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의 인사이드 아트] 아트 컬렉팅, 예술과 자본의 두 얼굴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과 수집 열기의 대중적 확산은 비단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인 현상이다. 자본의 세계화 시대에 미술시장은 경계를 넘어 지난 10년에서 20년 사이 그 영역을 빠르게 확장해왔다. 미술시장에서 여전히 자본가, 슈퍼리치들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지만 이러한 현대미술의 수집 열풍에 최근 MZ세대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추세다. 과거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미술품 수집가의 주된 연령층이 전후 베이비부머 세대에서 MZ세대로 부의 중심이 이동하면서 컬렉터의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수집의 태도나 취향도 변하고 있다. 디지털 세계와 소셜 미디어에 친숙한 MZ세대들은 ‘예술적 가치’라는 전통적인 접근 방식보다 물질적 풍요와 문화적 취향, 자기 과시(Art Flexing), 새로운 투자가치 및 소유 개념으로 접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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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미술 관심, 수집 열기 확산
부의 이동, 컬렉터는 세대교체
투자 상품 되어가는 현대미술
스타일보다 의미·담론이 중요
」
『예술과 세계 경제』(2017)의 저자인 존 자로벨(John Zarobell)은 예술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미술시장으로 이동하면서 수집 문화의 정의도 바뀌었다고 한다. 그는 미술시장이 갈수록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수집의 표준이 예술적 가치, 미학적 담론보다는 재정적인 수익이나 트렌드와 취향으로 바뀌는 현실을 지적한다. 어느 수집가이든 구입 이후의 다양한 잠재적 이익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투자 가능한 ‘대체 자산’으로서 현대미술이 크게 주목되면서 이에 따른 왜곡 현상이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판화보다 뱅크시 판화 가격이, 겸재 정선의 그림보다 생존작가 이우환과 나라 요시토모 작품이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미술작품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다양한 가치를 품고 있지만 독점 자본주의의 치열한 경쟁원리가 세계 미술시장에 작동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주요 아트페어와 옥션, 갤러리들은 문화 발전의 엔진 역할을 하는 미술관과 비엔날레와 상호 침투하고 경쟁하면서 현대미술 작가들을 신속하게 상품으로 전환시킨다. 미술시장의 이 같은 상업화는 시장의 요구에 맞는 작가들을 중심으로 개발되고 상품화된다. 특히 블루칩 작가, 시장 친화적인 작가들에 대한 쏠림 현상이 심하다. 현대미술 작가 중에서 저평가되거나 우수한 중견작가들이 많지만 미술시장에 진입조차 못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술에 대한 담론보다는 시장 동향과 투자가치, 경매 기록과 수익률, 디지털 자산, 조각 투자 등 미술시장 주도의 서사(narrative)가 문화현상이 되었다. 미술정보지 발행인 조시 베어(Josh Baer)는 20세기 미술의 여러 경향을 대체하는 21세기 하나의 이즘(ism)이 있다면 그것은 ‘미술시장’이라고 말한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한국 MZ세대 미술품 구매자 연구’(2022)에 의하면 MZ세대 상위 구매자(3년간 구매 총액 1억 원 이상)의 48%가 10년 이내 재판매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이들은 구매 시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정서적인 만족감, 작품의 가치, 진위 여부와 투자가치 등을 다양하게 고려한다. 하지만 현대미술의 예술적 가치는 스타일보다 미술사적 의미와 담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차용과 모방, 변조 등 수많은 양식의 유사 작품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작품의 가치를 발굴하고 음미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도움만이 아니라 컬렉터 본인의 미술사와 인문학적 식견을 필요로 한다. 희귀본과 초판본 서적이나 엽서와 편지, 우표, 사진 등의 수집에 매혹되었던 문예비평가 발터 벤야민은 수집가의 탐구적인 자세와 새로운 의미 부여를 중요시했다. 회화나 사진, 판화와 영상 등 어떤 매체, 어떤 작가 작품을 수집한다 하더라도 작품들이 모여서 구성하는 자신만의 수집과 관련한 코드와 배열의 방식이 있어야 한다. 예술을 향한 탐구적 태도는 수집 행위를 보다 지적이고 문화적인 것으로 변화시킨다.
MZ세대의 참여와 함께 미술품 수집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문화적 취향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정서적 만족감을 즐기고, 작가의 원작을 소유할 수 있다는 점은 미술품 수집의 큰 매력이다. 그러나 최근 수년 사이에 미술품을 투자·투기 대상으로 인식하는 풍토가 급속도로 확산되어 우려된다. 작년부터 미술품과 문화재로 세금을 납부하는 ‘미술품 물납제’가 시행되어 재화의 가치로 미술품을 보는 시각은 갈수록 보편화할 것이다. 미술품 수집은 소유와 축적의 형태로서 예술과 자본의 밀접한 결합체이다.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서 예술의 상품화는 피할 수 없는 논쟁이 되고 있지만, 그 실천적 조건을 변화시키는 것은 수집가의 태도에 따라 다를 것이다. 사적이든 공적이든 수집가의 열정과 집념이 세계적인 미술관, 박물관 형성의 튼튼한 기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준 전 리움미술관 부관장·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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