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보다 강한 PVC파이프…‘갑 같은 을(乙)’ [영업이익 강소기업]
글로벌 고금리 현상이 지속되면서 건설 경기마저 얼어붙고 있다. 상당수 건설사는 물론 건축자재 업체가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19 때는 사회적 거리두기 여파가 컸고 이후에도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며 건설 경기가 얼어붙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는 물론 수출까지 확장하면서 급성장하는 중견 파이프 회사가 있다.
2020년 982억원, 이듬해 1100억원대였던 매출액이 지난해에는 1614억원까지 커졌다. 영업이익 역시 증가세가 뚜렷하다. 2021년 35억원 수준이다 지난해에는 269억원으로 훌쩍 늘었다. PPI파이프 성장 스토리다.
1976년 이음관 회사로 시작
창업자는 이종호 회장. 1976년 ‘최고의 품질’ ‘신제품 개발’ ‘인재 육성’의 창업정신으로 ‘평화플라스틱공업사’를 설립한 것이 오늘에 이른다. 애초 이음관 전문 업체로 출발, 48년이 흐른 오늘날에는 오·배수관, 소방관, 상·하수도관, 플랜트관, 각 이음관을 모두 생산하는 국내 유일의 최대 종합 PVC관 전문 제조 업체로 성장했다.
특히 주력 소재로 PVC를 선택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흔히 플라스틱 계열 파이프는 잘 깨지고 약하다는 인식이 많았다. 이 회장은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자 했다.
“오히려 철제 제품이 오랜 기간 쓰면 녹슬면서 일부 지자체에서는 ‘붉은 물이 나온다’는 주민 민원이 폭주하는 데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PVC는 물때가 끼거나 부식되지 않는 성질이 있어 이를 보다 강하게만 만들면 승산이 있겠다 싶었습니다. 기존 플라스틱 소재 PVC관에 특수 첨가제를 다양하게 넣어보면서 철제관을 넘어서는 강도의 파이프를 만들려고 밤낮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연구개발에 매진한 끝에 2013년 세계 최초로 100년 수명을 자랑하는 ‘아피즈’ 상수도관(iPVC)을 개발할 수 있었다. 이 회장은 iPVC를 각종 국제학회와 콘퍼런스에 선보였다. 미국 수돗물 공급 1위 업체 아메리칸워터가 진행한 기술 테스트에서 ‘녹과 부식이 없고 충격에 강하다’는 점이 검증되면서 수출길도 열렸다.
이 회장은 “당시 미국산 수도관보다 기술력이 월등하다는 점은 물론 세계 최고 권위 내진성능 평가기관인 미국 코넬대와 2년 공동연구를 통해 전 세계 지진에서 95% 이상 살아남을 수 있는 내진용 상수도관으로도 인정받았다”며 “실은 100년 수명이 아니라 220년 동안 설치해도 끄떡없다는 점도 함께 검증받았다”고 설명했다.
이후 PPI파이프는 캘리포니아, 하와이, 괌은 물론 뉴저지 롱브랜치, 국내에서는 주한미군 기지 주요 장소에 시공됐다. 지진, 해안가 등 철제관 부식이 심한 여타 국가에서도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는 후문. 최근에는 이종호 회장의 딸 이혜선 대표가 합류, 경영에 힘을 보태고 있다.
220년 수명 파이프로 고가 전략 먹혀
제조 업체가 살아남으려면 ‘갑 같은 을’이 돼야 한다는 말이 있다. 반도체 장비 세계 1위 업체 ASML은 오히려 삼성전자 등 유수 글로벌 대기업도 대기해야 겨우 납품을 받을 수 있기로 유명하다. 그만큼 대체 불가능한 위치에 있다는 말이다.
이종호 회장도 이 포인트에 꽂혔다. 저가 경쟁에만 매몰되면 결국 다음 세대 개발은 지연될 수밖에 없고 성장은 요원하다는 것이 이 회장 생각. 이 때문에 끊임없이 신제품을 개발하고 품질 향상을 꾀했다. 이런 노력 끝에 세계 최초 건축물의 배수 소음을 해결한 2040 방음관, 녹이 슬지 않으며, 5㎏f/㎠ 압력에 견디도록 개발된 DH 오·배수관, 내수압 강도가 국제표준 대비 30배 강한 물성 개발에 성공한 혁신적인 제품 ‘iPVC 상수도관’이 탄생할 수 있었다.
이를 먼저 알아본 곳은 국내외 대기업이었다. 그 덕에 2040 방음관은 국내 PVC 배관자재로는 유일하게 일본 도쿄 아오야마타워, 국립암센터 등 일본 전역 1000여개 현장에 시공될 수 있었다. DH 오·배수관은 123층(555m) 롯데월드타워에 들어가 있다.
이런 식으로 국내외 유명 빌딩, 지역에서 앞다퉈 쓰이다 보니 유명해졌고 좀 더 고급 사업장을 만들 때 PPI파이프를 높은 가격을 주고도 사서 쓰는 곳이 늘었다. 일종의 고가 정책이 먹힌 셈이다.
소재 차별화 외에도 시장에 없던 제품을 만든 것도 주효했다. 단순히 파이프만 잘 만들어 파는 건 한계가 있다. 그래서 PPI파이프는 배관의 기능성 개선, 건설 현장에서 편리하게 시공할 수 있는 시스템 개선에도 신경 썼다. 이렇게 개발된 시스템이 원터치 모듈화다. 회사 관계자는 “세대 내 배관을 건물 도면에 맞게 재단해 하나의 팩에 담아 제공하는 시스템으로 기존 방식 대비 시공 효율이 12배 개선됐다”며 “건설사 입장에서도 인건비 절감, 공사 기간이 단축되기에 선호한다”고 소개했다.
시공 작업자의 실수 방지를 위해 세계 최초 점검창 이음관인 ‘원터치 GLS 이음관’을 개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여기에 더해 전 세계에 공장을 만들어 물류 경비 등 비용을 최소화하고 새 공장마다 최신 설비를 계속 도입해 생산성을 높인 점도 높은 영업이익률의 비결이 됐다.
기술 수출에도 성공했다. 기술 수출이란 독자 기술을 원하는 외국 회사가 기술 사용료를 지불하고 사 가는 것을 의미한다. 연매출 3200억원에 달하는 스페인 국내 1위 업체이자 EU에서 업계 5위인 ‘GPF’사가 PPI파이프에 손을 내민 이유도 기술 수출 때문이었다.
회사 관계자는 “iPVC 제조 기술을 수출 계약함으로써 유럽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고 소개했다. 기술 사용료는 일종의 무형자산을 현금화했다는 점에서 이익률 증가에 큰 도움이 된다.
약점은 없나
경기 침체로 수요 둔화 우려
물론 PPI파이프도 고민거리는 꽤 있다.
워낙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다 보니 품목이 너무 많다는 점은 약점으로 지적된다. iPVC 외에 ‘규모의 경제’를 이룰 만한 ‘원투 펀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업계에서는 있다. 더불어 R&D를 강조하다 보니 지나치게 기술 개발 관련 투자가 많아 원가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최근에는 회사 덩치가 커지면서 중견기업으로 회사가 분류되다 보니 정부, 지자체 배관 수요는 늘어남에도 조달 시장에서 참여가 제한되고 있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대외 환경도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 고금리로 사업장이 언제든 감소할 수 있고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판매단가를 낮춰달라는 시공사 요청도 꽤 있다는 후문. 또 건설사, 설비 회사 신용 하락으로 채권 부실 위험도 있다.
최근 PPI파이프는 대구에 새로운 공장을 세우면서 지방 시장을 확대하고 있고 해외 수주도 계속 이어가면서 위기를 타개하고 있다.
이종호 회장은 “항상 고객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최고의 품질과 신제품 개발로 고객의 성원에 보답하며 안전한 물을 공급해 인류의 건강 증진에 이바지하고 국가 예산 절감에 기여하는 존경받는 기업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7호 (2024.07.03~2024.07.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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