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이 시게토의 마켓 나우] 일본이 이번에는 ‘엔화 집착’에서 벗어날까
일본의 통화 정책은 지난 40년 동안 엔화에 대한 국가적 집착으로 인해 크게 영향을 받았고 종종 왜곡됐다.
나는 일본은행(BOJ)에 입사한 1986년부터 20년 동안 자산 가격 버블과 그 후 금융 위기 속에서 손상된 대차대조표 정리, 즉 부실해진 기업과 금융기관의 재무 상태를 개선하고 정상화하는 힘든 과정을 목격했다. 일본의 버블 경제는 달러-엔 환율 변동에 기인했다. 과도한 통화 완화는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급격한 엔화 평가절상에 대한 반응이었다. 버블의 또 다른 원인은 무질서한 금융 자유화였다. 미국 당국은 ‘금융 자유화의 지연이 엔화 약세를 초래했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일본에 금융 자유화를 강요했다.
대차대조표 조정이 2000년대 중반에 종료됐지만, 일본 경제가 내수 부진 속에서 수출 주도 성장에 의존했기 때문에 당국은 수출 경쟁력을 약화하는 강한 엔화를 계속 우려했다. 2013년 구로다 하루히코(黒田東彦) 당시 일본은행 총재(2013~2023)는 한때 1달러당 80엔까지 도달했던 엔화의 강세를 해소하기 위해 비정통적 통화 완화 정책을 실시했고 시장은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2016년 도입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유럽중앙은행(ECB)과의 통화 평가절하 경쟁의 맥락에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 즉 경쟁 대상인 다른 경제권보다 통화 가치를 낮추고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노력이었다.
지금까지 일본은행 총재 우에다 가즈오(植田和男)는 과도한 통화 완화를 정상화하는 방향으로 중앙은행을 이끄는 데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역설적이게도, 앞으로 몇 년 동안 2% 인플레이션 목표와 통화 정상화를 달성하는 데 다시 한번 엔화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번에는 엔화의 평가절하가 문제다.
약한 엔화는 일본이 국내 수요가 부진한 가운데 비용 인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빠르게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과 유사한 상황에 빠질 가능성을 높인다. 엔화 평가절하는 해외 사업에 종사하는 대기업에만 이익이 된다. 노동력 부족으로 인한 압력이 증가하고 있지만, 많은 기업은 수입 비용 상승으로 인해 인플레이션 속도에 맞춰 임금을 인상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다.
일본은행은 엔화 약세를 완화하기 위해 통화 긴축을 가속해야 한다는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행은 통화에 대한 국가적 집착에 과잉 반응하는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미국의 통화 정책이 지배하는 현재의 외환 역학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한적임을 고려할 때, 일본은행은 정책 정상화의 시기를 신중히 고려하고 성장과 인플레이션 전망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나가이 시게토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일본 대표·전 일본은행 국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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