 1989년에 내놓은 ‘패러마운트 대 타임’ 판결이다. 델라웨어 법원은 기업 관련 신뢰 받는 판결을 내놓아 미국 대기업 절반 이상이 법적 본사를 델라웨어에 두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와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이사의 ‘신의성실 의무(fiduciary duty)’ 대상으로 회사만 명시하고 있는 데 비해 델라웨어만 거의 유일하게 ‘주주들’을 따로 포함해 주주 가치론적 성향도 보인다.
하지만 주주에 대한 신의성실의무를 확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초기 주주가 만들어 놓은 창업 정신 같은 것은 아무 의미 없고 현재 주주의 생각만 중요한 것인지, 주주끼리 의견이 엇갈릴 때 누구 의견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등이 정해져 있지 않다. ‘패러마운트 대 타임’ 판결은 이 문제의 핵심을 다룬 것이었다. 타임은 당시 워너 브러더스와 합병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패러마운트가 끼어들어 워너 브러더스보다 거의 3배의 금액을 제시했다. 타임 이사회는 ‘타임 문화(Time culture)’를 유지하는데 워너 브러더스와의 합병이 바람직하다며 패러마운트의 제안을 거절했다. 패러마운트사와 타임의 소수 주주가 타임 이사진을 배임으로 제소했다.
델라웨어 대법원은 타임 이사진의 손을 들어줬다. 이사회에 “기업이 어떤 방향으로 행동을 취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한이 포함되어 있다”며 기업 문화 등 기존의 장기 경영 방향이 있다면 합병 후에도 그것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이사회 권한이라고 판시한 것이다. 회사를 현찰 매각해서 주주에게 나뉘는 금액이 명확한 경우에는 최고 가격에 파는 것이 이사회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 ‘레블론(Revlon) 판례’로 확립된 사안이다. 그러나 타임은 워너와의 합병 이후 ‘타임워너’라는 계속 기업으로 남는 것이었다.
‘패러마운트 대 타임’ 판결에 비춰 보면 이사회가 설혹 주주에 대한 신의성실 의무 조항이 있더라도 기업을 통째로 매각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사회가 폭넓게 재량을 발휘한다. 실질적으로 회사에 대한 신의성실 의무와 거의 차이가 없다. 이것은 델라웨어 법이 ‘기업은 정관이나 주법에 의해 정해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적법한 사업이나 목적을 수행할 수 있도록 법인화하거나 조직될 수 있다’라고 규정한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다.
이사회와 주주의 권리·의무를 살펴볼 때 지금 여야가 거의 공감대를 보이며 추진하고 있는 이사회의 ‘주주 충실의무’를 담은 상법 개정안은 주식회사 제도의 세계적 현실과 원리에 대해 무지한 채, 주주 포퓰리즘을 좇아 진행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사회의 신의성실 의무에 ‘주주’를 추가한 곳은 델라웨어가 거의 유일하다. 또 델라웨어에서조차 ‘패러마운트 대 타임’ 판례에서 보듯 경영 목적에 대해서까지 이사회에 광범위한 재량권을 허용한다. 상법개정을 추진하면서 델라웨어 법을 인용하는 것은 아주 예외적이고 그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 사례를 글로벌 스탠다드라며 견강부회(牽强附會)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주가치론 강요하는 상법 개정안
주식회사 설립 원칙에 비춰보면 ‘주주 충실의무’라는 것이 별도로 들어갈 여지가 없다. 이사회는 법인의 최고 의결기관이고 이사는 법인과 계약을 맺기 때문에 회사에 신의성실 의무를 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주주는 계약당사자가 아니고 유한책임을 통해 경영책임에서 벗어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법원은 따라서 ‘이사가 주주가 아니라 회사에 대해 신의성실 의무를 부담한다는 일반원칙은 명백히 옳다’며 주주를 그 대상에서 배제한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기업의 목적은 주주가치론이나 이해관계자론으로 확정되지 않았다. 정부는 이해관계자론에 입각해서 ESG관련 여러 가지 입법도 해왔다. 상법 개정안은 그럼에도 기업 목적을 주주가치론으로 한정해서 강요하는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이다. 설혹 주주에 대해서도 신의성실 의무가 있다는 주주가치론적 입장에 서더라도 그 방법을 상법에서 정하는 것은 주식회사 제도를 부정하는 것이다. 정부조직법이나 공무원법 등을 무시하고 ‘국민 충실의무’라는 조항을 헌법에 넣어야 국민 생활이 좋아진다고 큰소리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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