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사로잡은 '과일의 왕'… 동남아 길들이는 '외교 무기' 되나[이도성의 본 차이나]

이도성 2024. 7. 15.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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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성 베이징 특파원


" "맛있는 두리안 한 번 주문해보세요! 향기롭고 달기까지 해요!" "
지난달 30일 중국 베이징에 있는 농수산물 도매시장 신파디(新發地)의 '국제두리안관'(國際榴蓮館)에서 한 남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리안 판매점이 고용한 온라인 쇼호스트가 네티즌들에게 실시간으로 두리안을 다듬고 포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곁에 있던 동료는 주문자 정보가 붙은 스티커를 연신 플라스틱 용기에 붙이고 있었다.

지난해 9월 중국 최대 규모인 농수산물 시장 신파디 남쪽 구역 싼눙먼(三農門)에 3000㎡ 규모의 국제두리안관이 들어섰다. 현재 40여 개 업체가 입주해 성업 중이다.

지난달 30일 중국 베이징 최대 농산물 도매시장인 신파디(新發地)시장 국제두리안관의 한 두리안 판매점에서 쇼호스트가 중국 소셜미디어를 통해 온라인 생방송으로 두리안을 판매하고 있다. 이도성 특파원
중국 베이징 최대 농산물 도매시장인 신파디(新發地)시장 국제두리안관 입구. 이도성 특파원


두리안 전문 상점을 운영하는 궈위안팅(郭嬡婷)은 쇼호스트 3명을 고용해 더우인(抖音·중국판 틱톡)에서 하루 12시간 정도 생방송을 하고 있다. 그는 기자에게 “거의 모든 상점이 생방송을 하고 있다”면서 “베이징 전역에서 하루 평균 두리안 200개 정도 주문이 들어오는데 인기 있는 다른 상점은 하루에 1000개 넘게 팔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날 신파디에서 500g당 29.9위안(약 5600원)짜리 태국산 두리안을 3㎏를 구입한 대학생 뎨뎨(喋喋)는 “다른 과일도 좋지만 두리안은 잊을 만하면 자꾸 생각난다”면서 “냄새에 거부감이 들지 않고 먹으면 먹을수록 달다”며 기자에게도 시식을 권했다.

중국 베이징 최대 농산물 도매시장인 신파디(新發地)시장 국제두리안관에서 고객들이 두리안을 구입하고 있다. 이도성 특파원

'중국이 두리안에 미쳐가고 있다'

두리안의 매력에 사로잡힌 중국인들이 늘면서 소비량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HSBC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두리안의 91%를 중국인이 소비했다. 럭비공 크기의 열대과일 두리안은 태국·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서 주로 생산된다. 코를 찌르는 냄새에 처음 접하는 사람은 고개를 돌리기도 하나 버터 같은 부드러운 식감과 달콤한 맛으로 인기가 높다. 때문에 '천상의 맛, 지옥의 냄새를 지닌 과일'이라고 불린다. 칼륨·비타민·식이섬유 등 몸에 좋은 영양분도 많아 ‘과일의 왕’으로도 꼽히기도 한다.

지난달 30일 중국 베이징 최대 농산물 도매시장인 신파디(新發地)시장 국제두리안관을 찾은 고객들이 직접 구입한 두리안을 먹고 있다. 이도성 특파원


두리안은 품종에 따라 맛과 가격이 다양하다. 중국 마트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태국산 진전(金枕·Monthong) 품종은 보통 3㎏짜리가 150위안(약 2만 9000원) 정도에 팔린다. '두리안계의 에르메스'라고 꼽히는 최고급 두리안 ‘무산 킹’은 1개당 10만 원을 웃돈다. 중국 소셜미디어엔 19가지 품종을 7개 그룹으로 구분한 등급표까지 돌고 있다.

치솟은 인기는 외식업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두리안을 이용한 아이스크림·케이크는 물론 햄버거까지 출시됐다. 한 피자 프랜차이즈는 각기 다른 품종의 두리안으로 만든 피자 4종을 내놓기도 했다.

중국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두리안 꾸미기’ 게시물. 샤오훙슈 캡처


생일·기념일에 주고받는 고급 선물로도 주목받고 있다. 소셜미디어엔 ‘두리안 꾸미기(DIY·Do-it-yourself)’로 직접 선물 바구니를 만드는 영상이 인기를 끌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중국이 두리안에 미쳐가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국에서 두리안이 고급 와인처럼 ‘지위의 상징’이 되고 있다고 조명했다.


99% 수입 의존, 세계 시장 '싹쓸이'

중국인들이 ‘두리안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자유(榴蓮自由)’를 꿈꾸지만 소비량의 99% 이상을 수입에 의존한다. 중국 관영 매체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자국산 두리안 수확량은 소비량의 0.005%에 그쳤다.

지난달 16일 중국 하이난성 싼야시 한 두리안농장 입구에 두리안 모형물이 설치돼 있다. 농장 안에는 두리안 판매점과 함께 수백 그루의 두리안 나무가 심어져 있다. 이도성 특파원


추위와 습도에 민감한 두리안은 중국에선 최남단 하이난(海南)에서나 재배 가능하다. 지난달 16일 기자가 찾은 하이난성 싼야(三亞)시의 농장에선 수백 그루의 두리안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농장 관계자는 “농장주는 태국인인데, 수확철에만 잠시 올 뿐이고 평소엔 중국인 직원들이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산은 아직 맛으로 동남아산을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다. 싼야시 신훙강(新鴻港) 시장에 청과물업체를 차린 장위(張宇)는 “10년 가까이 과일을 팔았지만 3년 전부터는 두리안만 팔고 있다”며 “동남아산만 취급하고 하이난산은 들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북동부 하얼빈 출신인 장위는 오로지 두리안 사업을 위해 고향과 먼 남서부 하이난까지 건너왔다고 했다.

지난달 16일 중국 하이난성 싼야시 신훙강(新鴻港)농수산물시장에서 가족과 함께 두리안 전문 판매점을 운영하는 장위(張宇)가 판매대를 정리하고 있다. 이도성 특파원


중국 입장에선 늘어나는 국내 수요를 충당하려면 전 세계 두리안을 '싹쓸이'하는 수 밖에 없다. 두리안은 2019년 체리를 제치고 중국이 수입하는 신선과일 중 최대 품목이 됐다. 지난해 동남아 국가들이 중국에 수출한 두리안은 67억 달러(약 9조 2000억 원) 규모로, 전년보다 무려 60% 늘었다.


두리안 인기, 수출국에 '당근'·'채찍' 활용

한편 중국 정부는 자국의 두리안 수입 시장을 동남아 국가들과의 국제 관계에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초 중국은 태국산 두리안만 수입하다가 지난 2022년 베트남과 필리핀에도 시장을 개방했다. 특히 베트남의 수출이 활발해졌다. 올 1~2월 베트남은 중국 두리안 시장 점유율은 57%로, 한때 점유율 90%를 웃돌던 태국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지난달 22일 중국 베이징 한 대형마트에서 직원이 주문한 두리안을 손질하고 있다. 이도성 특파원.


그런데 중국 당국은 최근 베트남 33개 업체에 대해 두리안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3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이 밝힌 수입 중단 사유는 과도한 양의 중금속이 검출됐다는 것이다.

베트남에선 중국 측의 조치는 남중국해 영유권을 두고 갈등을 빚는 베트남에 대한 ‘길들이기’라는 해석이 나왔다. 베트남 풀브라이트대학의 응우옌 탄 쭝 교수는 중국이 두리안을 무역 제재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리창 중국 총리(가운데)가 지난달 19일 말레이시아 푸트라자야의 총리실에서 안와르 이브라힘(오른쪽) 말레이시아 총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방명록에 서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두리안 시장을 외교 수단으로 삼은 사례는 또 있다. 중국 해관총서(관세청)는 지난달 25일 말레이시아산 생 두리안의 수입을 허용했다. 이전까지는 말레이시아에겐 냉동 두리안의 수입만 허용됐다. 최근 말레이시아는 5세대(5G) 이동 통신 사업에서 중국의 화웨이 참여를 허용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브릭스(BRICs) 가입 의사를 밝히는 등 친중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베트남에게 두리안 수출 규제란 '채찍'을 휘둘렀다면, 말레이시아에겐 시장을 열어주는 '당근'을 선사한 셈이다. 이를 두고 필리핀엔 바나나를, 대만엔 파인애플과 망고 등을 무역 제재 수단으로 활용했던 중국은 이제 세계 최대 두리안 소비국이라는 지위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가지 나오고 있다.

하이난·베이징=이도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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