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韓 갈등의 와중에... [김선걸 칼럼]
‘경영권 집단’.
생소한 용어를 봤다.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대주주 측이 보도자료에 쓴 말이다.
한미약품은 창업자가 작고한 후 모녀와 형제가 편을 갈라 분쟁을 벌였다. 경영권이 몇 차례나 기울었다 반전을 거듭했다. 그런데 지난주 개인주주이자 창업자 지인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양측을 중재한 것이다. 그리고는 신 회장과 모녀, 형제가 ‘단일 경영권 집단’이라는 걸 구성했다. 과반의 지분을 갖고 함께 경영하겠다는 뜻 같다.
갈등과 화해는 인간사의 영원한 소재다. ‘한 몸 같았던’ 사람들이 철천지원수로 변하기도 한다.
끈끈한 사이일수록 금이 가면 배신감이 크다. 부부·형제·자매·동문 등 1차적 관계일수록 등 돌리면 더 무섭다.
한미약품 분쟁 외에도,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최태원 SK 회장과 부인인 노소영 관장, 구광모 LG 회장과 모친·누이들, 박세리 선수와 아버지 등 갈등의 속살이 드러난 사례가 많다.
윤 대통령과 한 전 위원장은 자타공인 특수관계다. 검찰 내 같은 라인에서 수사를 하며 한솥밥 먹었고, 문재인정부 때 함께 탄압받았으며 사실상 공동 운명체였다. 이들이 갈등 관계로 바뀐 것은 사회 정체성 이론(Social Identity Theory) 측면의 설명이 가능하다. 집단에 소속감을 갖는 인간의 특징을 내세워 행동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이 두 사람은 검찰 때나 정권 초에는 공통의 목표와 신념을 공유하며 강한 내집단(Ingroup)을 형성했으나, 정치적 입장 변화로 서로를 외집단(Outgroup)으로 인식하게 됐다는 것이다. 정체성이 달라진 배신자는 외집단으로 인식한다. 아마도 김건희 여사에 대한 이견이 계기였을 것이다. 외집단이 되면 상대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스스로 공격적 입장을 정당화한다. 감정의 골이 깊어진다.
역사 속에는 너무 가까웠기에 배신감도 컸던 사례가 많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김재규는 경북 선산군 동향 후배이자 일제시대 만주군관학교 동문으로 최측근이었다. 로마 카이사르의 양아들이자 친구인 브루투스도 마찬가지다. 카이사르가 죽어가면서 ‘브루투스 너마저’를 외쳤던 것은 그때까지도 ‘내집단’으로 인식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김재규나 브루투스는 공화정을 위협한다는 등의 이유로 상대방을 이미 정체성이 다른 ‘외집단’으로 인식한 후였다.
한미약품은 물론, SK나 LG 등 대기업 주주 간 갈등은 좀 다르다. 경영권이나 돈을 둘러싼 문제다. 돈을 놓고 싸우는 사이에도 한미약품처럼 ‘경영권 집단’이라는 이례적 구조를 만들어 휴전했다. 이해관계는 달라도 최소한 기업가치와 창업자 유지를 지키는 데에는 뜻을 모았기 때문일 것이다.
궁금한 게 있다. 윤-한 두 사람은 공직자로 평생 살아왔다. 국가관과 사명감이 투철해야 하는 자리를 거쳤다. 그 신념이 달라지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중대한 변곡점에서 감정적인 행동들을 정당화할 수 있나. 북한과 러시아가 손잡고 야당은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위기 상황이다.
돈을 놓고 싸우는 한미약품 주주들마저도 공동의 이익을 위해 양보하고는 한다. 헌법 7조에는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진다’고 명시돼 있다. 두 사람이 자유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공유한 공직자였다면 최소한 ‘경영권 집단’ 같은 봉합이라도 하고 나아갈 일이다.
국가는 이런 순간을 위해 두 공직자를 키워온 것 아닐까. 감정보다는 ‘공공선’을 지키는 행동이 국민들도 지킨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8호 (2024.07.10~2024.07.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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