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에 120시간 일합니다” 자영업자들 눈물의 버티기
충청남도 아산에서 아버지와 둘이 배달 전문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모(28)씨는 마지막으로 여유롭게 쉬어본 적이 언제였는지 까마득하다. 이씨 매장은 영업 시간을 24시간으로 늘린 지난해 이맘때부터 1년 내내 쉬지 않았다. 이씨와 아버지는 각각 주에 120시간, 96시간을 가게에서 보낸다. 그나마 둘이 전부 가게에 나와 있을 때는 한 시간씩 돌아가면서 눈이라도 붙이지만, 혼자 가게를 지키는 날에는 그조차 여의치 않다.
이씨는 “처음 장사를 시작한 재작년에는 점심부터 저녁까지만 영업을 해도 예상한 수준으로 매출이 나왔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지난해 경기가 급격하게 나빠지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영업 시간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영세한 매장인데 매달 수백만원을 들여 다른 직원을 고용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는 “배달 음식점 일이라는 것은 결국 얼마나 비용을 줄이느냐가 관건”이라면서 “배달 수수료도, 식료품 원가도 빠르게 치솟는 상황에서 인건비까지 늘린다면 장사를 하지 않겠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결국 이씨와 아버지는 일하는 시간을 늘려 기약 없는 ‘버티기’에 돌입했다. 판매 전략을 박리다매로 바꾸며 돌파구를 삼으려고 했지만 문제는 업무량 증가였다. 이씨는 “불황에 대응하기 위해 가격을 20~30% 낮췄더니 일일 판매량은 50그릇에서 70그릇 안팎으로 늘어 목표 매출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판매량이 증가한 만큼 재료 손질이나 조리 과정 등에 투입되는 노동량도 비례해서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역설적으로 지금의 어려운 경기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극한 경쟁에 지친 경쟁 업체들이 포기하고 판을 떠나면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일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지금은 괴롭지만 1년만 버티면 이전처럼 장사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로 견디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영세 자영업자가 이들처럼 노동 시간과 강도를 늘리며 버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종시 금남대평시장에서 아내와 과일 가게를 운영하는 이준표(67)씨는 “올해는 지난해와 비교해도 매출이 절반으로 줄었다”며 “가끔 자리를 비우는 날에는 사람을 쓰면 손해가 나서 그냥 문을 닫는다”고 말했다. 고령인 데다 매장이 시장에 있다 보니 영업 시간을 마냥 늘리기도 어렵다. 팔리지 않아서 상해버린 자두를 솎아내던 그는 “우리도 이제 폐업 신청을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라며 한탄했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장사를 접는 영세 자영업자들은 숫자로 확인된다. 14일 통계청의 ‘6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 숫자는 425만3000명으로 1년 전 같은 달에 비해 13만5000명(-3.1%) 감소했다. 지난 5월(-11만4000명)과 비교하더라도 한 달 만에 감소세가 가팔라졌다.
별도의 급여 없이 가족의 일을 돕는 무급가족종사자 역시 96만7000명에서 94만명으로 2만7000명(-2.8%) 감소했다. 같은 기간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가 145만명으로 3만4000명 증가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고용원을 거느릴 여력이 있는 중간 이상 규모의 자영업은 규모가 유지됐지만, 그보다 사정이 열악한 ‘나홀로 사장’들은 줄줄이 장사를 포기했다는 얘기다. 자영업자 전반을 놓고 봐도 ‘적신호’가 켜졌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영세 자영업자가 폐업한다는 것은 그보다 사정이 나은 중간 수준의 자영업자들도 실은 간신히 버티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영세 자영업자의 가파른 이탈 추세는 구체적인 업종 단위로 봐도 뚜렷하다. 국민일보가 통계청의 지난달 경제활동인구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도·소매업 분야의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67만9000명으로 1년 전보다 4만5000명 줄었다. 숙박 및 자영업 분야의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도 같은 기간 35만명에서 33만5000명으로 감소했다. 폐업 소상공인에게 지급하는 공제금 규모와 건수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지난 1∼4월 노란우산 폐업 사유 공제금 지급액은 544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9.9% 늘었다. 지급 건수는 4만3000건으로 9.6% 증가했다.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음식점이나 편의점을 경영하는 점주만을 가리키진 않는다. 농업·임업·어업 종사자나 배달·운수업에 종사하는 특수고용직 역시 분류상으로는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에 해당한다.
정부는 이 같은 영세 소상공인의 위기를 인지하고 이달 초 내놓은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25조원 규모의 소상공인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대책의 실질적인 재정 투입 규모는 5조원 수준이고, 대부분의 대책이 금융 지원으로 이뤄져 있어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내수가 살아나지 않는 것은 실질 소득 감소를 비롯한 구조적인 문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라면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세종=이의재 김윤 기자 sentinel@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생닭 가격은 떨어졌는데… 삼계탕 가격은 ‘기겁’
- 트럼프, 총 맞고도 주먹 ‘불끈’…전용기선 ‘뚜벅뚜벅’ [영상]
- 가로등 들이받고 전복된 벤츠… 택시 타고 달아나
- 한달 안된 신차 질주 후 전복… ‘급발진’ 주장에 국과수 “결함 無”
- 서울 65세 이상 고령자, 4명 중 1명은 ‘나 혼자 산다’
- [작은영웅] 버스기사가 성산대교에서 갑자기 차 세우고 사라진 이유 (영상)
- 유튜버 침착맨 딸 ‘살해협박’에 경찰 수사 착수
- 유튜버 구제역 “쯔양 폭로 막으려 이중 스파이한 것”
- “잠깐도 안 돼”… 42도 폭염 속 차 안에서 숨진 2살
- “초4 딸 엘베서 성추행한 중학생, 촉법소년”… 아빠의 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